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표지. 실천문학사
▲ 시집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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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초, 오마이뉴스 블로거 '겨울산'이라는 분께서 책 두 권을 보내주셨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책값보다 책을 포장해서 등기나 소포로 부치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모 포털사이트에다 연 카페에서 한 출판사의 후원을 받아 활동을 가장 열심히 했다고 판단되는 다섯 사람 정도를 추천 받아 따끈따끈한 신간을 무료로 보내주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책을 받은 분들이 무척 감격스러워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반응이 점점 시큰둥해졌다. 영 신이 나지 않아 몇 달 후에는 그만두고 말았다. 말이 쉽지 성의란 귀찮음을 물리치지 못하면 결코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그 분이 보내준 책 가운데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이발소 그림처럼'이란 시로 등단한 조정의 첫시집 <이발소 그림처럼>이 있다. 약력을 보니, 아주 간단하다. 1956년 전남 영암 생.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그뿐이다.
1956년생이라면 우리 나이로 45세이다. 아주 늦깎이로 문단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늦은 나이가 아닐 수도 있다. 생을 깊이 관조할 줄 알고 생이 가진 수수께끼를 풀이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나이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으려면 적어도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는 나이인 지천명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책을 낸다. 너무 이른 나이에 가수가 되어 아직 익지도 않은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인지 깊은 맛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밑천도 금방 떨어져 단명하고 만다. 재능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꾸만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자신의 엉덩이를 방바닥에 주저앉혀야 한다. 그 게 자신을 아끼는 법이고, 독자나 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나이 들어 시를 쓰면 좋은 점엔 뭐가 있을까. 우선 젊어서 보지 못한 것, 보긴 했으나 속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 의미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스쳐버린 것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다. 한 가지만 더 든다면, 오랜 절차탁마로 말미암아 저절로 무르익은 문체의 맛을 들 수 있겠다.
신기료장수처럼 우는 시인의 귀
그런 점에서 쉰살이 넘은 나이에 첫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을 낸 조정 시인에 대한 기대가 컸다. 시집을 열고 서시처럼 시집 맨 앞장에 실린 시 '버들 귀'를 읽는 순간, 이 시인이 그런 내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왔다.
님이여 건너지 마라
시끄러운 꿈 한 켤레 건지며
밤새
신기료장수처럼 우는
귀
강은 귓속으로 흘러든다
흰 머리카락 오천 장(丈) 엉킨
목젖이 아,
흐, 백 촉 더 붓도록 부르지 못해
산발한 버들가지 들어 물낯을 친다
오라
오라
- '버들 귀' 전문
시의 첫 줄은 마치 고조선 때에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었다고 전하는 '공무도하가'를 연상시킨다. '공무도하가'가 백수광부(白首狂夫)의 뒤를 따라 물에 빠져 죽은 백수광부의 아내를 안타까워하면서 지은 노래라면 시인이 부르는 노래는 귓속으로 흘러드는 소리가 두려워 부르는 노래다.
시인의 귀는 "신기료장수처럼 우는/ 귀"다. 시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버들귀'다. 맨 앞장에 실린 시는 시집에 실린 시의 방향을 암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 이 시인은 아주 위험한 귀를 가졌구나.
시집을 읽어나갈수록 시인의 귀가 듣는 소리가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가던 혼백이 내 베개 베는 소리를 듣(시 '불면')"거나 "꽃대 튼튼한 용설란이 산산조각 흰 요령 흔드는 소리(시 '애기옹관'). "계단 올라오는 소리/ 자물쇠 번호 누르는 소리/ 아이가 집 안으로 잉태되는 소리(시 '알을 배는 소리들') 등이 열거 된다.
귀를 열어놓고 잠들기만 하면 저절로 소리들이 흘러드는 것이다. 그의 귓속은 온갖 소리들이 번식하는 '풀숲'이다. "홀몸으로 알을 배는 소리"로 그득하다. 왜 그가 듣는 소리는 세상의 순리대로 자웅이 합쳐져서 번식하지 못하고 홀몸으로 알을 배는 걸까.
