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애들, 내 집앞 못 지나가!"

10분 거리를 돌고돌아 통학하는 아이들... "길이 있어서 갈 뿐인데"

등록 2007.09.10 10:22수정 2007.09.1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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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일, 우성아파트 부녀회원과 주민 10여 명이 아파트 정문에서 관악푸르지오아파트 아이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지난 1일, 우성아파트 부녀회원과 주민 10여 명이 아파트 정문에서 관악푸르지오아파트 아이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 김주현


아파트 부녀회가 초등학생들이 등교를 하며 떠든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통학로를 폐쇄하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가 일어난 곳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우성아파트(10개동 2314세대, 99년 12월 준공). 이 아파트 부녀회는 인근 봉천초등학교가 개학한 지 3일째인 지난달 29일, 이 학교 초등학생 약 800명이 통학로로 이용하는 우성아파트 후문을 폐쇄했다. "초등학생들이 통학을 하며 소란스럽고 아파트 시설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우성아파트 부녀회가 모든 학생들의 출입을 막는 건 아니다. 자신들 아파트에 사는 370여 명의 봉천초등학교 학생들은 선별해서 무사히 통과시킨다. 그러나 바로 길 맞은편 관악푸르지오아파트(22개동 2496세대, 2003년 12월 준공)에 살고 있는 400여 명의 학생들은 '통행불가'다.

남의 집 앞마당 지나는 것 자체가 나쁜 짓?

우성아파트 부녀회는 관악푸르지오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자신들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보초'를 서기도 한다. 지난 1일, 우성아파트 부녀회원 10여 명은 마스크로 자신들의 얼굴을 가린 채 아파트 정문에서 관악푸르지오아파트 아이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들은 "이웃에게 고통 그만!" "(아파트) 후문은 통학문이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기도 했다. 많은 초등학생들과 다른 지역 주민들은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이때 양쪽 주민들의 충돌을 우려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우성아파트 부녀회의 등굣길 폐쇄로 인해 현재 관악푸르지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봉천시장을 거쳐 약 30분 정도 걸어 등교를 하고 있다. 우성아파트 후문을 통하면 10분이면 등교가 가능하다. 부녀회의 후문 폐쇄로 아이들은 등하교에 3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a 멀어진 등교길... 등교길 폐쇄 이전 관악푸르지오 학생들의 통학로(파란색)과 폐쇄 이후 통학로(붉은색)

멀어진 등교길... 등교길 폐쇄 이전 관악푸르지오 학생들의 통학로(파란색)과 폐쇄 이후 통학로(붉은색) ⓒ 김주현


그러나 우성아파트 부녀회 쪽은 물러설 의향이 없다. 우성아파트 부녀회로 활동한 홍모씨는 "학생들은 남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며 "조금만 돌아가면 될 텐데 자기 편하자고 남의 집 앞마당을 지나가는 것 자체가 나쁜 짓"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홍씨는 "관악푸르지오에 사는 학생들이 복도를 뛰어다녀 시끄럽고, 나무를 꺾거나 요구르트를 훔쳐간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학생이 최우선이라면 관악푸르지오아파트를 지을 때 학생들을 배려한 단지 내 통학로를 만들었어야지, 단지 내 조경에는 신경 쓰면서 왜 통학로는 안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우성아파트 부녀회와 관악푸르지오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골이 깊어졌다.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지만 '이웃사촌'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관악푸르지오 학부모들은 최근까지 아침마다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자"는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관악푸르지오에 사는 학부모 이호강(35)씨는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 30여 분을 못 참는 우성아파트 주민들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그들도 우리 아파트의 놀이터·농구장 등을 이용하면서 왜 아이들 통학로는 폐쇄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물론 우성아파트의 모든 주민들이 부녀회의 결정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우성아파트 학부모대표 주노임(38)씨는 "요구르트 도난사건이 관악푸르지오아파트 아이들 짓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 아니냐"며 부녀회의 통학로 폐쇄를 비판했다. 주씨를 통해 "우성아파트 주민의 1/10이 서명에 참여한 가운데 입주자 대표 회의를 거쳐 지난 4일 부녀회가 해체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통학로 이용을 반대하지 않는 우성아파트의 한 주민은 "부녀회에서 관악푸르지오가 우성 아파트가 같은 평수인데도 아파트 가격이 1억 원 이상 차이나는 것을 시샘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면서 "부녀회 회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아서 초등학교 학부모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a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를 지어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관악푸르지오 단지 내에 걸렸다.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를 지어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관악푸르지오 단지 내에 걸렸다. ⓒ 김주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관악푸르지오 주민들은 결국 '푸르지오 통학로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초등학교를 새로 하나 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이들은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를 지어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아파트단지 내에 걸기도 했다.

또 두 아파트 주민들의 갈등을 틈타 '통학버스 탈 학생 모집'이라고 적힌 유인물을 대우아파트에 부착하는 여행사도 생겼다.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싶어요"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봉천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파트의 학생들이다. 초등학생들이 멀리 돌아서 갈 때 거치는 봉천시장에는 변변한 인도조차 없다. 이 길에서 만난 봉천초등학교 5학년 이소연·김수진(가명)양은 이렇게 말했다.

"우성아파트 친구들과 같이 못 다녀서 아쉬워요. 우성아파트 아이들이건 관악푸르지오 아이들이건 떠드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길이 있으니까 가는 건데…. 잠깐 시끄러운 것 때문에 통학로를 막는 건 너무 심해요."

우성아파트에 사는 김은지(가명·6학년)양은 "등교시간에는 마스크 낀 아주머니들이 관악푸르지오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막고 있어요"라며 "(그 때문에) 저학년들을 관악푸르지오아파트 근처까지 데려다 주는 선생님도 있다"고 밝혔다.

a  학생들이 다니는 일방통행길과 봉천시장길은 인도가 없는데다 차가 많아 위험해 보였다.

학생들이 다니는 일방통행길과 봉천시장길은 인도가 없는데다 차가 많아 위험해 보였다. ⓒ 김주현


현재 봉천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성·푸르지오아파트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싶다"는 말로 자신들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양쪽 아파트의 어른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봉천동 #봉천초 #대우 #우성 #통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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