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이롭게 합니다"

<오마이뉴스> 2007년 올해의 인물로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선정

등록 2007.12.28 13:58수정 2007.12.2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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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1년여동안 끌어왔던 사측과의 줄다리기를 끝내며 편집국 현판 앞에 모인 기자들은 "굿바이~ 시사저널!" 을 외치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1년여동안 끌어왔던 사측과의 줄다리기를 끝내며 편집국 현판 앞에 모인 기자들은 "굿바이~ 시사저널!" 을 외치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오마이뉴스>는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시사기자단)'을 200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정치권력을 대신해 세상을 주무르는 자본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하다. 이 안에서 시사기자단은 삼성으로 대표되는 자본권력에 맞서 편집권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새 매체 <시사IN> 창간으로 이어졌다.

 

세상은 언젠가부터 '돈'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19일 대선에서 많은 사람들은 돈을 가장 잘 벌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많은 도덕적 결함과 의혹이 제기됐지만 돈을 향한 열망은 대단했다.

 

이런 세상에서 '고작' 2쪽 짜리 기사 하나 삭제된 게 뭐 그리 큰일인가. 삼성이 어떤 기업인가. 대한민국 1위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이며, 청년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는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 아닌가. 그런 삼성에 눈 한번 감아주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든가. 

 

그런데 이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시사저널> 870호에서 삼성 이학수 부회장 관련 기사가 금창태 사장에 의해 무단으로 삭제된 건 지난 2006년 6월 16일의 일이다. 이윤삼 편집국장은 항의 표시로 즉각 사표를 던졌다. 일선 기자들도 반발했다. 그리고 줄줄이 징계를 받았다.

 

돈의 가치가 최고인 세상에서, 대한민국에서 돈을 가장 잘 번다는 삼성을 비판한 기사 하나 사라졌다고 반발하는 이들은 어쩌면 어리석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힘을 보태는 것 또한 세상인심이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징계가 줄을 이을 때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이 발족했다. 2006년 10월 16일의 일이다. 여기에는 다른 회사 기자들도 참여했고, 과일 행상도 기꺼이 돈을 보탰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는 시사저널 노동조합에 제18회 안종필자유언론상을 안겼다.

 

그렇다고 이들의 투쟁이 쉬워진 건 아니다. 기자들의 이름이 모두 빠진 이른바 '짝퉁 시사저널'이 등장했다. 결국 기자들은 2007년 1월 11일 전면 총파업에 돌입했다. 언론자유를 위한 문화제를 열었고, 회사와는 많은 협상을 벌였다. 그리나 이들은 끝내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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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서대문 시사저널 본사 앞에서 정희상 노조위원장이 사태의 경과를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서대문 시사저널 본사 앞에서 정희상 노조위원장이 사태의 경과를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07년 6월 26일 이들은 <시사저널>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회사 입구에 붙어 있는 '시사저널 편집국'이란 팻말을 떼어내는 기자들은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곧바로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을 출범시키고 새 매체 창간을 준비했다.

 

두 달 만인 지난 9월 15일, 이들이 만든 새 매체 <시사IN>이 세상에 나왔다. 자발적 후원금과 소액주주들이 낸 20억원, 그리고 정기독자 6000명이 밑바탕이 됐다. 창간호의 커버스토리가 의미심장하다. 바로 언론과 자본. 언론 자본의 상징 루퍼스 머독의 얼굴이 표지를 장식했다. 
 

문정우 편집국장은 "자본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의 돈이 언론엔 곧 독이란 걸 심어주기 위해서 그를 모델로 내세웠다"고 말했다.

 

문 편집국장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는 소식에 "너무나 큰 영광"이라고 짧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지난 기억의 한 토막을 끄집어냈다.

 

"<시사저널>과 결별을 결심했을 때 사실 많이 힘들었다. '지금까지 함께 해 온 동료 기자들과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을까' '창간 작업 하다가 흩어지면 모든 걸 잃는 게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컸다. 윤전기에서 나온 <시시IN> 창간호를 손에 쥐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이런 일이 가능 하구나'라는 놀라운 느낌을 받았다. 그날 집에서 목욕을 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문 편집국장이 말한 '이런 일'은 바로 세상의 주류와는 다른 길을 뜻한다. 다시 문 편집국장의 말을 더 들어보자.

 

"세상의 흐름이 돈 중심이고, 대통령도 그런 기준으로 뽑지 않았나.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경제 권력의 최선두에 있는 삼성과 척을 두고 나온 이 기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성원을 보내주다니…. 세상의 큰 주류와는 다른, 이런 것도 하나의 흐름이고, 길이 아닌가."

 

참고로 <시사IN>은 2007년 올해의 인물로 삼성 비자금 문제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선정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핵심인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리고 '시사모'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수여하는 제9회 민주시민언론상을 받았다.

 

여기서 정리를 해보자. 삼성 비판 기사를 무단 삭제했다고 저항한 시사기자단, 그리고 이들을 지지한 시사모, 삼성의 추악한 면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이들에게는 세상의 흐름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득 신영복 선생이 <나무야 나무야>에서 썼던 말이 생각난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마이뉴스>가 시사기자단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그 어리석음이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또한 어리석게 살겠다는 공개적인 다짐이다.

#시사IN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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