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부끄러워서 이런 이야기 못했을 거야

[칭찬 첨삭 원리 ①] "무엇을 칭찬하든 상관없다"

등록 2007.12.01 19:29수정 2007.12.0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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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얇은 양파 껍질에도 양면이 있다. 아무리 못 쓴 글에도 좋은 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적에 익숙한 부모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글을 읽고 어떤 점이 좋은지 판단하기 어려워한다. 창의력이니 사고력이니 논리력이 하는 말이 있지만 이런 것들을 기준으로 글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부모들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글을 볼 자신이 없다. 그래서 몇 가지 편협한 시선으로 아이 글을 잘못 썼다고 평가하거나, 선생님이 해주는 빨간 펜에 의존해 버린다.


칭찬은 습관이며 기술이다. 자꾸 칭찬해 본 사람이 칭찬을 잘한다. 칭찬 첨삭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칭찬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글쓰기를 칭찬하는 원리를 익혀야 한다. 아이들 글을 긍정적으로 보는 훈련을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하게 칭찬을 할 수 있다.


아래 글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같이 교통 신호를 위반했을 때, 두 사람에게 똑같은 벌금을 내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 부자가 더 많이 내게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쓴 주장글이다.

 

나는 똑같은 벌을 어겼으면 똑같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벌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4만원이면 부자는 그까짓 거 그냥 낼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 돈이 그 사람의 전 재산일 것이다. 그러나 벌금을 똑같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는 불평불만 할 것이다. 그럼 반란이 일어날 것이고, 후진국이 될 것이다. 그래서 벌을 어겼으면 똑같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빨간 펜으로 첨삭을 한다면 위 글은 정말 난도질을 당할 수 있다. 먼저 문장을 고쳐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는 표현은 피하라, ‘그까짓 것 그냥 낼 것이다’는 ‘부담이 없을 것이다’로 고치고, ‘벌금 때문에 반란이 나거나 후진국이 되지는 않는다’ 등 지적할 것이 정말 많다.

 

그뿐 아니다. 위에서 사용한 논리보다는 ‘법 앞에 평등’을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하면서 논리적 전개 방식을 첨삭해 줄 수 있다. 아마 위 글을 두고 원고지에 첨삭을 하면 빨간 글씨가 검은 글씨를 뒤덮을 정도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런 첨삭지를 받아보면 선생님이 정말 열심히 지도해 주었다고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첨삭지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가 쓴 글을 난도질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렇다면 위 글은 어떤 점을 칭찬할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보자. 솔직히 위 글을 칭찬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짧고, 주장이 불분명하며, 문장이 깔끔하지 못하다. 그래서 칭찬하기가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한 칭찬이 정말 이 아이의 장점을 정확히 본 것인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부모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점이 이것이다. 도대체 어떤 글이 잘 쓴 글이고, 어떻게 칭찬해 주어야 할지 막막하다. 내가 해준 칭찬이 정확한 칭찬인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으면 자신 없게 칭찬하게 되고, 칭찬하는 사람이 자신 없으면 칭찬 받는 사람도 진짜 칭찬으로 여기지 않게 되고, 칭찬 효과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쓴 글에는 무수한 칭찬 거리가 있다. 따라서 무엇을 칭찬하든 관계 없다. 칭찬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냥 눈에 띄는 걸 칭찬해주면 된다. 정확한 칭찬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전혀 필요 없다. 아이들에겐 무엇을 칭찬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칭찬을 한 것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 칭찬 첨삭의 목적은 칭찬을 통해 자신감을 기르고, 자기 스스로 자신이 쓴 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 있지 그 어떤 기교를 가르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럼 이제 부담감을 버리고 아이가 쓴 글을 다시 보고 스스로 칭찬해 보자.

 

나는 똑같은 벌을 어겼으면 똑같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벌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4만원이면 부자는 그까짓 거 그냥 낼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 돈이 그 사람의 전 재산일 것이다. 그러나 벌금을 똑같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는 불평불만 할 것이다. 그럼 반란이 일어날 것이고, 후진국이 될 것이다. 그래서 벌을 어겼으면 똑같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내가 생각하기에 칭찬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1) 글 첫 머리에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글을 쓸 때 자신이 주장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은 꼭 필요하다. 앞부분에 주장을 선명하게 제시함으로써 글을 읽는 사람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2)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처지가 어떻게 다른지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냈다. 4만원이란 돈이 가난한 사람과 부자에게 전혀 다른 부담감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냈다.

