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멸망해도 우리는 살아남을 걸?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18] 블라와요 바퀴벌레 열차

등록 2007.12.23 13:15수정 2007.12.2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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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폴스 역. ⓒ 조수영

빅토리아 폴스 역. ⓒ 조수영
여행 18일째(1월 19일), 늦은 저녁 블라와요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빅폴에서 야간기차로 12시간을 달리면 아침에 블라와요에 도착하고, 다시 버스로 5시간 달려서 마스빙고에 도착해서도 또다시 1시간 더 가야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으로 갈 수 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오자 커다란 짐을 든 현지인들이 모여들었다. 한사람이 이불보따리 같은 짐을 최소 세 개씩 들고 탄다. 침대칸은 4인 1실의 구조였는데 너무 낡았다. 낡은 침대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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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폴스 역 ⓒ 조수영

빅토리아폴스 역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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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지도. 빅폴에서 블라와요까지는 야간기차를 타고,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마스빙고로, 다시 버스를 타고 그레이트짐바브웨로 가야한다. 버스기사는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최근 경제불황과 불안정한 정치로 여행객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다. ⓒ 조수영

짐바브웨 지도. 빅폴에서 블라와요까지는 야간기차를 타고,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마스빙고로, 다시 버스를 타고 그레이트짐바브웨로 가야한다. 버스기사는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최근 경제불황과 불안정한 정치로 여행객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다. ⓒ 조수영

 

갑자기 옆 침대에서 짐정리를 하던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윽, 바퀴벌레 한 쌍이 침대시트 위에서 꾸물거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사는 놈들보다 훨씬 크고 색깔도 반투명한 갈색인 것이 벌레라기보다 외계생물체 같다.

 

너무 무섭게 생겼다. 슬리퍼를 날려 압사시킬까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밤새 이놈들과 동침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승무원이 들어오더니 침대 주변에 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놈들 기절은 커녕 '거 냄새 한번 고약하군'하는 여유있는 걸음으로 열차의 빈틈으로 숨어버렸다.

 

지구가 멸망해도 우리는 살아남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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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열차지만 나름 1등석이 있다. 왼쪽 벽에 붙은 것은 세면대, 단두대 창문, 바퀴벌레가 뒹구는 침대. ⓒ 조수영

바퀴벌레 열차지만 나름 1등석이 있다. 왼쪽 벽에 붙은 것은 세면대, 단두대 창문, 바퀴벌레가 뒹구는 침대. ⓒ 조수영
생물학자들은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이 바퀴라고 말한다. 바퀴의 조상은 3억 년 전쯤부터 지구에 살았는데 한때 지구를 점령했던 공룡은 다 멸종했어도 바퀴는 살아남았다.

 

바퀴는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미세한 털들은 공기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순식간에 도망칠 수 있다. 위험을 감지하고 도망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001초다.

 

1초에 25번이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바퀴는 1초에 1m의 속도로 달린다. 사람이 자동차의 속력으로 달린다고 상상하면 된다. 이런 속도로 달리면서 방향을 민첩하게 바꾸는 동물은 바퀴밖에 없다.

 

외부 골격은 오그라들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조그만 틈이라도 비집고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바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혐오감을 주는 외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완전 멸균처리 했다고 해도 바퀴벌레가 담긴 주스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승무원이 뿌린 약 덕분에 바퀴벌레는 일단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질식할 것 같다. 굳게 잠긴 창문은 꿈쩍을 하지 않는다. 창틀에 오래된 녹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힘겹게 열었더니 어느새 '슝' 내려와 손목이 날아갈 뻔 했다. 무슨 단두대도 아니고 섬뜩하다. 다시는 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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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와요로 가는 기차안. 처음으로 흑인들의 시선이 무섭다고 느껴졌다. 사진은 실제보다 무지 밝고 깨끗하게 보이는 거다. ⓒ 조수영

블라와요로 가는 기차안. 처음으로 흑인들의 시선이 무섭다고 느껴졌다. 사진은 실제보다 무지 밝고 깨끗하게 보이는 거다. ⓒ 조수영
배낭을 올리고 잠자리를 정하고 나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졌다. 끝없는 초원 위를 달리는 기차는 중간 역들에서 쉬었다 가기를 반복하면서 어둠 속을 질주했다. 불빛 한 점 없으니 암흑에 빠져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맥주라도 한잔 하자고 찾아간 식당 칸의 분위기는 음침하기까지 했다. 어두운 조명에 어두운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머쓱하게 웃으며 들어서는데 그들의 굳은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어려운 경제적 형편이 차림새와 표정으로 나타난 것 같다. 처음으로 눈의 흰자위밖에 보이지 않는 흑인의 얼굴이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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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 창문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 빅토리아폴스를 출발한 바퀴벌레 기차는 밤새 달려 새벽에 블라와요에 도착한다. ⓒ 조수영

단두대 창문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 빅토리아폴스를 출발한 바퀴벌레 기차는 밤새 달려 새벽에 블라와요에 도착한다. ⓒ 조수영

 

새벽에 일어나 기차의 복도로 나왔다. 문을 열자 쿰쿰한 침실의 공기와 차가운 새벽 공기가 섞이고 있다. 창밖에는 황량한 들판과 척박한 땅이 이어지고 곳곳에 불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태양이 구름을 붉게 물들이면서 모습을 드러낸 아프리카의 대지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화면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기차선로의 주변은 지저분한 쓰레기로 그득했다.

