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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광의 '반전', 시작도 안했다

최연소 승리투수, 그의 끝나지 않은 야구 이야기

07.09.06 10:32최종업데이트07.09.0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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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승리투수(18세 1개월 18일), 최연소 완투승(18세 1개월 18일), 최연소 완봉승(18세 3개월)의 주인공.

 

고등학교 무대를 평정하고 만 18세의 나이에 프로에 입문해 입단 첫 해 11승(5패), 2년차에 10승(7패), 그리고 3년째 18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36, 탈삼진 221개를 기록하며 에이스가 된 투수. 그때 그의 나이 불과 20세였다.

 

어느 누구도 이 어린 에이스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데뷔한 지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승에 도전하고 있어야 할 이 투수가 현재까지 거둔 승수는 불과 87승이다. 최근 7년 동안 거둔 승수는 고작 10승이며 그사이 패전은 무려 24번이나 당했다. 그나마 올 시즌에는 아예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중간계투로 나서고 있다.

 

슬픈 반전이 있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롯데 자이언츠 좌완투수 주형광(31)이다.

 

스무 살, 인생의 정점에 오른 주형광

 

'최연소 기록'의 사나이 주형광. ⓒ 롯데 자이언츠

1992년 제26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당시 2학년이었던 주형광은 4게임 연속 완투승을 포함 팀이 소화한 45이닝 전부를 혼자서 책임지며 부산고의 우승을 이끌었다. 부산고에 투수가 주형광 한 명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승을 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투수는 주형광 단 한 명뿐이었다. '어린 에이스'는 주형광의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주형광은 1994년 부산고를 졸업하고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을 했다. 고교야구를 초토화하고 프로에 올라온 주형광에게는 적응기도 필요 없었다. 1994년 데뷔 첫 승을 완투승으로 따냈던 주형광에게는 늘 '프로야구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녔다.

 

주형광의 데뷔 시즌이었던 1994년 28게임에 등판을 해 4번의 완투와 한 번의 완봉승을 포함 11승 5패 평균자책점 3.04(186 2/3이닝 탈삼진 142개)를 기록,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 투수의 성적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투구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주형광은 2년차이던 1995년 정규시즌에서 10승 7패 평균자책점 3.05를 기록, 다승 11위와 평균자책점 10위에 올랐으며 전체 3위에 해당하는 200 2/3이닝을 투구했으며 탈삼진은 152개로 4위에 올랐다. 그해 11월 모 신문사에서 뽑은 각계 유망인 50인 가운데 현주엽(농구), 박세리(골프)와 함께 야구선수로는 유일하게 선정될 정도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1996년,20살이 된 주형광은 그해 30경기에 등판을 해 10번의 완투와 한 번의 완봉승을 포함, 18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36 탈삼진 221개를 기록했으며 무려 216 2/3이닝을 투구했다. 주형광은 그해 다승 1위,탈삼진 1위 ,투구이닝 2위, 완투 2위에 올랐다. 20세의 나이에 주형광은 롯데의 에이스가 된 것이다.

 

1996년은 주형광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주형광 '생애 최고의 시즌'이 되리라 생각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스무 살의 나이에 벌써 인생의 정점에 와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형광은 숨고를 틈도 없이 너무도 빨리 정점으로 올라가 버렸다.

 

의병 제대 후, 멈춰버린 에이스의 질주

 

1996년 시즌을 마친 후 주형광은 피로 누적으로 인한 장 기능 약화와 무리한 어깨 근육 사용으로 인한 골절로 인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러나 입대를 압두고 있던 미묘한 시점이 문제가 됐다.

 

1995년 OB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시리즈 MVP에 선정됐던 김민호 역시 그해 허리 문제로 군 면제 판정을 받은 이후 다시 1996년 투수 4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한화의 구대성 역시 허리 디스크로 병역 불가 판정이 내려지자 프로야구 선수들의 병역 문제에 대한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니 주형광 역시 병원을 핑계로 입대를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주형광은 재검 끝에 현역으로 입대를 했다. 프로야구 역사를 바꿔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주형광의 현역 입대는 사람들에게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3년의 공백은 주형광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애당초 여론의 시선 때문에 무리를 해서 입대를 한 주형광은 결국 도저히 훈련을 소화할 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병 제대를 하고 다시 그라운드로 복귀를 했다. 모두가 에이스의 귀환을 환영 했지만 정작 주형광의 인생에 치명적인 상처를 준 일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주형광은 곧바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몸이 좋지 않아 조기 전역을 한 주형광이 마운드에서 온전히 공을 던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롯데는 그해 최악의 투수난을 겪고 있었다. 염종석, 박지철 그리고 그해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든 신인 손민한 만으로 시즌을 끌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형광은 위기에 빠진 팀을 위해 젊은 혈기로 선발·구원을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해 주형광은 32경기 131 2/3이닝을 던지며 6승 13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5.88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 상태로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3번의 완투를 기록해 에이스의 자존심만은 지켰다. 

 

98년부터 2000년까지 세 시즌 동안 주형광은 32승 25패를 기록했다. 분명 수준급 성적이었지만 주형광이란 이름과는 왠지 거리가 느껴지는 성적이었다. 20세에 18승을 거둘 때만해도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갈 것 같았던 주형광은 어느새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할 만큼 지쳐버렸다.

 

주형광의 반전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주형광은 결국 2001년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시즌을 거의 재활로 보내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예전의 에이스 주형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2001년 이후 주형광은 단 한 번도 100이닝 이상을 투구하지 못했으며 10승은 물론 5승을 거둔 시즌도 없었다.

 

이후 7년 동안 70승을 거둬도 시원찮을 것 같은 주형광이 추가한 승수는 고작 10승, 그사이 자유계약선수 자격도 획득했지만 주형광은 FA 권리를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다. 20살의 나이에 프로야구 마운드를 호령하던 '에이스' 주형광은 이제 팬들의 눈에 밟히는 아픈 존재가 돼버렸다.

 

올 시즌 주형광은 주로 좌타자가 나오면 원 포인트 릴리프로 32경기에 등판해 21 2/3이닝 동안 1패 1홀드만을 기록하고 있다. 21이닝은 16세의 주형광이 대통령배에서 일주일 동안 혼자 던진 이닝의 절반도 못 미치는 이닝이다. 그래도 주형광은 중간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열심히 소화해주고 있다.

 

데뷔한 지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승에 도전하고 있어야 할 주형광이 현재까지 거둔 승수는 불과 87승이다. 최근 7년 동안 거둔 승수는 고작 10승이며 그사이 패전은 무려 24번이나 당했다. 그나마 올 시즌에는 아예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중간계투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슬픈 반전이 아니다. 주형광은 여전히 마운드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나오고, 얼마나 던지고, 어떻게 던지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주형광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 주형광은 앞으로도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이제 겨우 31살, 이대로 끝나기에는 주형광이 너무나 젊다. 주형광의 반전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2007.09.06 10:32 ⓒ 2007 OhmyNews
주형광 롯데자이언츠 최연소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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