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벌금제라고 있어. 소득에 비례해 교통범칙금 등을 내는 제도인데 노르웨이와 핀란드 같은 북유럽에서 시행하고 있지. 지금 우리나라는 내가 교통법규 위반으로 걸려도 삼 만원, 이건희가 걸려도 삼 만원이야, 똑같지. 그런데 북구에서는 벌금도 세금처럼 내는 거야. 내가 삼 만원 내면 이건희는 300억 원 이상은 족히 내어야 할 걸?
……. 외국의 수준은 이미 세금을 넘어 벌과금을 주목하고 있는데 우린 지금 세금 하나도 제대로 부과하지 못하는 거야. 그러니까 부익부 빈익빈은 점점 더 간극을 벌리는 거잖아. 격차를 줄이고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려면 간접이익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고 있는 족속들에겐 세율을 올려야 해. 연예인, 법조인, 의사, 부동산 임대업자, 재벌……, 어이구, 좆같은 것들!”
한형우가 분통을 터뜨리며 다시 술잔을 치켜들었다.
“돈 많이 버는 정치인은 왜 빼냐?”
정성원도 술잔을 들며 한마디 거들었다.
“정치인이 버는 게 어디 정상적인 돈이냐? 그건 일고의 가치도 없이 몰수에다 구속이지. 그런 돈은 언급도 마라, 청렴한 세무공무원 입 버린다.”
“그건 그렇다 치고 계속 말해봐.”
정성원은 학구열에 불타는 착한 학생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의 법과 제도로는 반사이익의 수혜자들이 당연히 사회에 환원해야 할 재산을 내놓지 않아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왜냐하면 법과 제도를 운용하는 자들이 바로 반사이익의 수혜자들이고 그들의 목표는 사회 환원이 아니라 기득권 옹호거든? 그러니까 부익부 빈익빈은 더더욱 심화되고, 당연히 울분에 젖는 사람들도 꽤 된다고 봐야지.
지금까지 살해된 사람들 면면을 봐. 다들 반사이익의 수혜자인 기득권층이잖아? …….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해. 의식구조에 반사손해가 들어가야지만 문제해결이 시작될 수 있어. 반사손해를 알아야 반사이익이 뭔지도 알고, 그래야 뱉어낼 줄도 아는 거야.”
“반사손해는 또 뭐냐?”
정성원은 시나브로 한형우의 궤변에 말려든다는 걸 느끼면서도 선뜻 발을 뺄 수가 없었다. 한형우의 화술엔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그랬었다. 이른바 개똥철학인 그의 궤변은 동급생들의 뇌리를 심오하게 흔들어놓곤 했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한형우는 자신의 윤회론을 설파하고 다녔다.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흔히 윤회라 하면 한 주체가 내세에서의 환생을 거듭하는 것인데, 그의 윤회론엔 주체가 없었다. 아니 주체가 형성되기 전에 윤회의 개념이 적용되었다. 그는 ‘나’라는 주체를 인식하기 이전의 영아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수많은 아이들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나’를 찾아보라고 했다.
“주체를 인식하기 전의 ‘나’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현재의 ‘나’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를 찾을 수 있겠지만, ‘나’라는 현재의 인식을 배제한 상태에서 더듬어 보면 영아들은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다. 즉 ‘나’와 ‘너’라는 경계가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영아들은 자라면서 서서히 ‘나’와 ‘너’라는 경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이 개념에서 윤회는 이루어진다. 언제나 수많은 영아들이 태어나고, 그들은 ‘나’도 될 수 있고 ‘너’도 될 수 있는, 당장은 어떤 주체가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일지도 모르는 영아들이 끊임없이 태어나는 것, 이게 윤회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윤회론으로 본다면 ‘나’와 ‘너’의 경계는 애당초 없다. ‘나’가 ‘너’이고, ‘너’가 ‘나’이다. 곧, 우리 인류가 서로 사랑해야할 이유는 이처럼 자명하다.”
그렇게 한형우의 말을 듣다 보면 누구나 혼란을 가지게 마련이었다. 한편으론 쉽게 반박할 수 없을 만큼 그럴듯하다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거품처럼 알맹이가 쏙 빠진 소리 같기도 했다. 그래서 동급생들은 한형우에게 교주(敎主)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었다.
한형우에게 ‘반사이론’을 듣는 지금, 정성원은 마치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듯 새삼스러웠다.
“반사손해란 반사이익의 반대급부로써 생겨나는 거야. 대표적으로 교통사고나 건물붕괴사고 등 불의의 재난을 들 수가 있지. 그리고 연쇄살인사건 같은 범죄까지.”
한형우가 잠시 말문을 닫았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정성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얼핏 광기가 느껴졌다.
“그렇다면 교통사고의 반사이익 수혜자는 누구이며 건물붕괴사고의 반사이익 수혜자는 누구일까?
“…….”
“건물붕괴사고의 반사이익 수혜자는 건축시공으로 이익을 본 사람 중에서도 특히 부실시공을 눈감아 주고 검은 돈을 챙긴 놈, 그리고 자재를 규정 이하로 채워 넣은 업자라 할 수 있어. 또 교통사고의 반사이익 수혜자는 자동차 생산으로 이익을 창출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왜냐하면 교통사고가 빈번하다는 것은 그 만큼 자동차가 많이 만들어졌다는 증거니까. 야, 정성원!”
한형우의 광기에 찬 듯 보이는 눈은 바로 술 때문이었다. 반사이론을 말하고 듣는 동안 홀짝홀짝 마신 술이 벌써 다섯 병이나 비워져 있었다. 정성원도 취기를 느끼며 대꾸했다.
“왜?”
“반사손해를 정확히 파악해야 반사이익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거야. 그저 눈앞의 이익만 보고서 쾌재를 부를 게 아니란 말이지. 닥쳐올 반사손해를 예견한다면, 아마 이익이 보인다 해도 두려워서 선뜻 챙기지 못할 거야. 하지만 반사손해란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오는 게 아니라, 아주 서서히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기 때문에 이 미련한 인간들은 그걸 몰라. 자기 발등에 직접 불이 떨어지지 않으면 전혀 모르거든? 새대가리 같은 새끼들!”
“…….”
| 2007.12.02 18:57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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