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겐 구걸하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요"

[평범한 아줌마 선생의 인도여행⑤] 잊혀지지 않는 두 명의 아가씨

등록 2007.12.28 14:32수정 2007.12.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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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4일 화요일] 새로운 아침

 

벌써 창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어린 빛이 커튼 뒤에서 슬며시 끼웃거리며 나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미동도 않은 채 가벼운 달콤한 잠의 여운을 느끼며, 손끝을 더듬어 머리맡에 놓여있을 시계를 찾아냈다. 시계바늘이 일직선으로 나란하다.


‘그럼 6시? 이른 시간이네…. 하지만 한국시간 8시 30분. 그럼 난 아이들을 겨우 깨워놓고 벌써 학교에 도착할 시간이잖아. 뭐야! 난 지금 여행 중이라구!’

 

커튼이 휘이익~날리자, 찬 기운이 곧바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온다. 슬쩍 챙겨온 아시아나항공 담요를 끌어당겨본다. ‘이 숄이 이렇게 요긴할 줄이야. 클클….’


적당히 휴대하기 간편한 항공사 담요는 숄도 되고 타월, 이불로, 때론 치마로, 심지어 나중엔 야외 화장실 칸막이로도 썼다. 특히, 이곳 히말라야 몬순의 밤 추위에 살짝 지칠 때면 나를 참 잘 감싸준, 여행 내내 고마운 담요였다. 그런데 맥간에서는 여러 항공사의 담요가 나풀거리며 길에서 활보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 게스트하우스는 산책하기에 좋은 지점으로 바로 숲길로 이어지고 조금만 올라도 주변의 산등성이까지 활짝 펼쳐진 병풍처럼 보인다고 치치엔이 가르쳐주었다. ‘오늘 직접 밟아보는 거야! 근데, 머리를 감아야 하나? 에잇! 안하고 싶다!’ 거울 앞에서,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박준)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머리를 감는데, 내가 매일매일 머리를 감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출근하기 위해. ‘매일매일’이라는 것이 답답했어요.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리고 책 속의 그녀는 긴 여행을 떠났단다.
 
티벳 할머니와의 아침 산책


움칠하는 싸한 아침공기에 입 맞추고 비에 젖은 풀잎 위로 이슬방울에 윙크. 자꾸 주변의 자연식구들에 시선을 빼앗긴 탓에, 마침 그 곁을 지나는 한 사람을 놓칠 뻔했다. 양 손의 손톱을 마주 비비며 열심히 걷는 할머니.

 

“안녕하세요. 혹시 산책하시는 길 아니세요?”
“그래요. 일본인?”
“아니구요. 하하. 혹시 방해가 되지 않으시면 함께 동행해도 될까요?”

“좋오치. 그러시구려.”
“그렇게 손톱을 비벼대면 건강에 좋은 건가요?”

 

Kalsang이란 이름의 티벳 할머니. 1959년 티벳에서 언니와 단 둘이 탈출해서 이곳 맥간으로 들어와 역시 티벳 본토에 가족을 남겨두고 홀홀 단신 흘러온 남편과 만나 결혼했지만, 일찍 사별하고 혼자 두 아들을 키워낸 전형적인 티벳 난민 1세대다. 큰 아들은 결혼하여 델리에서, 작은 아들은 맥간과 1시간 거리인 다람살라에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거리의 인도 고아여자아이를 입양하여 단둘이 티파(Tipa-티벳 전통예술공연단Tibetan Institute of Performing Arts 소녀들의 집)에서 살고 있는데, 티파의 ‘소녀들의 집’의 사감으로서, 그리고 기념품점의 일꾼으로 지내오고 있었다. 
  
산책로는 들은 바와 같이 매우 훌륭했다. 히말라야 산길 아니던가? 길이 산을 휘돌 듯 완만한 경사로 감아 오르고 길가엔 울창한 흑송. 숲이 우리 곁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따른다. 키 작은 땅꽃들이 빛깔과 종류를 달리해서 아낌없이 찬조 출연해준다.