 

여자는 오른쪽으로만 가면 된다?

 

블라와요는 수도인 하라레에 이어 짐바브웨 제 2의 도시이다. 도시의 이름은 학살의 도시라는 뜻이다. 하라레의 의미도 '잠들지 않는 자'인 걸 보면 짐바브웨 사람들은 자극적인 이름들을 좋아하나 보다. 해가 지기 전에 그레이트 짐바브웨에 유적지에 들어가기 위해 서둘러 버스를 탔다. 어김없이 버스는 손님을 꽉 채우고 출발했다. 오늘은 버스 앞쪽에서 닭 우는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 닭도 몇 마리 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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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와요 역. 블라와요라는 뜻은 '학살의 도시'라는 뜻이다. 새벽에 이곳에 내릴 때만 해도 이 곳이 여행자들의 지갑에 학살의 도시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조수영

블라와요 역. 블라와요라는 뜻은 '학살의 도시'라는 뜻이다. 새벽에 이곳에 내릴 때만 해도 이 곳이 여행자들의 지갑에 학살의 도시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조수영

한참을 달렸을까? 버스기사가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봐도 건물 하나 없는 벌판이다. 게다가 내리려 해도 통로까지 채워진 짐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는 없다. 결국 창문으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벌판 화장실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버스에서 내려 여자들은 오른쪽으로, 남자들은 길을 건너 왼쪽으로 나뉘어서 볼일을 보는 것이다. 우산이라도 펴서 뒷모습을 가리려고 하는데 눈치를 보는 우리가 오히려 구경꺼리다. 덩치 큰 흑인 아줌마들은 우리의 허연 엉덩이를 힐끗 보곤 웃음을 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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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짐바브웨 가는 길. 비좁은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야 한다. 배낭을 차위에 올리면 없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에 안고 타야 한다. ⓒ 조수영

그레이트 짐바브웨 가는 길. 비좁은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야 한다. 배낭을 차위에 올리면 없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에 안고 타야 한다. ⓒ 조수영

 

짐바브웨는 '돌로 만든 집'이라는 뜻

 

그레이트 짐바브웨에 가까워지면서 느껴지는 것은 크고 작은 돌산들이 많다는 것이다. 과연 '돌의 집'이라는 짐바브웨의 이름이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짐바브웨는 영국의 지배를 받은 시기에는 '남로디지아'라고 불렸다.

 

독립을 하면서 이 유적지의 이름을 따서 짐바브웨라는 나라 이름을 지었다. 짐바브웨는 쇼나족의 말로 '돌(bwe)로 지는 집(zimba)'를 뜻한다. 말 그대로 온 국민이 돌로 지은 집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일찍이 대한민국이라는 거창한 나라이름을 사용해 온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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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본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 끝없이 펼쳐진 사바나에 육중한 화강암 언덕이 버티고 있다. 그런 바위들을 기둥삼아 또는 벽을 삼아 바위산 위에 성을 쌓았다. ⓒ 조수영

멀리서 본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 끝없이 펼쳐진 사바나에 육중한 화강암 언덕이 버티고 있다. 그런 바위들을 기둥삼아 또는 벽을 삼아 바위산 위에 성을 쌓았다. ⓒ 조수영

 

지금까지 거쳐 온 아프리카의 나라들의 화폐에는 버팔로 같은 동물들의 그림이나 대통령의 얼굴이 있었지만 짐바브웨의 화폐에는 3단으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밸런싱 바위'가 그려져 있고, 국기에는 이 곳에서 발견된 돌조각 짐바브웨 버드가 그려져 있다. 그만큼 쇼나족에게 돌은 나라이름으로 지어질 만큼 문명의 시작이고 정신적 교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쇼나족은 짐바브웨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부족이다.

 

오늘밤은 유적지 안에 있는 롯지에서 지내기로 했다. 주변에 아무런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다른 선택이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국립공원 안에 취사가 가능한 캠프장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입장료를 계산하는 법도 희한했다. 현지인들은 5불의 가격이고, 우리는 3배에 해당하는 15불을 내야 한다. 그렇다면 15불짜리를 따로 만들어 놓아야 할 텐데 현지인 표를 3장씩 끊어서 준다. 정말이지 눈앞에서 코 베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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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5달러인 그레이트짐바브웨 유적지 안에 있는 도미토리. 창고같이 생긴 건물에 100명이 지낼 수 있는 규모다. ⓒ 조수영

하룻밤에 5달러인 그레이트짐바브웨 유적지 안에 있는 도미토리. 창고같이 생긴 건물에 100명이 지낼 수 있는 규모다. ⓒ 조수영
2007.12.23 13:15 ⓒ 2007 OhmyNews
#아프리카 #짐바브웨 #바퀴벌레 #짐바브웨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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