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불의 심판 - 18회

비발디의 봄 - 5

등록 2007.10.12 09:35수정 2007.10.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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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모두 무릎 아래로 팬티 내려.”

 

심사 위원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감독을 바라보았다. ‘너무 심하지 않소?’ 하는 눈빛도 있었지만 대놓고 기대감을 드러내는 눈빛도 있었다. 최미라는 뭐라고 한마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뭣들 하고 있어, 팬티 내리라니깐!”

 

감독이 목청을 높였다. 또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빠르게 조성되었다. 하지만 응모자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피며 팬티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이만한 끼도 없이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한 거야? 외모라는 하드웨어만으로 배우가 되는 게 아냐! 끼라는 소프트웨어가 충만해야만 배우가 될 자격이 있는 거야. 자신 없는 사람은 당장 퇴장해!”

 

감독이 더 크게 고함을 질렀다. 응모를 했으면 당연히 그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걸까? 그래서 믿는 도끼에 발등이라도 찍혔다고 생각한 걸까? 감독이 목에 핏대를 올렸다.

 

그러자 서로 눈치를 보던 응모자들이 하나둘 치마를 끌어올렸다. 그녀들은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 문을 나서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원망 어린 시선을 날렸다. 최미라는 그 시선이 꼭 자신을 향한 것만 같아 가슴이 뜨끔했다.

 

“두 사람도 자신 없으면 퇴장해.”

 

급기야 8번과 10번 응모자만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감독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천천히 레이스 팬티와 스타킹을 내렸다.

 

“똑바로 서 봐. 당당하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그녀들에게 감독은 호통을 쳤다. 그는 줄곧 당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문득 최미라의 뇌리에 감독이 캐스팅 후를 염두에 두고서 미리 배우수업을 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심사 위원들은 목젖이 떨어질 듯 침을 꺽꺽 삼키며 두 여인의 음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신인 배우를 선발하기 위한 것 보다는 눈요기를 하려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뒤로 돌아.”

 

그러자 복숭아처럼 탐스럽게 익은 엉덩이가 심사위원들의 시선에 올라앉았다. 둘의 엉덩이는 금방이라도 늘씬한 다리를 타고 바닥에 굴러 떨어질 듯 빵빵했다. 

 

“허리 숙여.”

 

이쯤 되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 버린 건지, 이까짓 수치심쯤은 견딜 수 있어야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8번이 먼저 주저 없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어중간한 자세를 취하던 10번도 과감해졌다.

 

환하게 빛나는 엉덩이 사이 무작정 빨려들 것만 같은 깊은 골짜기. 거기엔 여인의 은밀한 부분이 초콜릿 색채를 띠며 부풀어 있었다.   

 

“엉덩이로 자기 이름 쓰고 돌아 서.”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감독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허공을 종이 삼아 엉덩이가 일필휘지하듯 춤을 추었다. 심사위원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지만 최미라는 더 이상 어색해하지 않았다. 어느새 황당하고 민망한 기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욕정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이윽고 두 여인이 당당하게 돌아섰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들이었다. 심사장은 달아오른 열기와 밤꽃 냄새로 후끈했다. 색깔로 치자면 옅은 핑크 빛이랄까, 에로틱한 분위기가 실내를 장악한 느낌이었다.

 

감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아편을 맞은 듯 몽롱한 시선을 함부로 던졌다. 그래도 둘은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이제 수치심은 말끔히 사라진 듯 했다. 감독의 얼굴이 모처럼 펴지면서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좋았어. 애초 계획은 한 명만 뽑으려고 했는데, 둘 다 캐스팅하기로 하지. 이거, 시나리오를 고쳐야겠는 걸?”

 

최미라는 상체를 뒤로 젖히며 나이트가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사타구니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벌써 여덟 해나 지난 일이었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턱, 막히는 것이었다.

 

“오늘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보니까 어땠어?”

 

감독이 묻자 최미라는 쑥스러워 하지 않고 활짝 웃어 보였었다. 감독도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더 이상 그녀에게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심사장에서 처음 느꼈던 당혹감과 쑥스러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추장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중엔 차라리 ‘그런 감정이 있기나 했던가?’ 의심스러워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신인 여배우를 선발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누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두 여인의 과감한 노출이 그녀로 하여금 누드에 대한 수치심을 던져버리고 오히려 자신감을 가지게끔 해준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감독의 질문에 함박웃음으로 화답할 수 있었다.

 

‘벌써 아홉 신가?’

 

중년 부인이 들어서는 걸 보고 최미라는 반사적으로 괘종시계를 쳐다보았다. 오전 9시 정각이었다. 일분일초도 어김없는 중년 부인은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보내 준 파출부였다. 외모에서 귀티가 쏠쏠하게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여느 파출부처럼 가사 일만 잘한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선발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매니저 윤이 말했었다. 그는 또한 최미라의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을 인물을 발탁하기 위해 학력까지 염두에 뒀다며 정색을 했었다.

 

그러나 최미라는 그녀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회사에서 보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러했다. 혹여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프락치가 아닐까, 처음 얼마동안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제껏 일언반구도 없다가 첫 영화의 성공으로 인기가 오르자 느닷없이 파출부라며 들이민 것이 미심쩍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우는 차츰 사라졌다. 부인은 풍성한 몸매만큼이나 마음도 넉넉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프락치가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큰언니 같은 여인이었다.  

2007.10.12 09:35 ⓒ 2007 OhmyNews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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