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베지강은 앙골라에서 발원해 보츠와나~잠비아~짐바브웨~말라위를 거쳐 아프리카 동남부 모잠비크 해안으로 무려 2,740㎞의 길이를 흘러간다. 잠베지는 ‘큰 수로’, ‘위대한 강’이라는 뜻이다. 빅토리아 폭포는 이 잠베지강의 중류에 위치한다.
조수영
고무보트에는 6명씩 탔다. 내가 탄 배에는 미국·남아공·독일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독일에서 온 두 남자가 잘난 체하며 맨 앞에 앉더니, 나와 미국에서 온 마가렛에게 맨 뒷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우리는 앞에 앉은 두 청년을 '(잘난 체 하는) 근육맨'으로 부르기로 했다. 맨 앞자리에 앉는 것이 급류를 정면으로 만나는 스릴은 있겠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노를 젓지 못하면 배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기 때문에 좀 더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다.
일단 배를 강 한가운데까지 노를 저어가야 한다. 서로 박자를 맞춰 저어야 하는데 우렁찬 구령에 비해 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도대체 저 근육맨은 힘을 어디로 쓰는 거야? 힘도 들고 배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팀원들의 호흡도 맞지 않고, 햇빛은 점점 뜨거워지고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차라리 헬기나 탈 걸….
안전요원은 혼자서 카약을 타고 주변을 맴돈다. 마치 준비운동을 하듯 갑자기 카약을 뒤집었다 다시 일어선다. 이외에도 그는 카약을 이용한 묘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차라리 저걸 탈 걸 그랬다. 이번에는 안전요원을 보고 좋아라 하는 우리를 본 근육맨들이 화가 났다. 처음부터 팀원들이 이렇게 삐걱대는데 이 배가 어느 산으로 올라갈지 모르겠다.

▲래프팅에서 노젓기는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고려해야 한다. 작용과 반작용은 같은 힘이기 때문에 당연히 힘을 주는 것만큼 받는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자연에서는 ‘주는 것만큼 받는다’가 철저하게 통한다.
조수영
작은 급류가 나타났다. 오른쪽에 있는 바위를 피하기 위해 근육맨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를 세게 저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이다. 배는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자칫 고무보트에 구멍이 날 뻔했다. 오른쪽의 바위를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가려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노를 저어야 한다.
근육맨의 실수는 과학시간에 배운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무시한 탓이다. 노를 젓는 것은 물을 밀어낸 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노를 저어 물을 뒤로 밀어내면 물은 노를 앞으로 밀어낸다. 노가 물을 밀어내는 힘이 물에 가한 '작용'이라면 물이 노를 밀어내는 힘은 '반작용'인 것이다. 이번 일로 근육맨들 기가 좀 죽었다.

▲래프팅은 기본적으로는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 갔다가 정말 우연하게 생각해 낸 부력, 나무 그늘 밑에서 사과 떨어지기나 기다리던 뉴턴이 정립해 낸 관성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 성직자가 되려다 수학자가 되어 골 때리는 미적분학을 더 어렵게 만든 베르누이의 정리 같은 정말 기초적인 물리적 원리와 법칙들의 끝없는 지배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흐르고 있는 모든 것에 관한 유체 역학은 참으로 어렵고도 신기한 물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수영
스릴 만점, 래프팅다시 급류가 보인다. 멀리서도 물보라가 보이는 것을 보니 물살이 좀 더 강한 것 같다. 래프팅이 뭐 물 흐르는 대로 보트에 몸을 싣고 있기만 하는 간단한 레포츠이긴 하지만 간간이 나타나는 급류를 만나면 긴장감이 생긴다.
완만한 경사면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급한 경사면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물살의 속도가 빨리 증가하면서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래프팅의 짜릿한 스릴의 비밀은 이 가속도에 있다. 즉 얼마나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속도 변화가 심한가에 따라 그만큼 스릴을 느낀다.
좀 더 래프팅의 스릴을 느끼고 싶다면 급류의 뜻에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경사면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몸을 앞으로 숙이면 보트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가슴이 철렁하는,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을 좀 더 오래 느낄 수 있다.

