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은 왜 먹어!

신창동 단골 매운탕집 이야기

등록 2007.12.28 16:59수정 2007.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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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매운탕 먹자는데요?"


그러지 않아도 꿀꿀한 일이 있어 만사가 귀찮아질라 해서 집사람과 동네 매운탕집에서 쏘주나 한잔할까 생각하고 있던 참인데 집에 있던 아들놈이 전화를 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그저 그렇고 그런 소시민들이 살고 있다. 시골 읍이 그러하듯 작은 시장을 중심으로 단독주택들이 둘러싸고 있고 군데 군데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이런 동네의 특징 중 하나가 간선도로변의 점포들이 몇 해를 버티지 못하고 수시로 바뀐다는 것이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는 점포를 보면 무엇이 들어오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못내 자리를 떠야만 했던 점주의 심정이 헤아려져 그리 즐거운 기분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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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회 中 한접시 회 체인점이긴 하지만 도미를 시키면서 '껍질 붙은 채로'라고 주문하면 두말않고 괜찮은 솜씨로 회를 떠서 준다. 위 사진은 우럭 中 2만원. ⓒ 이덕은


그런 와중에서도 용케도 오래 버티거나 항상 손님이 북적이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감자탕집, 냉면집, 돼지족발집, 지금 가려고 하는 매운탕집이 그곳이다. 횟집을 왜 매운탕집으로 부르냐 하면 회보다 매운탕을 맛있게 먹고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체인점처럼 이곳도 생선과 해물들을 단품과 세트메뉴로 만들어 값싸게 내고 있다. 흔히 볼 수 잇는 메뉴 중에서도 특색있는 것이 있다면 도미회 정도를 들 수 있는데, 다른 곳에서 껍데기를 붙인채로 회를 떠달라 부탁하면 귀찮아하거나 아예 못한다고 손사레 치는데 이곳에서는 두말 않고 그렇게 만들어 준다. 서툰 솜씨로 혹시 회가 끓는 물에 다 익어버린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럴듯하게 대령하니 실비집 치고는 '고찔(高質)'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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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보다 더 맛있는 매운탕 나는 이 집의 회보다는 매운탕을 더 좋아 한다. 물론 실비집의 매운탕이 그저 그 맛 아니겠냐겠지만, 5천원이라는 값에 이만큼 풍성하고 조미료 맛이 덜 나고 감칠 맛있는 매운탕은 사실 찾기 힘든다. ⓒ 이덕은


그러나 내가 이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매운탕이다. 따로 5천원을 받는 서더리탕은 생선대가리가 푸짐하게 들어 있어 나를 흡족하게 만든다. 체인점 매운탕 양념이라고는 하지만 조미료 냄새가 덜 나고 그리 맵지도 않다. 생선의 단맛이 살아 있고 빨간 고추 기름이 동동 뜨는 탕은 소주 한 병을 더 시킬까 망설이게 만든다.


매운탕 맛을 제대로 안 것은 양평에 있을 때다. 양평은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한데 이제는 의례 매운탕하면 수제비를 넣어 주지만, 그 때만 해도 펄펄 끓는 매운탕에 손으로 뚝뚝 끊어 넣어 주는 곳은 양평 뿐이었던 것 같다.

더구나 쏘가리와 메기가 들어간 매운탕은 국물이 기름져서 술안주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매운탕 애호가가 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추억을 먹을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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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끓어 진국이 된 매운탕 사람들은 살코기를 좋아 하지만 나는 생선 대가리를 좋아 한다. 살코기는 아들이 먹고 집사람은 수제비 건져 먹고 대가리는 내 차지. ⓒ 이덕은


그때가 대학 다닐 때인지 언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주머니가 그리 넉넉지 못 했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마누라와 왜 여주 신륵사에 갔었는지 모르겠지만 절 구경을 하고 나오니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한 김에 강가의 매운탕집에 들어가니 시킬 것은 그야말로 매운탕밖에 없었다. 식당은 주택겸용으로 쓰고 있어 거실과 같은 홀에서는 비가 흩뿌리는 강이 훤히 내다보였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물고랑을 만들었다.

수조에서 뜰채로 건져 그 때부터 손질하여 만들어 내오는 매운탕은 깔짝깔짝 마시던 소주를 거의 반병쯤 비운 후에야 나온다. 펄펄 끓는 매운탕은 을씨년스럽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정취어린 분위기로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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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대가리 대구 뽈살만 찾는 사람도 있는데 원래 맛 있는데가 좀 징지글럽지 않은가? 살 발라 먹는 재미가 만만치 않은데 앞에 뼈가 수북히 쌓여 ' 저 사람은 고기 먹을 줄 모른다'는 소리도 듣는다. ⓒ 이덕은


양평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의 집에 볼일이 있어 오전에 들렀을 때였다. 내가 가니 이 양반, 워낙 술을 좋아하는지라 그 전날 엄청 마셨을 터인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 매운탕에 '소주'로 해장을 하면서 "어흐 끄윽 그저 해장엔 매운탕이 최고야, 한번 잡숴 보실려우?"하며 권한다.

그 때만 해도 술안주로 먹는 음식은 저녁 때만 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 뭔 소리냐며 거절했지만, 한 손으론 '소주'잔을 들고 고춧가루를 확 풀어 시뻘건 매운탕을 숟가락으로 떠서 후후 불며 먹던 모습이 그렇게 맛나 보일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집에서 매운탕을 먹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대개 동태나 대구 같은 것으로 국을 끓여 먹었었는데, 살토막이 들어 간 국은 별로였고 대신 어머니가 먹고 계신 대가리와 내장을 신기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때는 처마에 북어나 굴비 두름을 걸어놓곤 했는데 눈알 빼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가끔 내 그릇에 대가리를 넣어 주시곤 했다. 그 때 뼈 발라먹는 재미를 알게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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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과 함께 나하고는 거의 동년배인 t사람 좋은 주인. 정희훈 사장. 이 집에 가면 사장님이 친구들 하고 술한잔 하는 모습을 보곤 했었는데 이 날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무언가 빠진 것처럼 좀 섭섭했다. ⓒ 이덕은


고기를 잘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먹었던 자리는 실속없이 지저분하게 뼈만 쌓인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알기론 그게 아니다. 닭고기도 닭다리보단 닭날개, 생선은 살보단 머리나 내장살, 껍질 쪽이 퍽퍽하지도 않고 간이 더 배어 맛이 더 좋다. 그러니 우리집 개들은 나만 보면 미친 듯이 꾸짖는다.

'개밥은 왜 먹어!'라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 http://yonseidc.com/index_2007.htm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 http://yonseidc.com/index_2007.htm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매운탕 #신창동 #해미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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