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쥐띠인 나, 새해엔 '쥐뿔' 알아야겠다

우리 들쥐들이 부디 쥐구멍에서 쫓겨나지 않기를

등록 2007.12.31 18:33수정 2008.01.0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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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지난 이맘때에는 온갖 매체들이 쌍춘년이니 황금돼지해니 하며 설레발을 떨어 새해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하더니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여태껏 잠잠하다. 황금돼지해니 뭐니 하며 떠들썩하게 시작했던 정해년 한 해 동안 인생의 황금돼지를 잡은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하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지난 1년을 뒤돌아보니 좋았던 일도 있고 좋지 않았던 일도 있다.

5년 전인 2002년 3월 1일, 스스로에게 다짐한 5년 금주를 넘기고 지금껏 어김없이 지키고 있으니 좋은 일이고, 2년 전부터 객지생활을 하던 둘째딸이 초겨울 바람처럼 상큼한 모습으로 무탈하게 돌아왔으니 좋은 일이며, 4년을 열심히 공부한 띠 동갑 큰딸이 건강하게 대학생활을 갈무리하며 임용고사까지 치렀으니 좋은 일이다.

<오마이뉴스> 명예의 전당에 등극(?) 하였으니 영예스런 일이고, 기사로 올렸던 글들을 엮어 <울림>이라는 제목으로 또 한권의 책을 쓴 저자가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12년 동안 발이 되고 동반자가 되어 동고동락하던 자동차를 새 것으로 바꾸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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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만 있는 게 아니라 황금 쥐도 있을 수 있다. ⓒ 임윤수



소소한 하나하나까지 손가락을 꼽아가며 꼼꼼히 들쳐보니 좋았던 일도 꽤나 된다.


그렇다고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90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작년에 그러더니 올해도 낙상으로 깁스를 할 정도의 골절부상을 입었으니 좋지 않았고, 주변에 있는 벗들이 이런저런 일로 병원엘 입원하거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니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언뜻 생각했을 땐 황금돼지는커녕 꺼먹돼지나 제대로 된 똥돼지도 한 마리 구경 못하고 지낸 허망한 한해인가 했더니 이렇게 저렇게 추슬러보니 황금돼지도 있고 똥돼지도 있었던 것 같다. 

갓난아기, 초등학생, 대학생, 청장년, 그리고 이제 중년

쥐띠해가 밝아 온다. 1960년 쥐띠해에 태어난 내가 다섯 번째 맞이하는 쥐띠해라서 그런지 여느 띠로 밝아 오는 새해와는 남다르다.

48년 전 쥐띠해에 태어났으니 1972년 쥐띠해에는 초등학생이었고, 1984년 쥐띠해에는 대학생이었다. 네 번째로 맞이한 1996년 쥐띠해가 청장년의 삶이었다면 2008년 새해, 다섯 번째로 맞이하는 무자년 쥐띠해는 중년으로서의 삶이 진행 중인 중년기다.

연말이면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며 각오일지 모르지만 쥐띠라서 그런지 쥐띠해에 대한 기대감은 남다르고도 묘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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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12띠 동물 중 첫 번째 동물이다. ⓒ 임윤수


쥐띠는 인간들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12띠 중 첫 번째다. 1년 열두 달의 첫 번째 달은 1월이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로 이루어진 십이지(十二支) 중 첫 번째는 쥐를 상징하는 '자'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12가지로 상징되는 띠 동물 중 덩치가 가장 작은 쥐가 첫 번째를 차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설화가 참 재미있다. 태고에 12동물이 띠 순서를 결정하기 위해 들판에 골인지점을 정해놓고 달음박질을 하였다고 한다. 12동물이 서로 앞선 띠를 차지하려고 혼신을 다해 뛰었고, 우직한 소가 일등으로 달렸다고 한다.

일등으로 달려온 소가 첫 번째 띠를 상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결승선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소 머리 위에 앉아 있던 쥐가 폴짝 결승선 안으로 뛰어내리니 졸지에 쥐가 첫 번째 띠가 되고 억울하지만 소가 두 번째 띠가 되었다는 설이다.

어떤 입장에 보면 쥐의 이러한 처신은 비난받아야 할 얍삽한 행동이지만 다른 입장에서 보면 소나 말에 비해 정말 하찮은 조건, 상대방이 느끼지 못할 만큼 가벼운 자신의 처지를 십분 활용하여 일등을 한 지략이니 지혜의 돋보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1월로 모아지듯 세월의 또 다른 포장단위인 12년이 새로 시작되는 쥐띠 해라서 그런지 정초의 설렘을 넘는 큰 기대감이 든다. 

올해엔 쥐뿔 좀 알아야 할텐데... 근데 그게 뭐지?

잘난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보니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참견이라도 하다보면 '쥐뿔도 모르는 게'하고 핀잔먹기 십상이다. 숱하게 쥐를 보며 자랐건만 지금껏 쥐뿔은 본적도 없고 쥐뿔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뿔 달린 쥐가 없으니 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고, 본 사람이 있을 수 없으니 본 사람이 있다는 이야길 듣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거다. 헛돌지 않은 게 옛말인데 '쥐뿔'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궁금해 속뜻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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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49살 되는 나이배기들이 다섯 번째로 맞는 쥐띠 해다. ⓒ 임윤수


옛날에 방탕한 영감과 호색적인 마나님 부부가 있었다고 한다. 영감이 며칠간 집을 비웠다 집에 돌아오니 자신을 꼭 닮은 웬 영감과 아내가 나란히 있더란다. 그냥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호색을 즐기는 희희낙락이 비음과 교성으로 창호지문을 넘나들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남의 여자를 넘보고 다니던 방탕한 영감이었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니,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남편을 놔두고 버젓하게 다른 남정네와 뒤엉켜 있는 꼴을 보니 가슴에선 천불이 나고 두 눈에선 불똥이 튈 지경이었다.

