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서 세들어 사는 게 서민용 주거정책?!"

도시계획 철거민, 서울시 특별분양권 폐지에 강력 반발

등록 2007.12.28 14:37수정 2007.12.2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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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공원 등을 만드는 도시계획 사업으로 인해 철거되는 주택 소유자들이 27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다산플라자 앞에서 특별분양권 폐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도로, 공원 등을 만드는 도시계획 사업으로 인해 철거되는 주택 소유자들이 27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다산플라자 앞에서 특별분양권 폐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왜 남의 집을 뺏어가느냐!"

 

27일 오전 11시 반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앞. 100여명의 사람들이 "서민 죽이는 서울시장, 주택국장은 물러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강제철거로 내 집 뺏기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트렸고, "임대주택 주는 서울시 주택정책 즉시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민사윤 도시계획 철거민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시의 주택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 큰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집회는 지난 7일 이후 서울시청과 서울시 의회 앞에서 계속되고 있다.

 

7일은 서울시가 '철거민 등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규칙'을 개정하기로 발표한 날이다. 내년 4월부터 도시계획 사업과 시민아파트 철거로 인한 철거민에겐 기존의 아파트 특별분양권 대신 임대아파트가 제공된다. 특별분양권 제도가 40여년 만에 폐지되는 것이다.

 

철거민들은 "집 주인에서 세입자로 바뀌게 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반면, 서울시에서는 "신규택지개발의 한계로 특별분양 물량이 없다"며 "임대주택 제공이 서민을 위한 진정한 주거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40여년 만에 바뀌는 서울시의 이주대책 전환은 철거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철거민 "집 빼앗아가면서, 집 안 주고 남의 집에 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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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씨는 곧 공사로 없어질 마을을 가리키며 "특별분양권 폐지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최인호씨는 곧 공사로 없어질 마을을 가리키며 "특별분양권 폐지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공익을 위해서 집을 헐값에 내놓았는데…."

 

24일 오후 3시 주택 10여채가 모여 있는 서울 성북구 정릉4동 산 1-1 마을 주민 10여명이 한 집에 모여 오세훈 서울시장을 성토하고 있었다.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공원공사로, 마을을 떠나게 되는 이들은 "나가 죽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50여년 전부터 국유지였던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은 산림청에 임대료를 내고 살고 있다. 70년대 이 마을은 공원으로 용도 변경됐지만, 주민들은 아파트 분양권에 대한 기대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년 상반기 공원 1단계 공사가 진행될 예정인 인근 마을의 주민들에겐 이미 아파트 분양권이 제공됐던 터였다.

 

하지만 갑작스레 특별분양권 제도가 폐지돼 이들은 "나가 죽게 생겼다"며 분통을 터트리게 됐다. 최인호(43)씨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외쳤다. 최씨의 부모는 이 마을에서 66.1㎡(20평) 크기의 집에서 자신들과 세입자 3가구가 살고 있다.

 

최씨의 부모가 이주할 경우, 예상되는 주택 보상금은 모두 2400만원(평당 120만원). 여기에 이주정착금 1000만원을 더한 3400만원과 임대주택 입주권이 집이 헐린 대가다. 세입자 3가구에 대한 전세 보증금이 4800만원임을 감안하면, 최씨의 부모는 오히려 빚을 지고 이주해야 한다.

 

