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 키덜트,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아역 연기의 화제는 모두 어린 시절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성향을 대변한다. 이러한 성향은 오락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는 <무한도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무한도전>은 어린 아이들의 가장 전형적인 오락행태인 개구쟁이 짓이 중심이다. 그것을 고상하게 리얼버라이어티라고 하지만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서 리얼버라이어티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것은 개구쟁이 짓을 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
<무한도전>은 예측을 불허하는 도전 주제와 상황 전개로 각본이 거의 필요 없으며, 출연자들의 순간적인 기지와 자연스러운 협업으로 만드는 버라이어티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은 아이들의 개구쟁이 짓과 닮았다. 아이들의 개구쟁이 짓은 누군가 시켜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순간적 협업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개구쟁이들의 놀이와 장난은 큰 해가 없는 짓에 한해서 재미있다. 더 재밌게 하는 것은 개구쟁이 짓을 하는 아이들 자체가 재미있어 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출연진이 그렇다. 개구쟁이들이 주는 웃음은 밀실의 개그가 아니라 공개된 개그다. 단순히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개그, 땀의 몸 개그가 된다.
어른은 논리, 이성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아이는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이다. 어른은 절제와 우회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감정표현을 하지 않고 이성적 논리적 합리적으로 행동과 사고를 하려 한다. 아이는 엉성하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일관적이지 않다.
어른들의 행동과 말은 어느정도 짜임새와 예측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아이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느낌을 표출한다. 어른들의 놀이는 건물 내부로 들어가거나 은밀하지만, 아이들의 놀이는 외부 공간을 필요로 한다.
어른에게 도전 대상은 거창하지만, 아이들에게 도전 대상은 거창하지 않다. 일상 자체의 모든 것이 다 놀이의 대상이 되고, 도전의 대상이 된다. 눈 싸움에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영화와 만화 주인공 흉내내기도 모두 진지한 도전의 대상이 되된다. 그 별거 아닌 도전에서 이긴 이는 위대한 이가 된다. 그러한 존재가 되지 못해 안달한다.
진지하지 못한 것을 진지하게, 거창하지 않은 것을 거창하게 삼을 때 보는 이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어른의 눈에 그것은 하찮고도 쓸데없는 일이다. 이러한 아이들의 대표가 개구쟁이들이다. <무한도전>의 핵심은 개구쟁이에 있다. 리얼버라이어티는 개구쟁이 쇼다.
개구쟁이는 자유분방하다. 개구쟁이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걸 좋아한다. 고무줄놀이, 말뚝박기에 정신없는 동네 개구쟁은 어디라도 상관없다. 친구들을 놀려주고 웃겨주기도 한다. 뒤집어지고 엎어지면서 함께 뒹굴었던 개구쟁이들, 사람들은 개구쟁이를 좋아한다. 그들은 때에 따라서는 황당하고 어이없고 의미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개구쟁이는 편안함을 준다. 개구쟁이는 천진난만하고 밝다.
그러나 개구쟁이들은 꽃미남이나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무한도전>의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못 말리는 천방지축 개구쟁이들인데도 호감을 준다. 공부보다는 산과 들로 뛰어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개구쟁이이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은 학부모들이다. 당연히 어른의 시선에서 보면 <무한도전>의 인물들은 산만하고, 소모적이고 비일관적으로만 보인다.
TV에서 개구쟁이 또래들이 개구쟁이 짓을 하면 별로 재미가 없다.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이들이 개구쟁이 짓을 하면 재미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하는 모든 어른들은 개구쟁이와 다름없다. <무한도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평균 나이는 33.5세다.
개구쟁이들에게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무한도전>의 도전공간은 개구쟁이들의 놀이터다. 도전과제는 개구쟁이들의 장난과 놀이다. <무한도전>의 개구쟁이들은 별거 아닌 것들을 도전과제로 삼는다. 하찮은 것에 의미를 크게 부여한다. 그리고 작은 성취를 대단한 것으로 만들고 자랑한다. 개구쟁이 성격들은 항상 뭘 해야 따분하지 않을까를 열심히 고민한다. 그들은 개구쟁이 짓을 고민하면서 돈을 번다.
하지만 철없는 동네 개구쟁이들이라고 보면 꾸짖고 싶어지고 채널을 돌리거나 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자녀들을 나무라고 싶어진다. 반면, 개구쟁이처럼 미워할 수 없는 이들로 생각해 버리면, 다소의 일탈이 있어도 상관없고, 아무리 막말을 토해내도 용서해 버리고 싶어진다.
그런데 대개 개구쟁이들은 남자아이들만 속한다. 방송사의 오락프로그램은 이 개구쟁이들이 장악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자아이들은 말괄량이들이다. 말괄량이들은 사라졌다.
<해피선데이>의 '여걸 파이브'는 말괄량이들이었다. 그러나 개구쟁이들만 있고 말괄량이들은 없다. <하이파이브>는 개구쟁이의 핵심인 '몸'이 밀려나 있다.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즉흥적인 도전과 놀이, 장난의 자연스러운 협업은 결핍된다.
대선의 계절,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는 짓이 애들 같다. 정치인들이 개구쟁이 코드 탓인지 이성과 합리성에 맞지 않는 개구쟁이 같은 일들을 벌이며 중구난방이다. 일관성이나 소신은 소멸하고, 비일관성과 비논리성이 판을 친다.
그러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개구쟁이들은 순수하고 천진하니 미워할 수 없지만, 정치 개구쟁이들은 그 순수하지 않은 욕망을 염두에 둘 때 좋게 볼래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앞으로 <무한도전>의 최대 과제가 시청률을 향한 욕망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번 대선에서도 여성은 뒷전이다. 차라리 짓궂은 정치 말괄량이라도 있었으면 싶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을 고친 것입니다.
| 2007.11.23 13:26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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