3) 벌금을 똑같이 내지 않는 건 부자들에게 굉장히 부당하다는 사실을 잘 지적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 앞에서 다 평등한데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처벌을 달리한다면 누구나 불평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쓴 칭찬 외에도 많은 칭찬을 더 할 수 있다. 몇 줄 되지 않는 글이지만 칭찬할 부분이 정말 많다. 이렇게 칭찬하고 보면 아이 글이 갑자기 뛰어나 보인다. 아이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게 될 것이다.


아래 글은 <프루스트 클럽>(바람의 아이들/김혜진)을 읽고 한 학생이 쓴 감상문의 일부다. 글을 읽고 한 번 칭찬해 보자. 거듭 강조하지만 칭찬은 그것이 무엇이든 관계 없다.

 

  ……(앞부분은 줄거리임. 생략)……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선생님이 왜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해 주셨는지 아무리 읽고 생각해도 모르겠다. 내가 윤모 같아서일까? 근데 내가 윤모 같은 성격을 가졌기에 그럴까?라고 생각도 많이 하였다.
  윤모의 성격은 조용한 성격이지만 한 번 폭팔하면 아무도 못 말린다. 책 내용 중에서 윤모가 화가 나서 의자로 친구를 사정없이 때렸다고 한다.
  나와 닮은 점은 아무래도 조용한 면도 있겠지만 윤모처럼 한 번 폭팔하면 가만 안 두는게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성격이 매우 싫다.
  너무 조용해서 그 화난 마음을 참고 있다가 한 번에 터트린다는 것은 그 사람의 단 한 번의 실수를 저질을 수도 있고, 피해받은 사람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위 글을 두 가지 점에서 정말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물론 내가 칭찬한 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저 내가 칭찬을 그렇게 했을 뿐이다.

 

선생님도 화가 나면 막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너처럼 솔직하게 '나는 그렇다'라고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넌 자신의 단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이런 이야기 못했을 거야. 너의 솔직함이 정말 멋지다.

 

솔직함은 어떤 경우든 칭찬해 주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솔직함이 옳은 것이라 배웠지만, 솔직해서 손해 보거나 야단맞은 경험이 많기에 스스로를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동생이 미운데 안 미운 척해야 하고, 나쁜 일 하고도 야단 맞을까봐 자신을 숨기고, 자신은 다른 걸 하고 싶지만 남들 눈을 의식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남에게만 그럴 듯하게 보이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천편일률적이고 도덕적인 글은 남들의 시선만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물이다.


솔직함도 장점이지만 위 글에서 내가 최고로 꼽은 부분은 마지막 문장이다.

 

너무 조용해서 그 화난 마음을 참고 있다가 한 번에 터트린다는 것은 그 사람의 단 한 번의 실수를 저질을 수도 있고, 피해받은 사람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경험이 아주 많다. 아내와 관계에서 평소에 언뜻언뜻 들었던 불만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엉뚱한 일에서 화가 나면 모든 걸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니 아내는 그 상황에서 과도하게 화를 내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고, 싸움은 증폭되기 일쑤였다. 만약 그때그때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큰 싸움은 없었을 것이고, 둘 사이는 훨씬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아내와 관계뿐 아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할 때도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했다. 평소에는 가만히 불만을 참고 있다가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면 앞에 있었던 모든 일을 끌어와서 크게 폭발시키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어른들도 그런 경향이 있을 것이다.


이 문장에서 어린 학생이 어른인 나보다 훨씬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문장은 어색하고 깔끔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 문장 속에 담긴 뜻만은 인간 관계에 숨겨진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난 토론이나 글을 보면서 아이들이 어른인 나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점을 종종 확인한다. 이 문장에서도 나는 아이들이 지닌 통찰력을 확인했다.

2007.12.01 19:29ⓒ 2007 OhmyNews
#글쓰기 #칭찬 #첨삭 #논술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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