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덕, 운명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종영 앞둔 <태왕사신기>, 예측해 본 결말

등록 2007.12.02 13:13수정 2007.12.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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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는 놀라운 작품이다. 두어 시간 분량의 서사 구조를 24부작으로 늘려놓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보다 극장판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많은 분량을 줄이는 것보다 적은 양을 늘리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부풀려주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을 듯싶다.

 

몇 개의 소스만 넣으면 알아서 일정한 분량이 나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것을 사람이이 했다면 대단한 일이다. <태왕사신기>는 막대한 제작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간단한 컨셉트를 늘리려다보니 난삽하고 복잡해진 서사구조를 보완할 수 있었던 것은 막대한 물량과 특수효과 덕분이다.

 

<태왕사신기>는 비판을 하자면 끝이 없다. 제왕의 기운을 타고난 담덕(배용준)이 이미 왕의 신분이니, 석세스 스토리의 기본 요소에서 어긋났다. 영웅담론의 기본적인 요소인 역경이나 고통, 과제수행을 통해 소명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이미 왕인 신분의 주인공 담덕의 매력을 이끌어내는 데는 주효하지 못하다.

 

이 드라마의 가장 매력덩어리는 네 가지 신물을 얻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네 가지 신물은 너무나 매력 덩어리이기 때문인지 그것을 얻는데 서사 전개의 대부분을 소모해야 했다. 신물은 하루 빨리 깨어나지 않고, 그 힘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은 채 여러 에피소드들이 정신없이 난무하는 사이 스틸 컷들이 오히려 더욱 아름다웠다. 이 과정에서 신물(神物)과 태왕의 리더십은 따로 놀았다. 작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탈민족적, 탈제왕적 코드가 없었다면 아예 분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태왕사신기>는 난삽한 서사구조로 혼동을 주는 것이며, 강력한 힘을 가진 신물(神物)과 태왕의 리더십이 따로 노는 것일까? 신물을 하루빨리 찾아 그 힘으로 세계를 평정하고 쥬신의 나라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일단, 단번에 말할 수 있는 주제를 24부 끝에 말해야하기 때문에 역시 서사가 복잡해졌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태왕사신기>를 지배하고 있는 예언명령이라는 숙명의 패러다임을 살펴야 한다.

 

<태왕사신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연호개(윤태영)나 화천회와 같은 악인이든, 선인이든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갇혀있다. 쥬신의 제왕과 그를 보필할 네 가지 신물의 힘이다. 땅의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을 믿으며 수천 년을 인내한다. 그것은 하나의 종교적 신념과 같다. 재림자인 쥬신의 제왕을 믿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다. 종교적 신념에 기대에 쥬신의 제왕이 되려는 이들은 살육을 저지르고, 쥬신의 제왕을 옹호하는 이들은 기꺼이 자신과 가족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바친다.

 

언젠가 온다는 쥬신의 왕과 그의 나라, 영원히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물론 그러한 쥬신의 나라가 어떻게 행복한 나라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묻는 것은 금물이다. 그것은 단지 믿어야 하는 내세의 종교와 같다. 그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은 파멸하고, 이별하고 아파하며 슬퍼한다.

 

네 신물은 근본적으로 태왕의 리더십과 양립할 수 없다. 적어도 <태왕사신기>에서는 태왕의 행동과 신물의 깨어남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쥬신의 제왕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특별한 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태왕사신기>가 산만한 서사구조를 잉태한 근본요인이다. 예컨대, 네 신물의 힘을 얻은 쥬신의 제왕은 애써 군대가 필요 없다. 전능한 힘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와 물자와 관계없이 네 신물의 힘으로 어떠한 적도 무찌를 수 있다.

 

신기하게도 환웅의 예언에는 쥬신의 왕이 어떠한 품성을 지녀야 한다는 논지는 없이 물건에 대한 중요성만 부과했다. 하지만 땅의 공간에서 왕은 그 자체의 스스로 리더십을 갖추어야만 진정한 제왕이라고 할 수 있다. 태왕은 네 신물이 아니어도 큰 나라를 만들어 가는데 인간이 지닌 이성을 잘 사용하고 있다.

 

쥬신의 제왕과 네신물은 하늘이 정한 운명론의 소산이다. 천지인, 삼재 중에 오로지 하늘만이 중심이다. 땅과 인간은 부속물에 불과하다. 살육과 비극이 반복되어도 땅의 사람들, <태왕사신기>의 인물들은 이러한 숙명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왕에게 그 운명을 강박한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쥬신의 제왕이자, 네 신물을 얻은 광개토대왕이 어떻게 39세에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드라마 <주몽>에서 하늘이 점지한 삼족오 대왕인 주몽이 40세에 죽은 사실과 견줄 수 있다. <주몽>은 벗어나지 못했지만, <태왕사신기>는 이 점을 어떻게 극복 할 것인가. 이것은 드라마의 결말이자 복잡한 서사구조의 종결을 의미한다.

 

하늘이 점지한 영웅의 단명은 스스로 하늘의 명을 위반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하늘이 정한 운명을 벗어나서 태왕 스스로 많은 이들이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태왕이 스스로 천궁(天弓)을 부수어 네 신물을 파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명을 재촉하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늘의 힘과 네 신물에 기대지 않고도 운영되는 나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때 지도자의 리더십이나 품성도 중요하지만, 그가 없어도 운영되는 나라의 근간인 시스템의 구축이 중요할 것이다. 강대한 고구려의 힘은 광개토 이후 구축된 시스템 덕이다. <태왕사신기>가 이점에 초점을 맞추려는지는 알 수 없다.

 

<태왕사신기>가 전해주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운명을 거부할 것인가, 운명을 따를 것인가. 정해진 숙명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힘을 믿고 스스로 만들어갈 것인가” 오로지 쥬신의 제왕만이 그 운명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한다면 새로운 영웅론일 것이다. 모든 중생들은 하늘이 정한 쥬신 제왕 재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베버가 말하는 주술과 미신의 신념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에 따른 번성한 나라를 만들었던 것일까. 근대적인 주체의 탄생이 고구려 호태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이런 결론대로 결말을 맺는다면, <태왕사신기>는 결국 판타지에 기대어 인기를 얻고 판타지를 버린 셈이 된다.

 

대선에서 어떤 지도자가 선택될 것인지도 궁금하다. 개인의 품성을 강조하는 인물인가, 시스템 구축 능력이 탁월한 사람인가. 아니 운명을 받아들이는 리더인가, 그것을 넘어서려는 리더인가.

2007.12.02 13:13ⓒ 2007 OhmyNews
#태왕사신기 #호태왕 #광개토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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