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이었다. 헛헛하게 한장 남은 달력을 뒤적거리던 남편이 "내년 달력은?"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건 없었다.
"없는데?"
"뭐? 왜 없어… 달력은 사회성의 산물이라는데…."
그래서 날더러 어쩌라는 말인가? 아침 밥 먹고 밖에 나가서 사회생활 하는 사람이 누군데…. 지금 누구한테 사회성을 운운한단 말인가? 남편의 저 떠넘기기 정신… 참다 못해 나도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는 당신은 왜 달력을 한개도 못 얻어오는데?"
무슨 대답이 나올지 자뭇 궁금해진다. 물론 그래봤자 어설픈 변명내지는 개도 안 물어갈 권위를 내세우겠지만. 역시 남편의 대답은 "남자가 뽀대 안나게 그런걸 어떻게 받아들고 오냐?"였다.
뽀대. 폼. 우리 고향 식으로 말하면 '가우' 그것 때문에 안 받아왔다는 남편의 말을 믿어야할까 말아야할까.
"달력 하나도 안 들어오니… 인생 헛살았다 헛살아."
그깟 달력이 뭐라고 남편은 남편의 인생 38년과 내 인생 33년, 도합 71년의 인생을 죽 쒀서 개 준 꼴로 만들어 버린 걸까.
"달력없으면 나이 더 안먹어도 되고 좋네 뭐. 나는 계속 서른세살이다 앗싸."
큰소리를 쳐보는데, 등뒤로 날아드는 남편의 저 곱지않은 시선이라니…. '달력은 속여도 니 몸은 못 속인다 이거겠지?'
그나저나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달력 구경이 동짓달 꽃보다 더 구경하기가 힘들다. 나만 그런건가? 정말로 그런 거라면 나는 남편의 말마따나 사회성 제로에 인간성 제로인 "다꽝" 인생이란 말이 되는데….
이 시점에 그동안 살아온 내 인생을 뒤돌아 볼 필요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리 뒤집어보고, 털어봐도 딱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도 없고, 빌려와서 안 갚고 떼 먹은 돈도 없다.
세상 없어도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에 요즘 집장만하느라고 받은 대출금이 잘못이라면 잘못인데, 그래도 이자는 하루도 미루지 않고 꼬박꼬박 납부하고있다. 게다가 대한민국 평균 가계 부채비율에 딱 맞아떨어지는 빚때문에 달력을 못 받는거라면 나 혼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 국민이 못 받아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 힘들다는 외환위기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각 은행에서 한개씩, 수퍼에서 한개, 들고있는 보험사에서 한개, 자주 가는 약국과 병원에서도 한개씩해서 최소한 대여섯개는 들어 왔었는데, 올해는 다들 꿀 먹은 벙어리 아니 시간에 연연하지 않기로 약속이나 한듯 모두들 뒷짐들이다.
달력이 들어와야 치워 두었다가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 책도 싸주고, 습기 차지 말라고 싱크대 바닥에도 깔아둘텐데…. 그러고보니 2007년이라고 해봤자 이제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어디선가 주겠지. 누군가는 주겠지'하고 기다렸다가는 달력걸이로 박아놓은 대못만 뻘쭘하게 생겼다.
별수 있나, 목 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작은 아이를 챙겨 근처 문방구로 향했다. 몇 가지 달력이 나와 있었다. 그런데 헉! 달력이 이렇게 비쌀줄이야. 제품에 따라, 용도에 따라 금액이야 천차만별이었지만. 매년 공짜로 받아쓰던걸 내 돈 주고 사서 쓰려니 엊저녁 과음이라도 한듯 속이 쓰려왔다.
그래도 그 중에서 제일 쓸만해보이는 달력을 하나 사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달력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아이들 생일, 남편 생일, 결혼기념일에 시부모님 기일, 친정부모님생신까지 집안 대소사를 다 표시해놓고 나니 이제야 한시름 놓인다.
경기는 어려워도 시간은 가고, 먹고 살기 바빠도 세월은 흘러간다. 달력 하나 받지 못했어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온 인생. 며칠 남은 2007년에게 "아듀"인사를 전하며 오는 2008년 새로운 희망을 꿈 꿔본다.
그나저나 달력 많이 받으신분 계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생활 잘하는것인지 어떡하면 연말에 물밀듯 들어오는 달력의 홍수에 휩싸여 행복한 비명을 지를지 비법전수 부탁드려본다.
모두들 달력 장만 하셨나요?
2007.12.28 17:16 |
ⓒ 2007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