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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영화평] <마이 파더>

07.09.11 10:27최종업데이트07.09.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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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을 기다려 친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해외 입양아 출신 주한미군. 그런데 정작 꿈에 그리던 아버지는 사형수였다. 그것도 인명을 잔인하게 살상한 죄목으로 형 집행만을 기다리고 있는 흉악범이다. 그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피해자들은 아직 악몽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이건 실화라는 점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마이 파더>는 2003년 KBS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애런 베이츠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가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문득 엉뚱한 상상이 들 때가 있다. 주어진 이야기의 기본적인 골격을 유지하면서 ‘만일 내가 직접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면?’ 하는 상상 말이다. 실화라는 예민한 꼬리표가 따라붙는 데다 사건을 기억하는 당사자들이 모두 아직 존재하는 민감한 상황에서 말이다.

 

설사 실화임을 제외하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만드는 이의 입장에서 <마이 파더>는 함부로 다루기가  쉽지않다. 잘못하면 선정적이고 작위적인 소재로 억지 감동을 끌어내려한다는 혹평을 받기 십상이고, 관객들에게도 불편함을 안기기 쉽다. 

 

 주인공의 절절한 사연과 부자간의 애틋한 정을 부각시키면 ‘감동 모드’야 충분하겠지만 어쩐지 아버지의 죄악을 미화하는데 동참하는 느낌이 들어서 마냥 눈물을 흘리기 무안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이성적으로 따지고들자면 아예 첫 장면부터 ‘영화를 영화로서’ 감상하기 피곤하다. 실제로도 이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에 완전히 공감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진 것도 아닌 기묘한 거리감이 계속 몰입을 방해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감독은 ‘상업영화로서’ 무난한 과정을 선택했다. 실화라는 장점에서 오는  에피소드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면서 부성애와 가족주의의 보편적 휴머니즘을 부각시키는 감성 코드로 인물들을 감싸안는다.

 

무거운 분위기를 중화시켜주는 적절한 감초 조연들도 배치하여 극의 리듬감을 조율한다. 사형제도의 정당성, 살인죄에 대한 묘사가 나오지만, 영화 자체적으로 인물과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가치평가는 최소화하여  불필요한 논란을 피해간다.

 

<마이 파더>는 우리가 흔히 ‘부자간의 용서와 화해’라는 테마를 다룬 영화들이라면 보편적으로 거쳐갈만한 장면들을 되풀이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새로운 장면은 없지만 장르나 소재 면에서 사실 어떤 새로운 상상력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 언어가 통하지 않던 주인공이 아버지와 조금씩 감정을 교류하고, 한국에서 사귄 지인들과 친해지기 위하여 노력하는 장면 등의 아기자기한 디테일은 무거운 영화의 분위기에서 간간이 휴식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언제나 선굵은 연기를 보여주는 중견배우 김영철이야 새삼 설명이 필요없지만, 다니엘 헤니는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 차원을 떠나서 모처럼 제역을 맡았다는 느낌이 든다.

 

극중 제임스 파커는 한국에서 연기하는 배우로서 헤니가 지닌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개성으로 소화할수 있는 몇 안되는 배역이다. 기존 작품에서 마치 잘 훈련된 정치인처럼 너무 반듯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만 어필해서 일상적인 인간미가 잘 와닿지 않던 헤니는 CF와 <김삼순>그늘을 벗어나 모처럼 살아숨쉬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아버지와 차디찬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엇갈리는 애증의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은 상대역인 김영철 못지않은 화면 장악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미덕에도 결국 이 영화가 실화라는 소재의 덕을 본 상업영화라는 정체성만큼은 부정하기 어렵기에 뒷맛이 찜찜하다. 냉정하게 말해서 애초부터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었다면 제작되기도 어려운 작품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사형수이고 아들이 해외입양아라는 설정은 순수한 픽션이었다면 너무 드라마틱해서 작위적이라는 설정으로 보이기 쉽다. 이 영화가 실화였다는 사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개봉을 앞두고 영화의 홍보효과에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혈육의 정, 화해와 용서라는 보편적 휴머니즘을 이야기하기 위해 극단 상황에 놓인 인물을 선택했지만, 그 이면에 가린 또다른 피해자들의 상처를 배려하지 않은 반쪽짜리 감상주의 영화라는 멍에도 이 영화가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다.

 

흥행을 고려해야하는 상업영화로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영화보다는 객관적인 분위기의 다큐멘터리가 이 소재에 더 어울리는 장르라고 본다.

2007.09.11 10:27 ⓒ 2007 OhmyNews
마이파더 김영철 다니엘 헤니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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