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사회책임에도 국제규격이 필요해"

[인터뷰] 박정우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연구관

등록 2007.12.28 16:18수정 2007.12.2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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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제5차 WG SR(사회적책임) 총회 ⓒ 박정우

지난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제5차 WG SR(사회적책임) 총회 ⓒ 박정우

기업 윤리경영·환경 보호·노동·지역 사회 기여 등 사회적 책임에 대한 표준(ISO 26000)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 또한 힘을 얻고 있다.

 

이는 "일단 제정되면 국제 거래 관계에서 요구사항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는 현실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도 하고, "사회적 책임 경영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만큼,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글로벌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세계적 흐름에 부합해야 한다"는 명분도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 흐름에 부합해야 하는 것은 비단 기업만이 아니다. 현재 ISO(국제표준화기구,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는 2010년 규격 제정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 중인데, 규격 적용 대상은 기업 뿐 아니라 정부는 물론, 노동조합, 비영리단체 등까지 확대된 상태다. 앞으로 '이명박 실용정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잣대로 ISO 26000이 또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KS를 떠올리면 ISO 이해 쉽다

KS 규격을 떠올리면 ISO 규격에 대한 이해가 쉽다. KS 인증이 완성품을 상대로 한다면, ISO 인증은 그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시스템)을 인증 대상으로 한다. 국내 제조·건설업체들 중 상당수가 취득한 ISO 9001을 품질경영시스템이라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절차를 명시한 '문서'다. 2차적 인증 대상은 해당 문서대로 절차를 수행했는지 여부다. 이는 '기록'으로 판단한다. 기록에는 부적합 판단이 내려졌을 때, 이를 시정 또는 예방하기 위한 조치사항이나 내부 감사 결과까지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한마디로 '문서로 말하라'는 셈이다. 이 때문에 ISO 인증 및 사후 관리를 위해서는 기존보다 페이퍼 워크(서류 작업)가 많이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시스템 구축보다 영업 목적으로 ISO 인증을 획득했을 경우, 구(舊) 시스템과 '누구를 보여주기 위한' 시스템이 내부적으로 함께 작동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그렇다면 ISO 26000은 도대체 어떤 규격일까. 지난 11월에 열린 제5차 ISO WG SR(사회적 책임) 총회에 다녀온 박정우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연구관은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바다를 뒤덮은 기름을 법으로 제거할 수 없듯 법체계는 법에 의해 지킬 수 있는 질서를 결과만으로 지배한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면서 "ISO 26000 키워드는 법질서 보완"이라고 주장했다.

 

"ISO 규격 자체가 방침을 정하고 절차를 만들어 그 실행까지를 명문화하기 때문에 과정을 중시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박 연구관은 "인권·노동·환경·지역사회 기여 등 다양한 이슈를 포함하고 있는 ISO 26000 규격의 초점은 사회적 책임 문제를 조직과 사회에 모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연구관은 현재 ISO 26000 표준(안) 개발 진행 상황과 관련하여 "현재 WD(규격 초안, Working Draft) 3차 수정판 작업을 진행 중"이라면서 "아직까지는 제 3자가 절차 수립과 그 실행 여부를 확인하고 인증서를 주는 형태의 인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앞으로 규격 개발 과정에서 바뀔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3자 인증이 포함되지 않으면, 기업들에게 강제 효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 연구관은 "경제적 우위를 뺏기지 않으려 하는 강대국, 국제 글로벌 기업의 경제 장악을 막으려는 나라 각각 입장에서 ISO 26000을 이용할 수 있다"며 "스스로 (사회적 책임) 선언한 나라에게 혜택이 돌아갈 공산이 크다, 비록 3자 인증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반 강제로 시행될 수 있다"고 답했다.

 

끝으로 박 연구관은 "인권이나 환경 문제는 어느 정도 발전 단계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 이상 발전하는데 있어서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면서 "이를 감안하면 국제적인 사회적 책임 표준인 ISO 26000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 규범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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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차 ISO 총회가 열린 비엔나에 있는 오스트리아 센터 ⓒ 박정우

제 5차 ISO 총회가 열린 비엔나에 있는 오스트리아 센터 ⓒ 박정우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먼저 ISO 26000 규격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주로 국내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하여 많이 소개되는데, 사실 실행 주체는 기업에만 국한되는 규격이 아니다. 정부가 될 수도 있고, 노동조합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모든 조직과 ISO 26000은 관련되어 있다. 내용적으로는 인권·노동·환경·지역사회 기여 등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이슈들이 다양하게 포함된다. 조직에 도움이 되면서 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ISO 26000 초점이다."

