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오다

[책 속으로 떠난 역사 여행 8] 김삼웅 <녹두 전봉준 평전>

등록 2007.11.26 09:47수정 2007.11.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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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표지 <녹두 전봉준 평전>

책 표지 <녹두 전봉준 평전> ⓒ 시대의 창

역사 속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긴 사람들은 많다. 그들을 영웅, 호걸, 위인이라 부른다. 살아서 세상을 쥐락펴락 했던 영웅, 호걸, 위인들의 삶을 기록한 책들도 많다. 하지만 영웅도 호걸도 위인도 흐르는 세월에 밀려 두꺼운 역사책 속으로 사라진다.

많지는 않지만 역사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다가 되레 수레바퀴에 깔려 선혈 낭자하게 죽어간 사람들. 반역이다 역적이다 죄명을 뒤집어쓰고 오랜 세월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래도 때가 되면 이들은 역사의 장막을 걷고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녹두장군 전봉준도 역사에서 걸어 나오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마흔 살 나이로 수십만의 동학농민군과 함께 '상투 밑에 고린내 나는' 부패한 봉건 지배층에 맞서, 영국제 스나이더 총과 자체 개발한 성능 좋은 무라타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서 동학농민전쟁의 불길을 당겼다.

전라도에서 황해도까지 들불처럼 타오르던 동학농민전쟁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그 지휘를 받던 관군에 의해 처절하게 무너진다. 전봉군도 체포되었다. 그에게는 '군복기마작변관문자부득시참(軍服騎馬作變官門者不得時斬)'이란 긴 죄목이 뒤집어 씌워졌다.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은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법무대신 서광범이었다.

걸출한 민중 혁명가의 숙명

<녹두 전봉준 평전>은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 다섯 번째 펴낸 평전이다. 민족의 혼과 겨레의 얼을 되찾기 위한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동학이나 농민전쟁에 관한 연구 자료는 많았지만 정작 전봉준에 대한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전봉준과 공통점이 있는 인물들을 골라보자. 만적, 신돈, 궁예, 묘청, 정도전, 이시애, 임꺽정 등이다.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시대의 모순에 저항했거나 개혁을 추구했던 인물 들이다. 대부분 처형당했다. 그러다보니 사망 시기는 알려졌지만 출생 시기는 분명치 않다. 반역에 대해 유독 가혹했던 한국사에서 걸출한 반역자들의 출생 연도가 불명인 경우가 많다.


젊어서는 한낱 평범한 사내에 불과했던 전봉준을 주목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거사 뒤에는 반역의 수괴가 되어 그에 대한 자료는 인멸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출생 연도는 물론이고 출생지조차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봉준의 출생지를 둘러싸고 여러 이견이 있다. 정읍 출생설, 전주 출생설, 고창 출생설 등이 있고 정읍 출생설은 다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 출생설, 산외면 동곡리 지금실 출생설, 덕천면 시목리 출생설 등으로 분화된다.


전봉준의 출생지를 둘러싼 수많은 이견 또한 걸출한 민중 혁명가의 숙명일 수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유년기에는 집이 가난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 수밖에 없었고, 거사를 도모할 무렵에는 은신을 위해 자주 거처를 옮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을 만들다

전봉준이 살던 시절 조선왕조는 백성들의 안위보다 왕조의 명맥을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필요하면 외세의 힘을 끌어들여서라도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려 애썼다. 임오군란을 왕조는 청군을 끌어들여 진압했다. 갑신정변도 청군을 끌어들여 진압했다. 두 차례 출병으로 청군의 내정간섭이 더욱 심해졌음은 물론이다.

동학농민군이 봉기했을 때 조선왕조는 또다시 청군의 파병을 간청했다. 그 굴욕적인 국서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우리 조선의 새로 훈련된 각 군의 현수는 겨우 서울을 호위할 정도이고 또 전진의 경험도 없어 흉구를 소탕하기 곤란하고 이런 일이 오래 가면 중국 정부에 걱정을 끼침이 클 것입니다. 임오 갑신 두 변란 때에도 청국군이 감정해준 것을 힘입었는데 이번에도 그때 일을 참작해서 귀 총리에게 청원하는 바이니, 신속히 북양대신에게 전간하여 군대를 파견토록 하여 속히 와 초렴하여주시길 바랍니다.(책 속에서)

왕조의 요청대로 청군은 파견되었다. 텐진조약을 구실로 일본군도 들어왔다. 청일전쟁을 통해 청군을 물리친 일본군은 무능한 조선왕조의 관군까지 지휘하며 동학농민군을 학살했다. 일본군과 관군의 치열한 공격으로 동학농민군은 삭풍에 나뭇잎 떨어지듯 쓰러져갔다. 우금치에서, 세성산에서, 홍천 자작고개에서 가을걷이 볏단처럼 쓰려져갔다.

전봉준도 동학농민군 출신 김경천의 밀고로 민보군에게 체포되었다. 거액의 현상금에 눈이 먼 동지의 배신이었다. 전봉준의 체포에 주도적 역할을 한 한신현에게는 금천 군수가 제수되고, 피노리 마을 사람들은 돈 1000냥을 받았다. 밀고자 김경천은 세상의 눈총과 보복이 무서워 마을을 떠나 숨어 살았다.

체포된 전봉준은 사형 판결을 받고 효수되었다. 그의 머리와 시신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죽기 전 전봉준은 유언을 남기라는 말에 "종로 네거리에서 내 목을 베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리라"고 소리쳤다고 전한다.

41세의 나이로 전봉준은 그렇게 죽었다. 전국을 들불처럼 태우던 동학농민전쟁의 함성이 사라진 곳에 사나운 겨울 추위가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날이었는지 몰라라
우리에게 넘을 수 없는 무엇이 생긴 것은
그날이었는지 몰라라
우리가 우리의 죽은 몸 위에 가시덤불로 피어
넘을 수 없는 무엇을 넘기 시작한 것은


옛적에는 굶주린 사내들이 들어와
소도둑이 되었다는 좁은 고갯길
흰 옷을 입은 동학군들이 죽어 산을 이루던
이곳이었는지 몰라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을 치던 것은
이곳이었는지 몰라라
우리가 우리의 죽은 몸 위에 뿌리를 내려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을 넘기 시작한 것은


- 김진경, 우금치 노래 중에서 -

덧붙이는 글 | 김삼웅/시대의 창/2007. 6월/16,500원


덧붙이는 글 김삼웅/시대의 창/2007. 6월/16,500원

녹두 전봉준 평전

김삼웅 지음,
시대의창, 2013


#전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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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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