"오늘은 아이가 병중이고 (시 '불면')"라는 구절이나 "태어나 본 적 없는 핏덩이들이/ 엄마, 엄마, 부르며 클로로포름 냄새를 토(시 '빈집')"했다는 구절이나 "난산 끝에 어머니는/ 물러설 길을 못찾고 마른 아기를 낳았다(시 '갈치 낚시')라는 구절이나 "남자 없이 아이를 낳고 싶었다/ 내 자궁에 무릎 꿇고 앉아/ 낳고 낳아야 할 딸들을 담고 나오는 골목이 붉었다(시 '붉은 골목')"라는 구절들 속에서 내가 읽어 내는 것은 시인이 아기를 잃었거나, 난산한 경험이 있으리라는 추측이다. 만일 그런 구절들이 시를 쓰기 위해 나열한 단순한 허구에 불과하다면? 그럴 경우엔 세계의 황폐함과 불모성을 드러내려는 시적 장치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시인이 듣는 소리는 흘러드는 소리가 아니다. 자신의 의식 속에 잠자는 소리다. 그럼에도 시인이 그런 소리를 '깃든다'거나 '흘러든다'라고 하는 것은 상처를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으로 위장하고 싶은 심리적 기제 탓인지 모른다.
이 시집 속에서 내 개인적 기호를 만족하게 하는 시편들은 그런 윙윙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시가 아니다. "삶이 나를/ 이발소 그림처럼 지루하게 여기는 눈치( 시 '이발소 그림처럼')" 일 때 불현듯 떠나서 얻어오는 여행시편들이다. 여행길은 때로 '길이 멀어서 허공도 짐이(시 '길이 멀어서 허공도 짐이 되었다')" 될 만큼 힘들기도 하지만 이발소 그림 같은 일상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완숙한 여행시가 내 감성을 덮쳤다
조정 시인의 여행시편들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절창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길이 멀어서 허공도 짐이 되었다'라는 시도 절창이지만, '채석강'이란 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변산반도를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격포로 가는 길의 책갈피를 열어볼 때가 있다
뽕짝 메들리 왁자한 리어카에 기대어
서산서 온 노파는
고동 살 받아먹으며 시부렁거렸다
앞 절만 부르소 앞 절만 부르소
청 좋은 내 아들 부르게 뒷절은 냉개 두소
맥없이 부러진 이쑤시개를 주워들고
소금 한 주먹 삼키듯
개심사 명부전 주춧돌이 실하다고 했다
페이지가 낱낱이 암전인 바위를 옆으로 걸어가던
어린 게가
없는 강을 비추는 낮달의 이마에 손을 얹으면
황도십이궁 들고나는
그리움이 칼 맞은 자리처럼 읽힐 때가 있다
- '채석강' 전문
채석강을 소재로 한 시는 많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편만 해도 "종석♡진영 왔다 간다/ 비뚤비뚤 새겨져 있다// 채석강 암벽이 만 권의 서책이라 할지라도/ 이 한 문장이면 족하다(복효근 시 '명편')"나, "만 권의 책을 쌓아 올렸다는/ 채석강 절벽/ 황혼이 불타고 있다/ 분서갱유로 치솟는 불기둥이 저만했으랴(송수권 시'불타는 절벽')"라는 시편도 있다.
그러나 "앞 절만 부르소 앞 절만 부르소/ 청 좋은 내 아들 부르게 뒷절은 냉개 두소"라고 당부하는 서산 노파의 모정을 붙든 시 한 구절만으로도 이 시는 생생한 피가 도는 시편이 되었다. 시 '겨울 모슬포에 머물다' 도 그냥 스쳐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다.
모슬포 한장이 나를 덮쳤다
젓가락으로 멍게 한 점 들어 올리던 포장마차가 유리문
안에서 부르르 떨 때
저녁 불빛 한 점씩 어져녹져 깜박거리기 시작할 때
휘어지는지 울먹이는지
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허리에 어두운 치맛자락을 감고
한 바위섬이 다른 바위섬에게 다가서는 듯 다가서지
못하는 듯
낫바람 질러가는 띠풀 언덕에 말없는 말을 세워두고
선 채로 마신 한라산이 늙은 구름처럼 뜨거울 때
모슬포 한 장이 나를 덮쳤다
- 시 '겨울 모슬포에 머물다' 전문
시를 몇 번 반복해서 읽노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쓸쓸함이 가슴을 덮친다. 이 시를 너무 오래 들여다 보면 늙은 구름처럼 가슴이 뜨거워질 것 같다. 이 밖에도 '무위사' 나 '안좌 등대', '타클라마칸 바다', '사해를 떠나며' 등이 내 마른 감성의 현을 스치고 지나간 여행시편들이다.
