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는 단 한번 실수도 용서받지 못한다

정박사 목수 된 사연 14

등록 2007.12.28 16:38수정 2007.12.3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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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에서 바라본 12월의 보름달 통창을 통해 바라보는 보름달의 모습이다. ⓒ 정부흥

▲ 오두막에서 바라본 12월의 보름달 통창을 통해 바라보는 보름달의 모습이다. ⓒ 정부흥

마아크트웨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일은 담배를 끊는 일이다. 나는  백번도 넘게 담배를 끊었다"고 하였다. 나의 일상생활 중 다반사(茶飯事)로 발생하는 일이 집사람과 다투는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집사람과 수백 번도 더 다퉜고 특히 지리산 오두막을 짓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 빈도가 더 잦아졌다.

 

마아크트웨인은 100번 이후에도 담배 끊기를 계속했을 것이고 나의 집사람과 다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다툼은 발생 원인에만 집중할 일이다. 집사람 인격을 비하하여 상처를 입히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집사람이 상대해주지 않아 영영 대화조차 못할 뻔한 경우를 몇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툼 뒤에는 상대방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간 자신을 알게 된다.

 

12월 22일, 청원목조주택 자재 매장에서 창고, 포치, 데크를 만들 목재를 싣고 올 때는 4일 동안이면 모두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여유가 생긴 우리는 아침에는 날이 밝은 후에야 밖에 나가 일하고 저녁에는 해가 지자마자 작업을 끝내고 온천욕, 산책, 그리고 독서 같은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를 즐겼다.

 

하루나 늦어도 이틀이면 충분하리라고 예상한 한 평짜리 창고가 예상과 달리 3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완성하지 못했다. 처음 해보는 공정에 부딪치면 많은 시행착오를 하게 되고 시간 낭비가 따른다. 무리하더라도 내일까지는 오두막을 완성해야 한다. 다시 오두막 안으로 그 많은 공구와 건축자재를 집어넣을 수는 없다. 벽체가 마감되면서 오두막은 나와 집사람의 소꿉장난 신방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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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레벨과 수광기 레이저 빛을 이용하여 4방향으로 수평과 수직을 볼 수있는 장비이다. ⓒ 정부흥

▲ 레이저레벨과 수광기 레이저 빛을 이용하여 4방향으로 수평과 수직을 볼 수있는 장비이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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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춧돌 놓기 주춧돌은 정확한 위치에 놓여야하고 서로 직각이 되어야 한다. ⓒ 정부흥

▲ 주춧돌 놓기 주춧돌은 정확한 위치에 놓여야하고 서로 직각이 되어야 한다. ⓒ 정부흥

주춧돌을 정확한 위치에 묻고 수평을 맞추기 위해 기둥을 각 주춧돌 높이 차이만큼 자르는 것까지는 잘 했다. 기둥에 정확히 구멍을 뚫어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일에서 막혔다. 드릴을 아무리 정확하게 잡고 구멍을 뚫어도 기둥의 반대쪽 구멍은 철물구멍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았다. 기둥을 2개씩이나 버리고 다시 잘라왔지만 이번에도 정확하게 구멍을 뚫으란 보장이 없다. 한나절 동안 주춧돌, 기둥, 드릴, 볼트∙넛트와 실랑이를 하다보니 완전히 파김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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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고정하기 조립식 주춧돌은 기둥과 고정할 수 있도록 철물이 장착되어 있다. 기둥에 구멍을 뚫어 철물과 연결한 후 볼트와 너트로 고정한다. ⓒ 정부흥

▲ 기둥고정하기 조립식 주춧돌은 기둥과 고정할 수 있도록 철물이 장착되어 있다. 기둥에 구멍을 뚫어 철물과 연결한 후 볼트와 너트로 고정한다. ⓒ 정부흥

 

마침내 집사람이 불만을 터트린다. 집을 한 채 지어 본 사람이 이까짓 구멍 하나 제대로 못 뚫느냐는 것이다. 울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나는 드릴을 집어던지며 “그러면 네가 해봐라”하면서 현장을 박차고 나왔다.

 

이번 다툼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집사람이 빠르고 이성적으로 사태를 수습한다. 일단 나를 새참과 녹차로 진정시키고 대안을 제시한다. 가운데는 구멍이 커도 상관 없으니 한쪽에서 절반 뚫고 다음은 다른 쪽에서 절반을 뚫은 다음 제대로 맞지 않으면 드릴의 끝부분을 크게 돌려 가운데 가운데 부분을 확장하면 어떻겠느냐고.

 

달리 방법이 없는 나는 집사람의 제안대로 해봤다. 볼트머리가 별 무리 없이 반대편으로 나온다. 너트를 조이니 기둥이 주춧돌에 고정되었다. 성공이다. 그러나 내 기가 죽어서 그런지 작업이 신명나질 않는다.