 

“좋네요. 이 공기내음. 흐음. 이 시간에 산책하는 분들이 없나봐요. 통 사람이 뵈질 않아요.”
“그려. 하지만 조금 있음, 중늙은이 남자 하나 나타날껴….”

 

중늙은이 남자 하나가 지나가고, 완전히 마을을 벗어나 호젓한 산길이다. 다소 가파른 길을 지나자, 좁은 오솔길이 나타나고 갑자기 시야가 확 트였다. 맞은 편 산기슭 오른쪽 평지에 어렴풋이 보이는 마을이 다람살라다. 너무 좋아서 입이 자꾸 헤벌레 벌어진다. 벌어진 입이 또 웃는다. 거대한 원시림에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호젓이 걷는 즐거움이란 말로는 이루 형언키 어렵다.

 

“즐거웠어요. 참, 감사합니다를 티벳어로 뭐라 하나요?…”
“뚜치치에나 라고 하고. 헬로우는 따시딜레라고 하우. Good luck!의 뜻이지.”
“네. 그럼, 오늘 뚜치치에나네요. 그런데요, 내일도 같이 산책할 수 있을까요?”
“허허… 좋지. 우리 집에 가서 아침 같이 안 할라우? 바쁜 일 없음 같이 가면 좋겠구먼….”
“네? 좋아요.”

 

애잔한 눈망울의 인도아가씨 빠산

 

칼상의 집 앞 작은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잘 가꾸어진 화초들이 막 꽃들을 피워대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빠산. 움츠리고 수줍고 다소곳한 모습이, 길가 키 작은 들꽃같다. 그런데, 가만히 그녀의 동선을 보아하니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눈치다. 거실 쇼파에 깔려 있는 쿠션 하나도 흩뜨러질 세라 민첩하게 치워냈다. 그녀의 방은 부엌 옆 어둔 창고 구석에 라면박스 같은 서랍 둘, 침대 하나가 전부. 전등조차 변변치 않다.

 

‘딸이라기보단 부엌데기로 키워진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꼬리를 물고. 하지만, 언젠가 방송에서 국내입양 담당자가 국내입양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 사람들은 입양이라 하면 마치 꼭 친자식처럼 키워야 한다는 의식이 너무 강해 오히려 걸림돌이 됩니다. 소박하게 가족이란 분위기에서 밥 한 끼 함께 먹을 수 있어도 아름다운 입양일 수 있어요.” 
  
빠산은 칼상에 대한 고마움을 내게 자주 표현했다. 자신을 거두어 이만큼 키워준 것을 큰 자비로 여기고 있었다. 그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걸 바지런이 집안일을 함으로써 보답하려는 거 같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성실한 표현법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느낀 것이었는데, 적어도 식사 도중에 그녀가 눈칫밥을 먹고 있지 않는 건 분명했다. 빠산의 식사량은 어른 장정의 몫만큼 컸다.   
 
아침식사는 푸짐하고 훌륭했다. 국수종류인 뚝빠와 삶은 달걀, 감자졸임 그리고 짜이(뜨거운 물에 티를 우려낸 후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만든다)…. 칼상의 집에서 마신 짜이는 달콤하기가 코코아 같고, 빛깔도 연한 코코아 타놓은 것 같다. 보온병에서 막 부어내 따끈한 것이 입안에 퍼져갈 때의 그 느낌은 고향의 어머니 같았다.

 

암튼, 아침 산책 후 마시는 음료로는 최고! 몬순의 축축하고 차가운 아침공기에 젖은 몸과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주었으니까. 칼상은 한 두 모금 마시기가 무섭게 항상 다시 부어 꼭꼭 잔을 채워 주었는데, 한 번 방문할 때마다 몇 잔 정도 마셨을까? 계산해본 적은 없지만 대략 6~7잔은 족히 마셨을 것이다. 그 집을 나올 때는 짜이 냄새가 온 몸에 배어 있는 거 같았다. 이제는 그 짜이 한 모금이 왜 이리 그리운지.

