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0만원 받아 연길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중국동포 허병숙 할머니 가족에게 보내드리기 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사연

등록 2007.12.28 17:47수정 2007.12.2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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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론 못 돌아가? 청와대 앞에서 1년 넘게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중국동포 허병숙 할머니. ⓒ 조호진

일한 돈을 주세요.
돈 때문에 불구 되었으니
한국에서 일한 돈을 주세요.
나는 이제 더 갈 곳이 없습니다.
한국 땅에서 일하고 못 받은 돈
1050만원을 받아 자식, 남편 있는
연길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돈 떼먹은 이는 어디로 사라지고
주민등록도 없어졌답니다.
희망이 없으니 정부에서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중국동포 허병숙 할머니의 '호소문' 전문

중국동포 할머니가 1년 넘도록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성한 몸도 아닌 반신불수(半身不隨)의 이 할머니는 엄동의 추위와 한여름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1인 시위를 하면서 "일한 돈 1050만원을 받게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중순부터 1인 시위를 시작한 허병숙(77·중국 길림 연길) 할머니.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중국동포의집'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할머니는 오전 9시 가량 청와대에 도착해 차디찬 도시락을 먹은 뒤 오후 2시까지 시위하고 철수합니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1년이 넘도록 호소했지만 한국 정부는 냉담할 뿐입니다.

병원 앞에 버려져 반신불수... 임금청구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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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노동부장관, 법무부장관, 서울시장 등에 호소한 편지와 각 기관에서 보내온 공문이 한 보따리다. 할머니의 보자기에는 편지뿐 아니라 한도 같이 담겨 있다. ⓒ 조호진


할머니는 95년 10월부터 96년 11월까지 11개월 동안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소재 H식당에서 일했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갈 때 이자까지 쳐서 몫 돈으로 주겠다던 식당주인 고모(여· 60·서울 은평구)씨는 할머니가 가족 곁으로 간다면서 임금청산을 요구하자 딴소리를 했습니다.

98년 11월 16일, 할머니는 이날을 잊지 못합니다. 이날 식당주인을 찾아가 체불임금 105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중국동포의 돈은 주지 않아도 된다'는 모멸과 욕설이었습니다. 격분한 할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고씨의 남편은 차에 실어서 병원 입구에 버려 두고 달아났던 것입니다.

병원은 치료비가 없는 할머니를 버려졌던 위치에 다시 내다 버렸습니다. 지나가던 중국동포가 병든 할머니를 식당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당시 치료를 받았다면 반신불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고 합니다. 또 할머니는 "식당주인 여자를 생각하면 미칠 것 같습니다"면서 "식당에서 일할 때 얼마나 욕설을 해대면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했는지 생각하면 분하기 그지없습니다"고 말합니다.

중풍 들린 채 식당 뒷방에 몸져 누웠던 할머니는 가족에게 데려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남편 정씨는 병든 할머니를 연길의 가족에게 인심 쓰듯 데려다 주었지만 정씨의 동행 왕복 여비는 할머니 가족들이 부담했습니다. 물론 체불된 임금은 일체 지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족의 도움으로 2년간 치료를 받으면서 운신이 가능해졌지만 가슴에선 천불이 일었습니다. 일한 돈은 못 받고 몸은 불구가 된 것을 생각하면,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에게 당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미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를 이대로 두면 큰일 날 것 같다고 판단한 자식의 승인 아래 2002년 10월 한국에 다시 왔습니다.