윤여성(70)씨 역시 이주가 만만치 않다. 119㎡(36평)짜리 집에 자신의 어머니(89) 등 4대 7명이 살고 있다. 집 한편엔 세입자를 들였다. 윤씨의 예상 보상금은 4320만원(평당 120만원). 이주정착금 1000만원을 더해도 전세보증금 2000만원이 빠져, 손에 쥐는 돈은 3320만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는 전세금 시세의 70~80%선인 국민임대주택 보증금엔 턱도 없다. 빚을 내 서울시에서 공급한다는 85㎡(25.7평)이하 임대주택에 들어간다 해도 7명이 같이 살기엔 좁기만 하다. 윤씨는 "특별분양권 제도 폐지 결정 전, 부동산 업자들이 집을 1억 5000만원에 팔라고 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도시계획으로 인한 철거민은 어느 한 곳의 문제만이 아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매년 1000여명의 도시계획 철거민이 발생한다. 민사윤 위원장은 "현재 최소 1만 2000가구 정도가 서울시의 새로운 이주대책이 적용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다들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도봉구 창4동 상계교 인근 주민들도 서울시의 이주정책 전환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곳 35가구는 도로를 넓히는 공사로 인해 곧 철거된다. 24일 오전에 만난 마을 주민 김희경(39)씨는 "집을 빼앗아가면서, 집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남의 집에 살라는 거냐"며 반문했다. 최은하(37)씨는 "정책이 시행되면 죽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특별분양물량 없어... 임대주택 제공은 서민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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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29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건교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오세훈 서울시장이 29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건교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지금까지 서울시에서는 도로, 공원 등을 만드는 도시계획 사업, 시민아파트 정리 사업으로 인해 철거되는 주택 소유자에게 보상금과 아파트 특별분양권을 제공했다. 지난 68년 이후 40여년간 지속된 제도다.

 

토지와 주택에 대한 보상은 토지보상법에 따라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이뤄졌지만, 현실적인 시세가 반영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도시계획에 따른 철거민들의 반발을 무마시킨 건, 아파트 특별분양권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2008년 4월 18일부터 아파트 특별분양권을 폐지한다고 7일 발표했다.

 

그동안 주택의 보상면적이 40㎡(12평) 이상이면 85㎡(25.7평) 이하, 40㎡ 이하면 60㎡(18.1평) 이하의 아파트 특별분양권을 주던 것을 앞으로는 임대주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대 1000만원의 이주정착금도 지원된다. 반면, 세입자의 경우 기존 40㎡ 이하에서 10㎡ 늘어난 50㎡(15.1평) 이하의 임대주택이 제공된다.

 

특별분양권 폐지 이유에 대해 서울시는 "서울시내 신규택지개발이 한계에 도달해 특별분양 물량을 공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는 서울시가 지난 1월 장기전세주택 공급과 함께 주택정책을 소유 중심에서 거주 중심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에서 비롯됐다.

 

서울시 주택기획과 관계자는 "택지개발 승인이 난 9개 지구에서 2010년까지 3306세대만 특별분양으로 공급이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4월 보상완료 예정인 2842세대를 포함, 올해까지 보상협의되는 철거민에게만 특별분양권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특별분양권이 투기 수단화되고, 아파트 분양 후 철거민의 잔존률이 13%에 불과하다는 점 등도 특별분양권 폐지의 이유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철거민들은 특별분양을 받아도 분양가가 비싸서 팔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전매제한에 걸려 철거민들은 범법자가 된다"며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게 서민을 위한 진정한 주거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재산권 침해...현실적인 보상 선결돼야"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특별분양권 폐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규숙 전국철거민협의회 사무처장은 "특별분양권 대신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건 큰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 처장은 "철거민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해 임대, 전세 주택에 이주하기 어렵다"며 "소유 개념을 거주 개념으로 바꿔도 정착률이 높아지는 등의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임대주택에 가더라도 삶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은 "철거민들이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이사 비용과 임대주택만을 제공받게 돼,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이어 "집주인과 세입자에게 똑같이 임대주택만을 제공하는 것은 선택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남 총장은 "주택정책을 장기거주로 유도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특별분양권 폐지는) 사회적 갈등이나 이견이 발생할 수 있어, 세심한 정책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철거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보상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는 주민들의 반발에도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서울시 주택기획과 관계자는 "2008년 1월 9일 입법 예고기간이 끝난 후, 조례규칙심의위원회에서 세부적인 정책은 논의되겠지만, 4월 18일부터 특별분양권을 폐지하는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7.12.28 14:37 ⓒ 2007 OhmyNews
#특별분양권 폐지 #특별분양권 #철거민 #임대주택 #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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