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라는 도시가 궁금해졌다"

[책으로 읽는 여행 17] 스타일리스트 박수진이 만난 런던

등록 2007.12.28 16:34수정 2008.01.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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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덤하우스

사람들에게 ‘영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안개 낀 템즈 강, 웨스트민스터 사원, 비틀즈의 음악, 축구의 나라. 이런 것들로 대표되는 나라 영국의 수도 런던은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흐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특히 패션과 미술, 광고 등 런던이 주도하고 있는 문화 산업에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것들이 많다.

탤런트 전광렬의 아내이자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박수진씨는 런던 아트 대학에서 패션 스타일링을 수료하고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다. 유명 탤런트의 아내라는 자리를 잊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그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만나고 인터뷰한 런던 사람들은 포토그래퍼, 아트 컨설턴트 등 예술 분야 전문가들을 비롯하여 거리 음악가나 부동산 중개인처럼 서민적이고 독특하며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런던에서 오랜 기간 생활해 온 ‘진짜 런던 사람들’이라는 것.

“런던은 많은 사람들이 잠시 들렀다 떠나는 도시이다. 5년 전 런던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 런던의 빛바랜 고풍스런 낡은 빌딩들과 꼬불꼬불한 골목마다 자리 잡고 있는 작은 갤러리와 서점들은 여운처럼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중략)

런던에서 피시 앤 칩스를 가장 맛있게 하는 집을 알아냈을 즈음, 런던이라는 도시가 궁금해졌다. 여러 곳의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런던에 관한 책들을 사서 보기 시작했고 한번 다녀온 곳에 대한 정보를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서점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책들이 가이드북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에 적잖이 실망하며, 결국 자꾸 정이 드는 런던이 궁금해서 직접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당찬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서문은 저자의 런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24인의 런던 사람들 중 맨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헤어 스타일리스트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줄리안 이빗슨이다. 그는 런던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차갑다고 생각한다. 남을 안 믿는다. 단적인 예로, 누군가를 자기 집에 초대할 때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누군가가 쓰러져서 의식을 잃어도 그냥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럴 경우 마약 복용자라고 여길 가능성이 더 많으니까. 그래서 나도 변한 것 같다. (중략) 이런 것이 런던의 차가움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나쁘다. 런던에서 친구를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런던 사람들이 말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바로 이러하다. 요리사이자 테이블 웨어 디자이너인 소피 콘란은 영국에서는 꽤 유명한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디자이너이자 가구 제작자이고 그녀 자신 또한 ‘소피의 파이’라는 회사의 창업자로 푸드 스타일과 관련한 일을 하는 연예인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 소피 콘란.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 맘이면서 여러 잡지에 음식과 스타일에 관한 글을 쓰고 사업 또한 멋지게 꾸려가는 그녀의 인터뷰는 그 삶처럼 멋이 있다.

인터뷰를 한 아트 컨설턴트는 런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책에 의존하지 말고 그저 런던을 한번 걸어 보라고. 지도 없이 걸으며 매일 길을 잃다 보면 런던의 구석구석을 더 잘 볼 수 있고 그 매력에 빠질 것이란 얘기다. 피카딜리 서커스, 트라팔가 광장, 런던 타워를 벗어나서도 수많은 볼 것으로 가득 찬 도시가 바로 런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건축가이자 제품 디자이너인 마크 스톡스를 따라 윔블던의 숨은 진풍경을 발견하는 기쁨도 누린다. 런던에서 겨우 20분 기차를 타고 갔는데도 다른 도시에 온 느낌이 드는 윔블던. 이처럼 영국은 도시마다 각각의 특색이 있고 자기 도시의 장점을 잘 살리는 정책을 쓴다.

“마크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가운데 그 역시 영국의 전통과 역사에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전통을 보전하기 위해 런던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설명해 주었다. 온 국민이 왕실 가족들을 사랑하고 그 혈통을 이어가길 바라며, 오래된 건물을 보전하기 위해 재건축할 때 건물 앞면은 그대로 두고 뒤쪽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문이 없는 빨간 이층버스를 그리워하는 런던 사람들은 무엇이든 새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교가 된다. 영국 못지 않은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과연 우리 것을 얼마나 사랑하고 보존하려고 노력하는지 돌이켜 보니 부끄러워지는 저자. 그녀가 영국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우리나라에 와서 새롭게 적용한다면 그녀의 공부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런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런던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여러 다른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라고 한다. 방문이나 거주를 위해 들어온 사람들, 영감을 얻으러 혹은 피신을 목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런던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볼 때 한 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이 필수적이란 생각이 든다. 런던을 게이와 레즈비언의 도시라고 할 만큼 영국에서는 수많은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높은 지위에서 활동하면서 그들의 위상을 높인다. 명성 있는 예술 학교들을 후원하고 훌륭한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것도 사회의 몫이다.

우리 사회가 중심을 두고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는 분야는 전자 기계 산업과 스포츠 분야일 것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국가적 지지가 부러울 뿐이다. 일본처럼 문화와 예술, 전자와 기계, 스포츠 등을 모두 아우르는 발전을 이룰 수는 없는 걸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영국의 문화적 성과를 따라 잡기엔 우리의 힘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 노력이 힘들지라도 책의 저자처럼 공부하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 하나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이룬다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문화적 선진국의 대열에 끼는 그런 전진적 사회에 대한 기대를 해 본다.

Real London - 스타일리스트 박수진이 만난 런더너 24人

박수진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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