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을 몰아낸 미군이 해방군인가?

김정현이 쓴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

등록 2007.12.17 09:50수정 2007.12.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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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 겉 표지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 겉 표지 ⓒ 휴먼비전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 겉 표지 ⓒ 휴먼비전

아프가니스탄은 ‘잊혀진 땅’이었습니다. 지난 7월 19일 선교활동을 떠난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되기 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납치범들에게서 한국인 인질들이 풀려난 후에는 어느새 또 다시 ‘잊혀진 땅’이 되고 있습니다.

 

다산·동의부대의 완전 철군 소식이 반갑게 들려오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고,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리에게는 잊혀진 사람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지난한 고통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간간히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전해주는 국내 보도를 살펴보아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국들에게 탈레반 정권이 축출되고 나서도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미국의 파상공격에 숨통이 끊길 듯하였던 탈레반은 파키스탄 국경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조직을 추스르고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게릴라 전투를 재개하여 폭탄공격뿐만 아니라 빈번한 자살폭탄공격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에 아프가니스탄에 쳐들어가서 불과 두 달만에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 점령이 목적이기 때문에 끝내지 않은 것인가 하는 의혹마저 들기도 합니다.

 

전쟁 시작 후 7년이 지난 지금 탈레반 무장 세력의 공격과 자살폭탄테러,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나토군의 탈레반 색출을 위한 무차별적인 폭격피해는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겪는 이중고입니다. 각종 유혈사태는 점점 늘어나고 2006년에만 189회의 폭탄공격으로 500여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만을 재건 복구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간의 석유’로 불리는 아편 생산량은 국민총생산을 넘어설 만큼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전체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12% 정도가 아편 재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지난 7월 한국인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외신 보도만 쫓아가는 안타까움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전해주는 대부분의 뉴스는 외신을 인용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에게서 더 빨리 잊혀지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남의 일이라고 꼭 남 이야기하듯이 쓴 책

 

최근 작가 김정현이 쓴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가 출간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쓴 아프가니스탄 이야기가 흔치 않기 때문에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건 아닌데” 하는 아쉬움과 부족함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도대체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여러 번 되살펴보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를 읽은 첫 느낌은 참으로 담담하다는 것입니다. 한 없이 담담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이야기’를 정말로 ‘남의 이야기’처럼 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래 먼지가 풀풀 날리는 아프가니스탄 땅만큼이나 건조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문득 소설가가 쓴 여행기이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지요. 저널리스트들이 전해주는 소식 같은 구체적인 자료와 근거들도 부족하였고,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이해할 만한 정보들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우선 이 책에는 지은이가 언제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왔는지, 무엇 때문에 다녀왔는지 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아도 대략 어림잡아 짐작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분명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더군요. 그 지은이는 이 여행을 통해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겉모습을 아주 상세히 묘사한 것에 비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수고는 외면해버린 듯합니다.

 

김정현이 쓴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사이>에서 지은이는 아프칸 사람들을 눈으로 만납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거리를 걸어가면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자신의 방식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이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책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책 제목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사이>에서 사용하고 있는 절망과 희망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절망과 희망일 뿐입니다. 지은이는 전쟁의 폐허와 가난 그리고 척박한 땅과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서 한없는 절망에 빠졌다가, 마침내 동족간의 경쟁을 통해서 마침내 그들이 삶의 욕구를 다시 불러일으키리라는 ‘희망’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아프칸 사람들은 쪽팔리는 줄 몰라서 가난하다(?)

 

지은이는 힌두쿠시 계곡을 여행하다가 온통 가난과 척박함으로 기억하였던 아프가니스탄에서 벤츠 급 승용차를 타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을 보고서는 ‘희망’을 발견하였다고 하더군요. 전쟁 중인 나라에서 그만한 부를 축적한 경로가 한 순간에 그려졌지만, 눈살을 찌푸리기보다 희망을 찾아내었다고 합니다.

 

“본디 문명은 가진 자, 넉넉한 곳에서부터 비롯되어 부를 추구하는 자의 선망, ‘쪽팔림’이라 여기고 그것을 벗어나려는 욕망으로 전이되고 확산되어 점점 더 보완되고 발전하는 것이지요.” (본문 중에서)

 

“그렇게라도 욕망의 불이 지펴지면 세상은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습니다. 비루하고 무지렁이 같기만 한 민중에게는 보이지 않는 천지개벽의 힘이 잠재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희망을 그린 것이었습니다.”(본문 중에서)

 

요약하자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쪽팔리게’ 생각하고, 잘 살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부자가 마약을 거래하였든, 동족을 팔아먹었든, 어떤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던 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은이가 보기에 가난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욕망’에 불이 지펴지기만 하면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인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로 지은이의 말처럼 아프가니스탄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없어서 가난할까요? 정말 그들이 가난한 것이 더 잘살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30여 년간 계속되는 내전과 소련과 미군에 의한 점령이 나라 전체를 가난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프칸 여성들에게 미군은 해방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후 점령 정책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 또한 도를 넘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마침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비록 부르카를 착용하고서라도 자유롭게 집 밖으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여인들에게 ‘혼자서’ 집 밖으로 나설 수 있는 작은 숨통을 터 준 것만으로도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전쟁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 하겠습니다.” (본문 중에서)

 

달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든, 송유관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든 적어도 미국이 탈레반 치하에서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을 구원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입니다. 지은이의 주장처럼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설 수 있는 자유’를 가져다준 미국에 감사하고 있을까요?

 

김정현이 쓴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에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을 이해하기 위하여 객관적으로 신뢰할 만한 통계자료들, 책임 있는 사람들, 혹은 서로 다른 입장에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냥 여행하면서 만난 평범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겉모습을 쫒아가며, 지은이가 몇 권의 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비춰보는 형식으로 씌어졌을 뿐입니다.

 

최근에 대선을 앞두고 여러 대선 후보들의 자서전을 읽고 서평을 써보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책만 읽고 결국 기사로 작성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자칫 서평 기사를 읽고 저처럼 책을 사서 읽은 독자들이 ‘돈’ 주고 책 산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정현이 쓴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의 서평을 쓰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바로 서평기사를 읽고 책을 사는 사람이 생기면 어쩌나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도 서평을 올리는 이유는 제 서평을 읽은 독자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이해하기 위하여 책을 선택할 때, 이 책을 꼭 피하라는 마음에서입니다.

2007.12.17 09:50ⓒ 2007 OhmyNews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

김정현 지음, 장현우 사진,
휴먼비전, 2007


#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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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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