 

“빠산이, 음식솜씨도 좋고, 부지런하다우. 저 애 부모는 걸인이었어. 야가 5살 때 부모가 알코올과 마약 중독으로 거리에서 죽고, 그 때 이집에 데려왔다우. 이제 가르칠 만큼 가르쳤고, 시집갈 나이인데, 마땅한 젊은이가 아직 나타나질 않아 걱정이라네. 난, 인도사람보다 티벳 사람에게 보내고 싶어.”
“아드님이 있는 델리로 보내 그곳의 인도청년을 만나는 것은 어떨까요?”
“인도인들은 게으르고 무책임해요. 이곳에서도 약(환각제) 먹고 술 마시고 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인도인이란 말이우.” 
   
이곳에선 아랫지역과 달리 인도인들이 주로 하층계층으로, 걸인, 청소부, 막노동자들, 호객꾼, 드물게 일부 상인계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검은 피부의 빠산은 자신이 인도인이란 것이 싫다고 했다. 지금은 힌두어뿐 아니라, 티벳어에 능숙할만큼 어엿한 티벳 여성으로 키워졌지만, 자신의 검은 피부는 늘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을 이질적인 존재로 여기게 한다고 했다. 빠산은 인도소녀지만, 티벳 식으로 성장한 문화적 혼혈아인 셈이었다. ‘그녀가 뿌리내릴 곳은 어디일까? 같은 인도 땅이지만, 티벳 문화가 주류인 이곳에서….’

 

특히 그녀는 이곳 티파의 예쁜 아가씨들과 자신을 은연중에 비교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였을까? 빠산의 눈은 항상 깊고 슬퍼보였다. 입이 웃고 있을 때도 그랬다. 한창 꽃 같은 나이인데.

 

티벳난민의 문화 수호 베이스 캠프 티파
 
빠산을 보면서 대륙 인도를 생각한다. 인도는 워낙에 땅덩어리가 넓고, 역사가 오래되어 인종, 종교, 문화에 있어 그 다양함이란 얄팍한 나의 상상을 넘어섰다. 한눈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쉬운 예는 인도지폐. 인도에서 헌법상 정해진 공식어는 18개로, 지폐 뒷면에 공식어 15개가 나란히 쓰여 있었다. 그러니 오죽하겠는가?

 

현재 통용되는 언어 수는 1652개, 인구100만 명 이상을 차지하는 언어만 해도 23개의 언어. 모든 언어의 어머니라는 산스크리트어로부터 분화된 자손으로서 언어만 해도 200여개? 이런 와중에 티벳난민들이 자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애써온 흔적 중 하나가 바로 티파였다(주소 P.O Mcleod Ganj - 176219/ Dharamsala, Distt, Kangra/ (H.P) India /www.tibetanarts.org/E-mail : tipadhasa@hotmail.com).

 

거의 점심나절이 다 돼서야 그녀의 집에서 나와 티파 건물들과 기념품가게를 둘러보았다. 티파는 작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대략 6~7살 때 학생을 선발하고. 한번 선발되면 이곳에서 기숙하며 기예를 익힌다. 각자의 재능에 따라 춤, 노래, 악기연주 등으로 나뉘고 나이가 들면 이 안에서 결혼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후에 지도자가 되면 아예 이곳에서 가옥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평생을 이 안에서 사는 사람도 있단다.


이들 거대 식구들을 먹이고 입힐 스텝 가족 역시 한 울타리에서 산다. 이곳은 단순한 전통학교가 아니라, 티벳의 고유한 정신문화의 중심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해마다 이곳에서 신년식으로 공연을 하고, 달라이라마 설법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런데 기념품가게 한쪽 구석에 재밌는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칼상에게 물었더니, 작년인가에 달라이라마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고 이곳 맥간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미국의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가 이곳 티파에 와서 함께 찍은 사진이란다. 미국의 잘 생긴 유명한 영화배우라고 해서 다들 난리를 치며 기대를 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그가 잘 생겼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엄청 실망했단다. "얼굴이 쬐글쬐글하고 영~ ", 하면서 지어보였던 칼상의 표정에 눈물나게 웃었다. 
 
아침에 숄 하나 걸치고 예정 없이 나섰다가 거의 하루 반나절을 밖에서 보낸나보다. 치치엔이 혹시 찾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보니, 이미 외출하고 고요한 숲속의 정적만 고즈넉하다.