 

앞쪽 주춧돌의 높이에 맞춰 기둥을 잘랐으니 기둥의 길이가 4cm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긴 기둥은 주춧돌이 낮게 묻힌 쪽에, 짧은 기둥은 높이 묻힌 주춧돌 위에 올려야 한다. 집중을 못하다보니 앞 기둥이 서로 바뀌었다. 높이가 8cm 차이가 나고 수평이 맞질 않는다. 나는 휴식을 위해 사다리에서 내려와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사람을 원망했다. 아래서 뭐 했느냐고 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자 피곤하고 지친 집사람도 말을 따뜻하게 받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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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골조 기둥을 새운 후 벽체를 막기위한 창고골조 ⓒ 정부흥

▲ 창고골조 기둥을 새운 후 벽체를 막기위한 창고골조 ⓒ 정부흥

골조가 다 된 상태에서 기둥을 8cm 잘라내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병가에서는 한번 실수가 재기의 밑거름으로 재활용 될지 모르지만 목조주택에서는 한번 실수는 집이 되어가는 동안 계속하여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 내일 아침에는 대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가 저물어도 작업은 끝나질 않는다. 밝은 전등을 2개씩 밝혀 놓고 야간작업에 들어갔다. 이미 창고 마감은 바랄 수 없게 되었다. 문을 달고 열쇠라도 채울 수 있는 상태까지로 목표를 줄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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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지붕 지붕에 아스팔트싱글 붙이기 전 루핑작업을 끝낸 집사람 ⓒ 정부흥

▲ 창고지붕 지붕에 아스팔트싱글 붙이기 전 루핑작업을 끝낸 집사람 ⓒ 정부흥

지붕에 아스팔트싱글을 깔기 위해 서까래를 걸고 방수를 위한 루핑을 깔았다. 이제 아스팔스싱글을 붙일 차례이다. 집사람이 지금 진도로 봐서 아스팔트 싱글을 붙이면 벽체를 오늘 중으로 못막으니 아스팔트싱글 부착작업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벽체를 작업을 하자고 한다. 합판으로 벽을 막고 문을 만들었다.

 

오두막 짓기의 경험을 살려 문틀을 먼저 만들고 문짝과 경첩을 달았다. 이제 창고에 고정시키면 그런 대로 공구들을 정리하고 열쇠를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기둥을 자를 때 생긴 오차는 결국 문이 맞지 않는 현실로 나타났다. 밤 10시가 넘어가니 추위를 못 이기는 집사람의 노골적인 신세한탄에 더 이상 다툼으로 맞설 수도 없다.

 

'무엇을 위한 고생인가'라는 생각이 또 고개를 쳐든다. 목재 매장에 지불한 70만원이면 스티로폼 판넬로 지금보다 더 큰 창고도 맡겨서 지을 수 있다. 4일 동안 나와 집사람은 창고 짓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았다. 오늘 오후에도 3번씩이나 집사람과 다퉜다. 피곤하고 지치면 급격히 집중력이 떨어진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집사람과 의견 대립이 심해진다. 집사람을 먼저 오두막 안으로 보내 대전으로 돌아갈 짐을 정리하라고 하고 혼자서 맞지 않은 문과 실랑이를 하다보니 새벽 0시가 넘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해머로 문짝을 쳐 넣고 자물쇠를 붙였다. 다음 밝은 낮에 보면 문틀 어느 부분이 부서져 있지 않을까 싶다. 창고 내부는 우선 집에서 가져간 송판으로 깔고 그 위에 각종 공구와 자재들을 마구잡이로 집어넣고 열쇠를 잠갔다. 뒤돌아서는 나의 뒤통수를 무엇인가 당긴다. 이 엉터리 목수 실력에 집사람을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이는 나를 내가 가장 잘 안다. 양심의 소리라는 것일까?

 

무거운 마음으로 오두막으로 들어와 아침 출발을 위해 자리에 눕는다. 심란하여 잠을 못 이루고 있는 나에게 보름달이 인사를 건넨다. 서동요나 정읍사에 등장하던 달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으로 나를 방문하여 나를 밖으로 불러낸다. 손을 뻗어 집사람의 손을 슬며시 쥐어보니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은 집사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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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야경 오두막 마당에서 바라본 지리산 온천의 야경과 주능선 ⓒ 정부흥

▲ 지리산 야경 오두막 마당에서 바라본 지리산 온천의 야경과 주능선 ⓒ 정부흥

집사람 손을 잡고 달을 맞이하러 밖으로 나왔다. 온 세상은 은빛으로 가득하고 달님은 구름 사이로 가끔 얼굴을 내민다. 팔을 벌려 품안에 안아 본다. 충만한 대우주 기운에 작고 작은 인생사 고통이 소리없이 녹아 내린다. 집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인다. 지금이 순간을 지킬 수 있는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모든 고생을 모두 보상받고도 남지요? 집사람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

#목수 #오두막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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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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