 

- ISO 26000은 규격이다. 언뜻 사회적 책임 활동을 표준화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데?
"기존의 ISO 9001(품질경영시스템)과 유사한 형식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ISO 9001 규정을 살펴보자. ISO 9001은 최고경영자가 품질경영시스템의 개발 및 실행 그리고 그 효과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의지의 실행증거를 품질방침을 통해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떤 회사가 '고객 만족을 품질의 최고 목표로 한다'는 품질방침을 만들었다고 하자.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품질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또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절차를 만들었으면 직원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또 그 절차대로 수행됐는지 감시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근거가 문서화돼야 한다는 것이 ISO 국제 규격의 핵심이다. 이처럼 ISO 26000도 각각의 규격을 정하고, 그에 따라 정해진 방침과 절차를 만들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 ISO 9001과 이제까지 26000 규격 초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증 규격이 아니란 점이다. 제 3자 인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제 3자 인증이란 제 3자가 절차 수립과 그 실행 여부를 확인하고 인증서를 주는 형태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규격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3자 인증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만약 3자 인증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에게 강제 효력이 없는 것 아닌가? ISO 9000 시리즈의 경우, 국제 입찰 조건으로 명시되는 등 해외 영업 활동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ISO 26000이 미칠 영향이 별로 크게 보이지 않는데?
"자기 검증까지 안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기 선언이 가능하다. 자기 선언을 한 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갈 공산이 크다. 자기 선언을 하지 않은 기업은 (자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지 말란 법이 없지 않나. 비록 3자 인증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반강제로 시행될 수 있다."

 

- 대외 영업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강대국은 경제적 우위를 뺏기지 않으려 할 것이다. 힘이 약한 나라들 입장에서는 국제 글로벌 기업의 경제 장악을 막는데 이용할 수 있다. ISO 26000을 보장하지 않는 기업 물건은 수입하지 않겠다고 규정하는 나라가 나타날 것이다. 충분히 영업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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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워크샵에서 우리나라 관계자가 ISO 26000 관련 한국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박정우

총회 워크샵에서 우리나라 관계자가 ISO 26000 관련 한국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박정우

- 현재 ISO 26000 표준(안) 개발은 어느 정도 진행됐는가.
"모든 ISO 규격은 WD(규격 초안, working draft)-CD(검증위원회 초안, Committee Draft)-DIS(국제규격안, draft international standard)-FDIS(최종 국제표준 초안, final draft international standard) 절차를 거쳐 출판된다. ISO 26000은 현재 WD 상태다. 말 그대로 초안 단계다."

 

- 당초 알려지기로는 ISO 26000 규격 제정 시기가 2009년이었다. 최근 2010년으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한 번 규격이 제정되면 고치기 어려운 만큼, 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국제회의에서는 어떤 나라든 의견을 내도 거의 다 받아들여주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당초에는 WD 2차 수정판에서 바로 CD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한 단계를 더 거치게 된 것이다. WD 3차 수정판 작업이 진행중이다."

 

- 표준안 개발에 대한 각 국 동향은?
"간단하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해 관계도 다 다르고, 국가 차원을 넘어 기업과 노동계가 대립되는 부분도 있다. 또 나라 사정에 따라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 국내 동향은 어떤가.
"현재까지는 규격 해석 또는 국제회의 참가 전략 등을 고민하는 수준이다. 한국표준협회에서 운영하는 민간 포럼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

 

- 국내 기업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거의 관심들이 없는 것 같다. 아직 완전한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삼성 비자금 사건 같은 문제 사례가 계속 나오지 않는가. 이것만 봐도 아직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어 보인다. ISO 규격은 '제정'보다는 실행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특성을 갖고 있다. ISO 26000이 국내에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실행 주체, 이해관계자의 의견 조율 창구, 평가, 전문가 양성 등 업무들이 수행돼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시화된 실행 주체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ISO 26000의 가장 큰 의미는 법질서 체계가 갖고 있게 마련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체계는 법에 의해 지킬 수 있는 질서를 결과만으로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죽인 사람을 처벌한다고 다시 사람이 살아나나? 온통 바다가 기름으로 뒤덮였는데,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벌금 물리고 사람 몇 명 구속하는 게 전부 아닌가. 법으로 기름을 제거할 수는 없다. ISO 26000 키워드는 법질서 보완이다.

 

인권이나 환경 문제는 어느 정도 발전 단계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 발전하는데 있어서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과정을 중시하는 그리고 과정을 시스템으로, 문서화할 것을 요구하는 ISO 26000이 법질서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ISO 26000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 규범으로 작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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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8 16:18 ⓒ 2007 OhmyNews
#사회적책임 #ISO #26000 #사회공헌 #환원 #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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