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산

남도의 명산 해남 대흥사 뒷산인 두륜산을 찾아

등록 2007.11.26 10:14수정 2007.11.2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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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단풍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단풍 ⓒ 서종규



산이 좋아 찾아갔더니 산에 아직 붉은 단풍이 남아 있다. 소설이 지나 중부지방에 폭설까지 내렸다는데 산에 붉은 물결이 머물러 있다. 가을은 그 끝자락이 붙잡혀 찾아오는 겨울을 온몸으로 밀어내고 있다.


해남 대흥사, 남도에서 널리 알려진 산사는 단풍나무로 붉게 물들어 있다. 낙엽이 다 진 감나무의 빨간 감과 지붕에 쌓인 낙엽들과 함께 가을의 아쉬움을 붙잡고 있다. 일주문 지나가는 길목을 내려다보는 단풍나무는 하나둘 그 빨간 잎을 떨어뜨리며 가는 가을을 배웅하고 있다.

a  해남 대흥사 들어가는 다리

해남 대흥사 들어가는 다리 ⓒ 서종규



24일(토) 오전 8시,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25명은 1979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해남 대흥사 뒷산인 두륜산 산행을 위하여 광주를 출발하였다. 가을걷이가 다 끝난 들판은 이제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날 내린 비로 뿌연 안개가 가득하여 훤하게 보이지 않는 산과 들판이다.

10시, 해남 대흥사 입구에 있는 ‘유성관’을 지났다. 주차장에서 내려 유성관에 이르는 길엔 붉은 단풍이 아직 그대로다. 돌난간으로 세워진 다리를 넘어다보는 나뭇가지에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며 흐르는 물을 굽어보는 붉은 나뭇잎들이 우리들을 반기고 있다. 남도의 끝에 있는 두륜산의 초입은 아직도 그 붉은 단풍들이 그대로 있었다.

유성관은 4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옥구조를 지닌 여관이다. 원래는 대흥사를 찾는 신도나 수행승의 객사로 쓰였는데, 40여 년 전에 여관으로 바뀌었단다. 전통한옥에 장독대며 뒤로 흐르는 계곡까지 그 운치가 대단하여 산사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여관이다.


a  아직도 남아 있는 해남 두륜산 단풍

아직도 남아 있는 해남 두륜산 단풍 ⓒ 서종규



원래 두륜산 산행은 보통 대흥사를 지나 고계봉(638m), 노승봉(685m),  가련봉(703m), 두륜봉(673m)을 돌아 진불암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다. 아니면 대흥사에서 북암을 거쳐 가련봉과 두륜봉에 올라 만일암터 샘물에서 목이라도 축이고 내려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고계봉은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다. 2003년 2월 첫 운행을 시작한 두륜산 케이블카는 1.6km의 국내 최장거리를 자랑한다. 그리고 2006년에 삼진물산이 인수하여 전망대를 비롯해 산책로 정비, 상부역사, 하부역사까지 총공사비 20여억 원을 투자, 새롭게 단장하였다.

우리들은 오도재를 지나 혈망봉과 연화봉, 도솔봉, 그리고 두륜봉을 돌아 오는 산행코스를 잡았다. 유성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도재로 향하였다. 주변의 참나무들은 모두 나뭇잎을 버리고 벌거벗은 채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은 산길에 쌓인 나뭇잎들은 늦가을 산행의 정을 느끼게 한다.

a  해남 두륜산 산행 모습

해남 두륜산 산행 모습 ⓒ 서종규


어제 내린 비로 사방이 뿌옇게 보였다. 거의 안개에 싸여 있는 느낌이었다. 멀리 두륜봉이나 가련봉이 흐리게 보였다. 그러니 오도재를 넘어 혈망봉에 오르는 능선에 접어들었어도 사방은 흐려보였다. 능선에 오르면서부터 보여야하는 다도해의 푸른 바다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사방이 흐려 보인 것이다.

주차장에서 유성관에 이르는 길과 대흥사 계곡에 붉게 물들이던 단풍들이 점점 사라지더니 산 능선은 나뭇잎을 다 떨어내버린 나무들이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흙길에 자란 풀들도 모두 누렇게 말라 늦가을의 벌거벗은 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a  해남 두륜산 가련봉의 모습

해남 두륜산 가련봉의 모습 ⓒ 서종규


혈망봉(379m)을 지나 병목안꼭대기봉(연화봉 613m)에 도착했다. 연화봉에서 바라보이는 대흥사의 모습이 아름답다. 흐릿한 시야이지만 아직 붉은 단풍들이 대흥사 주변에 가득하다. 맑은 날씨였으면 너무도 아름다울 대흥사 주변의 단풍들이다.