 

야생 원숭이들의 천국 맥간
 
치치엔이 돌아왔나보다. 칼상과 박수나트가기로 한 약속시간이 아직 남아 있었으므로 치치엔과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이구 머니나!”


원숭이떼들이 깍꺅거리며 산책길 바로 오른쪽 숲에서 길로 냅따 뛰쳐나와 살짝 옆을 지나 길 아래로 달려 내려간다. 여기가 무슨 사파리공원도 아닌데 갑자기 이렇게 많은 원숭이들이 바로 코앞에서 나타나다니.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자동정지. 원숭이들은 대부분 새끼를 등이나 가슴에 매달았다. 이빨을 드러내며 우는 소리가 저리도 날카로운 걸 보니 감정이 격해 있는 원숭이들 같은데, 마치 영역권을 둘러싼 패싸움을 벌이는지도 몰랐다.

 

“원숭이들이 이 산에 살아요. 아주 가끔 원숭이가 사람을 물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개 사람을 공격하진 않아요. 많이 놀랐어요? 하하.”
“아니 어떻게? 원숭이들이 이렇게 야생으로 사람 사는 마을에서 떨어져 있지도 않잖아요?”


“이곳 맥간은 달라이라마께서 티벳 임시정부로 정하시기 전에는 사람은 살지도 않는 원숭이들의 천국이었답니다. 녀석들이 이곳의 주인이었던 거죠. 그러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히려 사람들이 원숭이마을에 들어와 사는 거예요.”
“그렇군요. 하지만 어두울 때, 원숭이떼들이 나타나면 엄청 무섭겠어요.”

“글쎄,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생각하기 나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후로도 이 티파로드를 많이 다녔는데, 하루는 어쩌다보니 늦은 저녁시간에 가로등도 없어 깜깜한 이 길을 걷게 되었다. 일몰 전에 숙소로 귀환했어야 했는데 깜빡 놓쳐버린 것이다. 해서는 안 될 실수였다. 하는 수 없어 자못 태연한 척 걸으면서도 벌써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있었고, 걸음걸이는 속판에는 여유란 조금도 없는 똥줄이 타는 어색한 그것이었다. 그 때, 앞에 뭔가가 있었다. 이미 신경이 머리끝까지 곤두서 있었던 터라, 어떤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그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의 원숭이가 어둠 속에서 웅크려 음식쓰레기를 먹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며 원숭이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잠시 후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이 녀석들 오히려 나를 피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닌가? 가재걸음으로 슬쩍 비켜가는 듯 너부죽 조심스레 지나가는 거였다. ‘이 녀석들 나를 이런 야밤에 혼자 다니는 독한 여자라고 여기는 거 아냐? 하하하.’


그 때 치치엔의 말뜻을 이해했던 거 같다. 만일 이쪽에서 먼저 지레 겁먹고 허겁지겁 뛰었다면 원숭이들도 놀래서 꺅꺅거렸을 도 모른다. 그럼, 나는 더 기겁하며 “엄마야!” 도망쳤을 게 틀림없다. 그랬다면… 아마도 녀석들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하고 여전히 무서운 야생동물로만 여겼을 것이다. 암튼, 이 날의 경험 후론 원숭이에 대한 경계가 많이 사라졌다.  
  
모기망 대신 원숭이망을 쳐라?

 

이곳 티파로드에는 원숭이들이 정말 많았다. 나중에 한 영국여성에게서 들은 애기인데, 쉼라라는 곳은 원숭이들이 집안에까지 들어와 음식을 훔쳐 먹는 일도 비일비재해서 아예 모기망처럼 망을 설치한다고 한다. 그녀는 모기망이 아니라 원숭이망을 단다는 사실이 그저 재밌다는 듯 멈추지 않고 웃어 재꼈는데 나중엔 따라 웃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아무튼 원숭이떼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쉼라에서도 사람들은 동물들을 격리처분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티벳뿐 아니라 인도지역 대부분, 동물들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많이 다른 거 같다. 아마도 종교적 영향에다가 동물들에게도 그들이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땅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덕분에 인간세와 동물계가 이렇듯 가깝게 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동물에서 배출되는 배설물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우리는 더러운 것, 냄새나는 것, 마주치기 싫은 얼굴 찌푸리게 되는 혐오물질인 데 비해, 이들은 집집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 정도로 생각한다.