영감이 지게작대기를 들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멀쩡한 서방을 놔두고 벌건 대낮에 외간남자와 뭐하는 짓이냐'며 두 연놈을 야단쳤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와 자신을 똑같이 닮은 외간남자에 의해 봉변을 당하며 도리어 떨려나는 꼴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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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이라는 말에는 해학적 가르침이 농축되어 있는 듯하다. ⓒ 임윤수

호기롭게 야단도 쳐봤고, 진짜 남편이라고 애걸구걸 사정도 해봤건만 아내가 믿어주지 않아 찾아가기만 하면 미친 놈 취급 받으며 두들겨 맞고 떨려나기 일쑤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러기를 며칠, 진짜지만 가짜로 여겨져 거지 행색이 된 영감이 법력높은 스님을 찾아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니 스님께서 '안방 댓돌에 쥐를 잘 잡는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가져다 놓으라'는 방편을 일러 주셨다고 한다.

스님이 알려준 대로 쥐를 잘 잡는 고양이를 댓돌 앞에 가져다 놓으니 영감행세를 하던 나그네 영감이 쥐구멍으로 도망을 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으니, 안방마님이 남편으로 맞이하며 살붙이를 하고 있던 영감은 영감으로 도술을 부린 쥐였음이 밝혀졌다.

남편 본연의 위치를 확보한 영감이 쥐인 줄도 모르고 잠자리를 함께하던 부인을 앉혀놓고 '쥐 좆도 모르느냐'며 야단을 쳤다고 하니 '쥐뿔'은 '쥐의 불알'을 일컫는 '쥐불'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인간의 덩치에 비해 한 주먹도 되지 않을 정도의 작은 쥐. 덩치가 주먹만 하니 성기 또한 아주 작을 테니 '쥐뿔'이란 말은 결국 보잘 것 없을 정도로 하찮거나 아주 작은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쥐뿔'이란 말은 은근히 음담패설이 담긴 야한 말 같지만 앞뒤도 분간 못할 정도로 천방지축이거나 경솔함을 경계하라는 뜻도 포함된 듯하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눈을 크게 뜨고 봐도 보일 둥 말 둥할 정도로 작은 쥐뿔에 빠져든 마님의 색기, 아내를 돌보지 않고 외유를 일삼는 영감의 방탕한 생활, 미물일지라도 오래 묵다보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농축하고 있는 해학적 표현일 듯하다.

자칫 한눈을 팔거나 딴생각을 하다보면 호색의 아낙처럼 쥐뿔만도 못한 그 무엇에 통째 농락을 당할 수도 있으니 다가오는 무자년 새해에는 쥐불을 쥐불로 볼 수 있는 지혜와 혜안을 길러 '쥐뿔도 모르는 게' 아니라 쥐뿔쯤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쥐구멍에 볕들면 쥐는 못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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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는 '쥐뿔'이 뭔지 알기 위해 좀 봐야겠다. ⓒ 임윤수


해가 바뀔 때마다 나같은 서민들이 갖는 작은 꿈의 전부는 쥐구멍에 찾아드는 볕처럼 음습하기만 했던 일상에 볕이 들어 양달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팠던 사람이라면 건강의 볕이, 경제적으로 몹시도 곤궁한 사람이라면 조금 넉넉한 살림 볕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만큼 인권이나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사람이라면 사람대접을 받는 그런 햇살이 드는 새해를 고대할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삶 자체가 음습한 사람들이 햇살이 드는 쨍쨍한 새해가 되길 바라는 소망은 변함없겠지만 진짜 서생원들이 들락거리는 쥐구멍으로 비치게 될지도 모르는 새해부터의 볕에는 염려가 된다.

새해가 시작되며 들어서는 새정부의 커다란 공약 중 하나가 대운하 건설이다. 대운하를 건설하려면 많은 땅들을 파헤치니 음습했던 쥐구멍에도 볕이야 들겠지만 그것은 곧 쥐구멍의 소실을 의미하니 쥐들에게 있어서는 좋아라만 할 일이 아니다.

햇볕은 잘 들지 모르지만 파헤쳐짐으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쥐구멍, 파괴되는 것은 피했지만 채워지는 물에 잠식되는 쥐구멍이 만만치 않을 테니 이래저래 다가오는 새해가 쥐들에겐 시련의 서곡이며 말살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대운하공약만 걱정되는 게 아니다. 광풍처럼 불어올지도 모를 재개발로 쥐구멍 같은 그 쪽방촌에서 살을 비비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쥐구멍에서 쫓겨난 들쥐들처럼 삶의 터전을 몰수당하는 건 아닌가도 걱정된다. 

볕드는 것조차 버거울 수 있는 많은 소외계층의 사람들, 쪽방촌 사람들까지도 기꺼이 해바라기를 하고 싶은 배려의 햇살, 믿음과 사랑의 햇살이 골고루 비추는 쥐띠 새해가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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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드는 것조차 버거울 수 있는 많은 소외계층의 사람들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배려의 햇살, 믿음과 사랑의 햇살이 골고루 비추는 쥐띠 새해가 되길 기도해 본다. ⓒ 임윤수

덧붙이는 글 | 모든 분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건강한 새해 되십시오.


덧붙이는 글 모든 분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건강한 새해 되십시오.
#쥐 #쥐띠 #무자년 #2008년 #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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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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