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인사 싹쓸이? 뭐가 그리 다급한가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문화권력 교체 촉구하고 나선 <조선>

등록 2007.12.28 13:41수정 2007.12.2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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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9일 열린 뉴라이트전국연합 창립 1주년 행사. 좌파정권 교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결국 며칠을 참지 못하고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일까. <조선일보>가 드디어 포문을 열었다. 오늘(28일) 사설을 통해 ‘싹쓸이 문화권력’을 씻어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노무현 정권 때 문화 언론계의 인사를 두고 과거의 관례를 뒤엎은 ‘문화사변’이라고 했다. 민예총, 민족문학작가회의, 문화연대 출신들이 문화계 요직을 싹쓸이했다는 것이다. 문화혁명이라고도 했다. 익명의 한 문화계 인사의 말을 빌어 “인민군이 남한을 무력 점령해도 이처럼 무모하고 안하무인식 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언론계에서는 정연주 KBS 사장을 조준했다. 정연주 사장의 과거 칼럼 내용을 문제 삼는가 하면 대한민국 건국 원로들을 친일부역배로 모는 연속극을 제작하고, 남미의 반미 독재자 차베스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투사로 부각시키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다고 공격했다. 방송위원회와 방문진 이사 등을 코드인사로 채웠다고 비난했다.

'싹쓸이 인사' 매도는 구태의연한 정략적 비난

<조선일보> 사설의 결론은 이들을 일소하자는 것이다. 말로는 자연스런 ‘문화생태계’를 복원하자고 했지만,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이들을 ‘씻어내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굳이 <조선일보>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문화계와 언론계 주요 자리의 인선이 ‘코드인사’로 채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권력교체에 의한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그 인사의 적절성 여부는 인선된 인물들의 자질과 능력, 적합성 등에 따라 판단해야 할 일이지, ‘코드인사’ 자체를 백안시하는 것은 권력교체 자체를 부정하는 ‘멍청한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서 이들 자리 역시 많이 바뀔 것이다. 이명박 코드 인사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논란은 있을 수 있다. 방송위원회나 공영방송이나 혹은 문화예술 단체의 주요 직책을 꼭 코드인사로 채우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논란이다. 공공성과 독립성이 요구되거나 폭넓은 통합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자리라고 한다면 이념이나 정파를 떠나 합당한 자질과 능력, 품성을 갖춘 인물들을 발굴해 적재적소에 인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김대중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허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허물을 따지자면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인선 내용의 적절성 여부를 가지고 따져야 할 일이다. 자질과 능력, 적재적소의 인선 여부를 가리지 않고 ‘코드’만으로 그 모든 것을 재단하고, 이를 ‘싹쓸이 인사’라고 매도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정략적 비난에 불과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새 집권 세력은 ‘코드인사’를 하지 않을 것인가? 함량미달의 인사를 하는 것이 문제이고, 분명한 결격 사유가 있는 인사를 자기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요직에 앉히는 것이 문제이지, 코드인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권력 교체의 정당성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좌파인사 척결하고 우파로 채워라?

<조선일보>는 하루 전인 27일 사설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학연이나 지연, 친인척 인사의 유혹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잘못된 인사가 결국 정권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 <조선일보>의 사설은 이런 공자 말씀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 말로는 ‘좌파인사’를 몰아내라는 이야기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파인사’로 인사를 하라는 요구다. <조선일보> 어제 오늘 사설을 종합하면 지연·학연·혈연을 끊고, 좌파인사를 척결하고, 우파인사로 인사를 하라는 주문이다.

무엇이 그리 다급한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첫 작품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선을 보니까, 또 이명박 당선자와 그 주변의 행보를 보니까 왠지 불안해진 것일까?

지금은 지켜볼 때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폭넓은 선택권을 주고 기다려주는 아량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 아닌가? 뭐가 그리 급하다고, 벌써부터 대통령 당선자를 몰아세우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는 오늘 <한국일보> ‘임철순칼럼’이야말로 일독을 권할 만하다. 임철순 주필은 정직과 청렴, 겸손을 내세우고 있는 보수의 자정운동, 정권을 잃은 범여권의 자기반성 노력을 평가하면서 ‘겸손한 소통의 시대’를 열자고 권유했다. 겸손과 보편타당, 온유, 품성과 같은 덕목을 존중하고, 좌우 모두 응징이나 배척, 척결의 다툼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면서 새로운 경쟁의 시대를 열어나가자고 제안했다.

임철순 주필은 “17대 대선을 계기로 좌든 우든, 보수든 진보든 앞으로 꽤 달라지리라는 전망을 하게 된다”고 낙관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서로를 가리켜 이른바 좌빨(좌익빨갱이)과 우꼴(우익꼴통)이라고 비난하는 대립은 계속되겠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은 같아졌다”고 진단했다. 임철순 주필은 ‘겸손’과 ‘공부’의 미덕을 강조하고 겸손한 소통, 관용의 자세를 통해 우리 사회가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파 독식’으로 ‘문화의 다양성’을 되찾자고 주장하는 <조선일보>의 오늘과 같은 배타적 태도를 보자면 이런 기대나 희망을 갖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들은 정말 지치지도 않는다.
#이명박 #코드인사 #인수위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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