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40대여 쳐진 어깨를 활짝 펴라

영화 <즐거운 인생>, 이시대 가장에 대한 따스한 헌사

07.09.17 17:41최종업데이트07.09.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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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즐거운 인생>은 대한민국 40대 가장들의 움츠린 어깨를 힘내라며 토닥여 주는 시골 누이와 같은 정겨운 영화입니다.


금융기관에서 정리해고된 백수 기영(정진영), 캐나다로 가족을 떠나보낸 채 기러기 아빠 생활이 어색한 자동차 상사 사장 혁수(김상호), 퀵서비스에다가 저녁엔 대리운전까지 해도 아이들 학원비 벌기에도 빠듯한 성욱(김윤석), 이렇게 세 사람은 20년 전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매년 대학가요제 예선에 나섰지만 3년 연속 탈락 뒤 해체된 그룹 '활화산'의 멤버들입니다.


그 후 밴드는 대학시절 취미 활동에 불과하다고 자위하며 모두 음악을 버리고 열심히 살았지만 20년이 지난 뒤에 돌아본 그들의 자화상은 크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좋은 시절도 많았지만 가족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린 성적표로 남은 건 아내의 외면과 고독 그 자체뿐입니다.


어느덧 '고장 난 현금지급기'가 돼버린 실직 가장의 왜소한 어깨, 라면 한 그릇으로 저녁을 때우며 캐나다로 유학 간 자식을 그리워하는 그들에게 20대의 패기도 낭만도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룹사운드 시절 리드보컬이었던 상우의 죽음을 계기로 간신히 재결성된 '활화산'이지만 녹슬어 버린 연주실력과 어설픈 화음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상우의 아들 현준의 합류로 조금씩 화음을 맞추며 고단한 삶의 탈출구를 찾아가는 즐거움에 조금씩 그들에겐 20대의 열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낸 활화산의 부활, 1인당 1만2500원에 불과한 출연료지만 꿈만 같은 홍대클럽의 데뷔는 이들에게 오랜만에 자신감을 심어주지만 40대의 록밴드 결성에 대한 가족의 싸늘한 시선은 활화산에 앞으로 닥칠 파란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제 다시 음악이 생겼습니다. 기러기 아빠로 힘들게 살아가던 혁수가 고심 끝에 다시 드럼 스틱을 쥐며 보여주던 아기곰처럼 순수한 미소와 반항적이지만 락을 사랑한 어린 현준의 앙상블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신들입니다.


영화 <즐거운 인생>은 의도적인 설정이란 이준익 감독의 설명에도 주연배우들의 다소 과장된 코믹연기와 단조로운 대사가 가끔 귀에 거슬리고 매인 타이틀 곡인 '즐거운 인생', '터질거야'를 비롯한 공연 레퍼토리들이 40대 일탈에 대한 연민과 감흥을 완벽하게 대변해주지 못해 관객의 입장에선 감정이입상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수나 밴드출신이 아닌 4명의 주연배우가 혼신의 연습 끝에 직접 모든 공연신을 무리 없이 라이브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주연배우들의 열정을 크게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재 면에선 가족이란 무거운 짐을 내려두고 오랜만에 한껏 즐거워지고 싶은 가장들의 일탈을 솔직하게 다뤘다는 점과 일탈 속에서도 가족의 끈을 놓치 않으려는 이준익표 휴머니즘이 여전해 추석시즌 가족 모두가 함께 공감하며 봐도 좋을 영화란 생각이 듭니다.


기러기 아빠 없는 세상을 꿈꾸며 대안없이 달려든 록밴드 '활화산'과 활화산 조개구이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2007.09.17 17:41 ⓒ 2007 OhmyNews
활화산 휴머니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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