할머니는 불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체불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결국 임금청구 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2004년 4월 "피고는 원고에게 1050만원을 갚는 날까지 연 2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할머니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식당주인 여자는 월세도 못내는 지급불능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청와대와 노동부, 법무부, 서울시 등 각 기관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시효가 지나면서 도움 받을 길이 막혔습니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이 여러 방송과 각종 신문 등에 보도됐지만 도움의 손길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는 못 돌아가... 하늘에 사무친 철천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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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책임져라! 허병숙 할머니는 임금체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청와대 앞에서 쓰러져 죽겠다고 합니다. ⓒ 조호진


"한국에서 일하다 한국에서 돈을 떼였으니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할머니의 일념(一念)입니다. 임금만 떼인 게 아니라 몸마저 불구로 만든 냉정한 조국, 할머니는 청와대 앞에서 쓰러져 죽더라도 임금체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연길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요지부동입니다. 하늘에 사무치는 철천지한(徹天之恨)이 맺힌 것입니다.

할머니는 지난 27일 서울 남부지원을 다녀왔습니다. 혹시 구제 받을 길이 새로 열렸는지 알아보려고 갔다 왔다는 것입니다. 법과 제도로는 사방팔방 막힌 것 같다고 귀띔했지만 소용없습니다.

할머니는 "노무현 대통령이 됐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됐든 내 문제를 책임져 달라"고 호소합니다.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중국동포의집' 쉼터 중국동포들도 "중풍 든 몸에 지팡이를 의지하며 시위하러 오고가는 저 참상을 눈뜨고 못 보겠다"며 "어떻게든 고향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소연합니다.

청와대 앞에는 여러 나라 관광객들이 오고갑니다. 관광객들은 청와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기도 하고, 일부 관광객들은 1인 시위하는 할머니에게 눈길을 주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이런 말을 들려줍니다.

"외국 관광객 중에서도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오는데, 어떤 중국인이 '중국어로 한국 정부를 규탄하는 내용을 대자보와 플래카드에 써서 시위하면 빨리 해결될 것'이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싫다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 동포들을 업신여기지만 그래도 내 조국입니다. 자기 조국에서 이런 대접받고 있는 것을 중국인들이 알면 조선 사람을 우습게 봅니다. 그 말을 들은 뒤에는 중국동포가 아니라 한국 사람처럼 하고 1인 시위합니다."

"허병숙 할머니를 고향 연길로 보내드립시다!"
29일(토) 하름교회에서 할머니 돕기 작은음악회

"반신불수(半身不隨) 허병숙 할머니를 고향 연길로 보내드립시다!"

'중국동포 허병숙 할머니 가족에게 보내드리는 모임'(대표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의 결의입니다. 큰 힘은 없지만 십시일반의 여력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남은 여생이라도 가족과 보낼 수 있도록 돕자고, 돌아가더라도 화물칸에 실려 돌아가는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다짐도 해보았습니다.

묘하게도 <오마이뉴스> 전직 기자들이 총대를 메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 퇴직 후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로 옮기면서 할머니 사연을 알게 된 조호진 기자가 간사를 맡기로 했고, 정운현 전 편집국장이 대표를 맡아주었습니다. 정 전 편집국장은 "연말연시로 바쁘지만 딱한 할머니를 돕기 위한 일에 힘을 한 번 보태봅시다"라는 말로 힘주었습니다.

첫 번째 모금사업은 29일 오후 7시 30분 하름교회(서울 노원구 하계동)에서 열리는 '갈무리콘서트'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허병숙 할머니 고향 보내드리기에 동참한 하름교회는 '째데카'(공의와 정의)라고 칭한 돼지저금통을 교인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허병숙 할머니를 돕는 작은 음악회로 갈무리콘서트를 마련한 것입니다.

정언용 하름교회 목사는 "할머니의 딱한 소식을 듣고 정성을 모으기로 결정했다"면서 "고국이면서도 고국이 아닌,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힘도 여력도 없는 할머니를 돕는 일을 통해 나눔의 기쁨을 함께 하자"고 교인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첨부파일
허병숙할머니.mp3
덧붙이는 글 연락처 : '중국동포 허병숙 할머니 가족에게 보내드리는 모임' 간사 조호진 010-3618-6020
/ 메일 : tajin119@hanmail.net
첨부파일 허병숙할머니.mp3
#중국동포 #청와대 #1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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