대흥사는 고계봉(638m), 노승봉(능허대685m), 가련봉(703m), 두륜봉(673m), 도솔봉(672m), 연화봉(613m), 혈망봉(379m), 향로봉(469m)의 8개 봉우리들이 원형을 이루는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두륜봉으로 오르는 길에 일지암이 보인다.

연화봉에서 남해바다가 바라보여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남해바다로 뻗어 내리는 줄기들이 이미 희미하게 떠 있으며 산 아래는 뿌연 기운만 가득하다. 안타깝다. 바다가 인접한 산행의 멋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산 아래로 뻗어가는 줄기들에는 아직도 붉은 단풍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a  해남 두륜산 연화봉에서 내려다 본 단풍

해남 두륜산 연화봉에서 내려다 본 단풍 ⓒ 서종규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두륜봉과 가련봉은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혈망봉에서 연화봉에 오르는 능선은 바위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발에 편한 흙길에 싸인 낙엽들을 마냥 밟고 지나갔다.

연화봉에서 도솔봉에 오르는 길엔 억새가 가득하였다. 아직도 지지 않은 억새의 물결이 바람에 따라 출렁인다. 억새 사이로 난 좁은 산길을 헤치고 도솔봉에 올랐다. 도솔봉 옆엔 안테나가 세워져 있어서 출입이 제한되고 있었다.

도솔봉에서 두륜봉에 이르는 길은 너무 안타깝다. 사실 우리들이 올랐던 산행코스는 전혀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일주코스인 향로봉에서 혈망봉, 연화봉, 도솔봉을 거쳐 두륜봉에 이르는 길은 전혀 정비가 되지 않았다.

길 정비는 고사하고 이정표 하나 없었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많이 매어져 있는 리본들뿐이다. 상대적으로 케이블카가 있는 고계봉부터 두륜봉에서 대흥사에 이르는 길은 아주 잘 정비가 되어 있었다.

a  청미래덩굴(명감나무) 열매

청미래덩굴(명감나무) 열매 ⓒ 서종규


도솔봉에서 두륜봉까지 약 2km가 넘는 길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조릿대나무들 사이에 난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대나무들은 사람 키만큼 자라 있어서 수없이 얼굴을 할퀸다. 그 조릿대나무 위에는 청미래덩굴(명감나무)이 우거져 있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길이지만 청미래덩굴 가시들이 얼굴을 할퀸다.

전혀 정비가 되지 않은 조릿대나무 숲을 헤치고 걸으니 짜증이 났다. 산행코스가 아닌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이렇게 좋은 산행 코스를 방치해 두고 있는 지자체도 원망스러웠다. 요즈음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등산객들을 유치하기 위하여 그리 유명하지 않은 산도 정비하여 홍보하는데, 도립공원에 속한 산의 등산길이 너무 정비가 되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이 코스는 여성 등산객들에겐 전혀 권하고 싶지 않다.

그 험한 조릿대나무 사이를 뚫고 지나가니 우람한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륜봉에 오르는 길이다. 그런데 10m 이상 되는 바위를 오르는 길도 험하다. 간신히 줄 하나 정도 매어 있다. 그리고 다른 안전장치는 없다. 손에 땀을 쥐며 줄을 잡고 바위를 올라야 한다.

a  해남 두륜산의 구름다리

해남 두륜산의 구름다리 ⓒ 서종규


힘들고 어렵게 두륜봉 구름다리에 오르는 길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정표도 있었고, 길도 잘 닦여 있었다. 구름다리는 바위 계곡 위에 바위가 얹어져 있다. 그래서 구름다리다. 그 구름다리를 지나 두륜봉 정상에 올랐다. 흐릿한 시계이지만 가련봉이 가까이 보인다. 안타깝게 점점이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는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과 물결이 보이지 않았다.

두륜봉에서 내려와 만일암터의 천년수 한 모금이 산행의 멋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천년수 한 모금을 마시고 내려오는 계곡엔 붉은 단풍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일지암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그대로 내려왔다. 저녁 햇살에 비친 단풍잎들이 눈부시다.

a  해남 대흥사 풍경

해남 대흥사 풍경 ⓒ 서종규



a  해남 대흥사의 일주문과 단풍길

해남 대흥사의 일주문과 단풍길 ⓒ 서종규


오후 5시를 알리는 산사의 종소리가 울린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가지에 붙은 불은 감들이 별처럼 대웅전 지붕을 내려다보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는 우리들의 발길에 어둠이 내려온다. 하늘에는 보름이 지난 둥근 달이 더욱 선명해지며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우리들의 발길을 인도한다.
#해남 대흥사 #두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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