주마간산 격으로 조정의 시를 다 읽었다. 아니, 그의 귀가 듣는 소리를 함께 들었다고 해야 하리라. 그에게 있어 귀는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또한 시인에게 귀는 눈이기도 하다. 귀로 들은 소리를 다시 풍경으로 환원시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귀와 눈이 만나서 변증법적으로 통일한 세계이다.
애써 감추려 들지만, 시 도처에선 생을, 이 세계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풀은 한 번도 초록빛인 적이 없다/ 새는 한 번도 노래를 한 적이 없다/ 해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치자꽃은 한 번도 치자나무에 꽃 핀 적이 없다(시 '이발소 그림처럼')"고 도리질 친다.
시인에게 세상은 부정하고 싶은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는 곳이다. '누에막 살던 연순이네' 같은 시나 '와온의 누' 같은 시편들을 보면 그의 따스한 감성들이 한껏 진하게 녹아 있다. 생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인의 잘못이 아니다. 아마도 '세상이 그따구로 생겨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집 뒤편에는 문학평론가 문혜원이 쓴 해설이 붙어 있다. 해설을 읽어 나쁠 건 없다. 그러나 평론가는 무지막지하게 불편한 사람이다. 그가 제시해준 가이드 라인을 벗어나면 틀린 답을 쓰는 학생 같이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오독하고 싶은 것은 내 본능이다. 시집을 읽을 때마다 난 오독의 충동을 느끼곤 한다. 뉘라서 내 그 지독한 본능을 막을 것인가. 출판사들이여, 앞으로 시집 뒤편에는 될 수 있으면 해설을 싣지 말지어다.
더 횡설수설하면 시집에 누가 될 것 같아 이 쯤에서 글을 줄인다. 내게 좋은 시집을 보내주신 '겨울산'님, 어째 이만 허면 시집 부쳐준 삯은 되았소?
눈이 수평선을 지우고
바다가마우지 떼를 지우고 온다
소나무 숲을 지나 송림 슈퍼에서 뜨거운 커피를 산다
알루미늄캔 속에 출렁이는 바다
낡은 목도리를 두른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끊어진 길을 위해
낡은 자전거를 불태운다
딛고 올라가기에 인생만큼 부실한 사다리도 없다
많은 침묵을 풀어 물위에 내려놓은 사람들이 바다를 빠져나간다
굳이 떠나야만 했던 길을 되짚어 가는 동안
눈은 한정 없이 쏟아지고
출항을 포기한 집들은 문을 깊게 닫고 잠이 들 것이다
빈 탈의실이 문도 없이 떨고 서 있다
푸른 비치파라솔을 그려 넣은 옆구리에 한 사내가 오줌을 눈다
내가 그만 바다와 저 비굴한 기다림과
이 추위 속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다
빈 캔을 주머니에 넣고
운동화를 벗어 털면
병든 시계바늘이 쏟아진다
엇갈린 바늘처럼 비명을 지르는 시계가 내 발바닥에 고인다
제 때 제 곳으로 가지 못하는 발을 위해 나는 발목을 불태워 버린다
거대한 냉기가 모래를 헤치고 엎드려
손을 내민다
조금 더 내리고 말 눈이 아니다
바다가마우지가 바다를 통째로 삼키고 올라온다
올라오지 않는다
바다가 큰손으로 나를 구겨서 쥔다
- '바다가 나를 구겨서 쥔다' 전문
덧붙이는 글 | 이발소 그림처럼/조 정/실천문학사/ 2007.1.30/ 7,000
| 2007.12.02 16:36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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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그림처럼
조정 지음,
실천문학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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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신고
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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