한 번은 우리나라 여자여행자가 소똥을 밟고는 깡충깡충 뛰며 당황하고 있는데, 지나던 티벳 아줌마가 조용히 웃으며, 신발을 벗으라고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어주었다. 사실 나 역시도 이곳 여행이 상당히 만족스러웠음에도 동물들의 배설물에 대해선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런 나의 위생관념은 생태적인 삶에서 벗어난 생활습관 탓일는지.

 

구걸도 직업일까?


시내구경은 가벼운 마음으로 할수록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와 재밌다. 그런데 앞에 아기를 품에 안은 한 인도여인이 다가와 손을 입으로 가져가고(먹을 것이 필요하단 뜻), 엄지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우유 값이 필요하단 뜻)연신 구걸한다. 이곳에서는 구걸을 '박시시'라고 말한다. 이들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마주쳐 동정의 눈빛을 한 번 들키고 나면, 집요하게 달라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 관광객들은 냉정하게 눈부터 피해버린다고. 

 

“치치엔, 아직도 정리가 안 되네요. 여행기에서 봐도 인도여행자들이면 누구나 꼭 부딪히게 되는 상황이라죠. 그런데, 대부분 구걸에 응하는 건 오히려 옳지 않다고 쓰여 있어요. 하지만 눈에 이렇게 보일 땐….”


“이곳 티벳 사람들은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에 따라, 구걸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일거리를 찾아 정당하게 돈을 벌도록 합니다. 고향을 잃고 쫓겨나왔지만 스스로의 존엄성을 잃지 않겠다는 거죠. 사실 이곳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도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식당 등에서 청소나 쓰레기 치우는 일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거죠. 이들에게 구걸은 하나의 직업(Job)입니다.”


“이들에게 달리 원하는 직업선택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주 당국이나 현재의 경제상황도 고려해야지 않을까요?”


“인도 농부들의 1년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어디서 봤는데요. 구걸하는 사람들의 1년 수입이 그들의 3배라고 하더군요. 물론 인도는 아직 절대빈곤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구걸을 피할 방법은 있다고 봐요. 문제는 이들의 의식이죠. 이들은 이미 구걸에 익숙해져 있어요. 관광 철에, 관광지를 옮겨 다니면서 구걸하는 것이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란 데 길들여져 있는 거죠….”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왜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꼭 한 번쯤 가게 되는 관광코스 박수나트

 

박수나트는 여행자라면 꼭 한 번쯤 가게 되는 관광코스. 나트가 폭포란 뜻이니 박수폭포 가는 길이다. 박수나트로 이어지는 길 양편엔 각종 기념품 가게와 옷가게 먹거리 가게들이 즐비하다. 맥간에서도 여행자문화가 어디나 일색인 것이 안타깝다. 소비하는 축에 맞추다보니 그러하리라. 가게를 끼웃거리며 둘러보는 것도 시들해지고, 호객꾼들의 눈초리도 익숙해지고, 게다가, 칼상이 빌려준 티벳 의상을 입고 나란히 걷노라니 티벳탄이 된 듯하다.

 

칼상이 한 가게점원과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가 내 쪽을 향해 흘끗 갸웃하자 칼상이 그제서야 코레아라고 소개한다. 그리곤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고 나면, 이곳사람들에게도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간소한 의식을 치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미소로 나는 허락받는 자가 되어갔다. 
 
산기슭에 오르고 있다. 계곡의 물소리가 귀를 먼저 시원하게 하고 있었다. 마주보이는 건너편 산자락의 곡선이 우아하게 펼쳐지는데 이편의 산은 온통 흰백의 돌산으로 뽀안 처녀살 같은 하얀 돌들이 층층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제법 땀이 맺힐 때도 되었건만 오히려 몸이 으스스 한기마저 드는 것이, 침범해서는 안 될 신성한 얼음산에라도 들어선 걸까? 물소리가 거칠어지는 틈틈이 나의 숨소리도 덩달아 거칠어진 것도 한참 지났다.