▲잠베지강과 빅토리아 폭포. 넓은 대지를 달리던 잠베지 강은 마치 대지의 빈틈에 이르러 한꺼번에 떨어져 내리는 모습으로 거대한 폭포를 만들었다. 그 후 오랜 세월 폭포의 물줄기는 바위를 깎고, 폭포의 위치를 지그재그 모양으로 후퇴시켰다. 현재의 빅토리아 폭포의 위치는 처음 위치로부터 약 80km 정도 상류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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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재그 모양의 잠베지 협곡은 현무암이 응고하면서 갈라져서 생긴 대지의 틈이다. 협곡의 절벽은 시커먼 현무암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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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은 관성의 법칙 덕분작은 폭포가 나타났다. 카약을 탄 안전요원이 보트를 꽉 잡으라고 소리쳤다. 폭포 끝자락에서 순간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몸은 보트의 손잡이를 잡으면 튕겨나가지 않지만 몸속의 내장들은 일종의 유체이기 때문에 하늘로 쏠려 올라간 것 같다. 일종의 유체이탈이라고 할까. 가벼운 마가렛은 아예 어디론가 날라 가 버렸다.
몇 개의 급류를 지나면서 노를 젓는 요령도 터득하고, 팀원들의 호흡도 맞춰진 것 같다. 근육맨도 더 이상 잘난 체하지 않았다. 이제야 잠베지 계곡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협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잠베지 강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협곡이다. 깎아놓은 듯한 100m가 넘는 협곡은 열대 우림의 숲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두 나라의 국경을 이루는 잠베지강은 왼쪽이 잠비아이고, 오른쪽은 짐바브웨 땅이다. 가파른 벼랑 위에는 화려하게 지어진 롯지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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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다음 급류에서 보트를 한번 뒤집어 보자고 제안했다. 물살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보트는 뒤집히지 않고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흐름에 거역하고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보트가 뒤집히는 것이다. 재밌겠다.
보트가 거꾸로 서고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댄다. 모두 보트에서 떨어져 물속으로 내팽개쳐졌다. 물에 빠져도 잠시만 숨을 참고 가만히 있으면 구명조끼의 부력 때문에 떠오를 텐데 왜 모두 버둥대는지 모르겠다.
떠오르는 순간 누군가가 내 어깨를 짚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마가렛이었다. 무슨 물귀신도 아니고 자신이 살려고 나를 누르다니…. 그러나 당황한 마가렛은 나를 물속으로 눌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잔뜩 먹은 강물 때문에 웩웩거리고 있다.
계속되는 급류를 지나면서 작은 배에 몸을 실은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어 갔다. 물살이 잠잠해졌을 때 우린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했다. 까칠했던 근육맨과도 친해졌다. 어느덧 반나절의 래프팅 코스가 끝이 났다.

▲래프트의 재질은 공기가 찬 고무나 PVC이므로 물에 쉽게 뜬다. 여기에 사람이 얼마나 타느냐에 따라 래프트가 물에 잠긴 정도가 달라진다. 사람이 많으면 중력이 커진다. 따라서 부력도 커져야 물에 뜰 수 있다. 이때는 중력과 부력이 서로 평형을 이루기 위해 배가 물에 더 많이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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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프팅을 마치고 저 가파른 절벽을 올라왔다. 잠베지강 래프팅을 100미터 절벽아래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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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나의 마지막 소박한 기대를 과감하게 무너뜨렸다. 래프팅을 마치고 올라올 때도 100m 아니 더 깊은 골짜기를 다시 올라와야 했다. 나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낑낑거리고 있는데 스태프들은 우리가 탔던 거대한 보트를 등에 지고도 쑥쑥 올라간다. 마치 축지법을 쓰는 것 같다. 근육맨이 내미는 노의 한쪽 끝을 잡고 간신히 협곡을 빠져나왔다.
계곡을 올라오면 다 같이 간단하게 식사를 하게 되는데 너무 힘이 들어 입맛도 없다. 맥주만 두 병째 마시고 있다. 비교적 잔잔한 물살 때문에 역동적인 래프팅을 기대한 나에게는 실망감이 적지 않았지만, 코스가 끝나고 땅에 발을 디뎠을 때는 팀원들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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