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의 산이 되려면…

[시작 노트가 있는 나의 시 28] 겨울산에 올라 묻는다

등록 2007.12.28 15:38수정 2007.12.2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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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1

 

눈 내려 고요해진 山, 겨울만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들이 잠들어 있다. 손이 따스한 사람들의 발자국은 길 끝으로 모이고, 바람 없는 山 위에 허리 꺽인 억새풀 몇. 우리가 서로의 입김을 맞바꾸어 시린 등뼈를 녹일 수 있다면 저 나무들의 잠을 깨울 수 있을까. 허리 꺾인 억새풀들을 일으킬 수 있을까.

 

지는 노을 속, 아침에 날려 보낸 새가 돌아오고 빈 가지에 걸린 방패연에 환하게 불이 붙는다. 人間을 떠나 보내고 새를 품어 비로소 깨어나는 山. 우리가 서로의 山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人間을 떠나 보내야 하나.

 

얼레를 품고 잠드는 밤, 꿈 속에서 아이가 풀어 놓은 연실같은 산길을 빈 발자국들이 밤새도록 뛰어다닌다. 겨울산 방패연에 별 하나 찍힌다.

 

<시작노트>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시 창작에 몰두하기 시작할 무렵, 신대철 시인의 시집 <무인도를 향하여>는 나에게 바이블이었다. 마를 뒷산을 오르내리며 나는 그토록 아름답고 풍요로운 이미지로 산의 모습을 그려낸 신대철 시인의 시들을 반복해서 읽곤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 짙게 드리워진 신대철 시인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눈 내린 산길, 그 눈길 위에 찍힌 발자국, 앙상한 빈 가지가 추워보이는 나무들, 말라서 꺾어진 억새풀 몇, 빈 나무가지에 걸려 있는 방패연, 그리고 노을 속에 산으로 귀소하는 새들. 겨울산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풍경들에 오래 눈길을 두면서 나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 여러 번 자문하곤 했다. 그리고 자연과의 진정한 화해 없이는 인간들 사이의 진정한 소통도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러한 화해와 소통은 동심과 꿈 속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비교적 단숨에 쓴 이 작품은 황송하게도 1986년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공모한 대학문학상의 시부분 당선작으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나에게는 너무나 값진 졸업선물이었다.

2007.12.28 15:38 ⓒ 2007 OhmyNews
#겨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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