사람의 흔적이 끊기고 계곡이 좁아지는 듯하더니 드디어 저 멀리 폭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짐작하고 있었는데도 막상 눈으로 확인하는 그 대면의 순간엔 절로 숨이 멈춰지는 건, 꼼짝없이 어떤 공간에 사로잡힐 때다. 희열이라고도 하고, 경이라고도 하고, 두려움이라고 한다. 몇 걸음 앞서 칼상이 어서 오라고 손짓할 때까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인 나탈리를 만나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한 인도여인이 홀로 앉아 있다. 구걸하는 손이 왠지 쭈삣거린다. 문신 모양의 도장을 손목에 찍어주고 10루피를 받는단다. 칼상이 내 손을 끈다. 구걸하는 인도인에게 한 치의 동정심을 보이는 것조차 꺼리는 칼상인지라 지나쳐가자는 신호였는데, 고개가 따라가 주질 않는다. 어려보이기까지 하는 그 인도여인은 조금만 꾸미면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미모였다.


“칼상, 잠시만요….”


손목을 그녀에게 내주었다. 손목 위에 선명한 문신이 찍혔다. 눈에 익은 태양 문양. 동그라미는 세로의 태극 곡선으로 나뉘고, 양쪽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고 가운데는 제3의 눈이 박혀 있다. 동그란 테두리바깥에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톱니무늬가 빙 둘러싸여 있다. 하염없이 무료해 보이던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화색이 도는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름을 물었다.

 

“나타리….”
“나타리…. 이 문양은 어디서 얻었어요?”
“지수화풍 중에서도 불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나타리는 왜 이곳에서 이런 일을 해요?”


그녀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4~5m 떨어진 곳에 낡은 담요가 말려 있는데, 그 안에는 놀랍게도 똥그랗게 눈뜬 젖먹이 아기가 누워 있었다.


“왜 아기를 곁에 두지 않고 떨어뜨려놔요?”
“아이에게는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


“문양도장을 찍어주는 데 구걸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10루피의 가치가 있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럼, 여기 5루피는 문양 값이고요. 이 5루피는 제 선물이라고 생각해줘요. 그럼 되죠?”
“나마스떼! 아기가 좀더 크면,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이에요.”

 

이상하게도 그 순간 그녀의 미소가 저물던 햇빛에 반사되어 참으로 아름다웠다. 태양이 기울 듯이 하루가 지나면 그만 흔적없이 지워질 문양이지만, 그녀의 얼굴인 양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폭포소리에 아기 울음소리가 묻힐 법도 한데…. 아기가 힘겹게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시내에서 구걸하던 여인과 나탈리의 다른 점은?

 

폭포 가까이에 다가가니, 내리꽂듯이 떨어지는 물줄기가 고이는 못 근처에서 몇몇 인도 남자들이 나체로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약간 술 취한 듯한 비틀거리는 모습에 질렸다는 듯 칼상이, "예의없는 녀석들(Naughty boys!)"이라고 한다. 잠시도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듯 또다시 손을 지긋이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아무 저항 없이 따라 오르던 길을 고스란히 되밟아 내려왔다. 

 

하지만, 발끝을 내려다보며 머리 속으로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답답해 하고 있었다. ‘뭘까? 무엇이 다른 걸까? 시내에서 구걸하던 인도여인과 구걸하던 나타리와는?’ 그러면서 두리번거리며 찾아봐도 나타리도, 그녀의 아기도 벌써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기를 안고 허둥거리며 내려갔을까?‘ 그녀와 아기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왔다. 

  

‘아! 알았다! 그건, 그 두 여인에게서 서로 다른 건… 바로 아기에 대한 사랑이었어!’


너무 기분좋아,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곤, 칼상의 손을 꼭 쥐고, 룰룰랄랄 내려올 수 있었다.  빠산에 대한 칼상의 사랑도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 하하하하하! 박수나트의 폭포소리도 이제 경쾌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하하하하!

2007.12.28 14:32 ⓒ 2007 OhmyNews
#인도여행 #맥그로드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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