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렇게 아팠어요" 석면 피해자들 뭉친다

'전국 석면 관련 피해자 모임' 결성... 부산환경운동연합 강당에 30여명 참석

등록 2007.12.28 17:28수정 2007.12.2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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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석면 관련 피해자 모임'이 28일 부산환경운동연합 강당에서 열렸다. ⓒ 윤성효



'전국 석면 관련 피해자 모임'이 28일 부산환경운동연합에서 열렸다. ⓒ 윤성효


“와! 오랜만이다. 네도 그렇는가베, 나도 그런데. 우짜겠노. 안 죽고 있으니 만나서 안부라도 묻지만, 죽은 사람들도 있다 아이가.”

28일 오전 11시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소재 부산환경운동연합 부산경남석면피해신고센터 회의실. 3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과거 석면 제조 공장인 ㅈ화학에 다녔거나 인근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부산환경연합이 ‘전국 석면 관련 피해자 모임 추진회의’를 연 것. 이성근 부산환경연합 사무차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석면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자리에서 만난 분들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과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도 참석했으며, 부산지역에서 소송 변론을 맡을 변영철 변호사도 참석했다. 서토덕 (사)환경과자치연구소 연구원은 “그래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다행이다. 영문도 모르고 돌아가신 분들은 정말 억울하다. 지금부터라도 자료를 준비해서 국가화 회사를 상대로 싸우기 위해 모였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먼저 자신부터 소개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석면제조 공장에 다녔는지, 언제 공장 인근에 살았는지를 설명했다. 그런 뒤 현재 앓고 있는 질병을 털어 놓았다.

28일 오전 부산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전국 석면 관련 피해자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현재 질병 관계를 묻자 손을 들어 표시하고 있다. ⓒ 윤성효




소송 승소 안병규씨 "피해자들이 뭉쳐야 한다"

먼저 안병규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씨는 ㅈ화학에 다녔던 부인이 암의 일종인 악성중피종에 걸려 사망하자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가 지난 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안씨 부인은 “먼저 병명도 몰랐던 석면으로 인해 먼저 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한 뒤 소송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는 “지금 몸이 불편하여 병원에서 진단 확정을 받은 분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면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함께 뭉쳐야 한다”고 강조.

안씨는 “앞으로 개인적으로 회사와 합의를 보면 손해를 본다. 동료의 아픔을 내 아픔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아내의 재판 중에 증인과 진술에 협조해 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ㅈ화학 인근에 살았던 한 주민이 사정을 설명했다. 그 주민은 아버지가 교사 생활과 관광 가이드를 했는데, ㅈ화학 반경 2km 안에 살았다는 것. 그 주민은 “아버지는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고 2004년 8월 사망했다. 당시 의사는 치료 방법도 없고 학계에 보고도 안된 병명이라고 했다. 공장에 직접 근무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병에 걸려 돌아가신 아버지는 정말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어 6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 ㅈ화학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마스크를 하고 참석한 김아무개씨는 양쪽 폐가 2/3 이상 굳었다고 말하기도. 한 아주머니는 남편이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고 올해 1월 돌아가셨다고 소개.

'전국 석면 관련 피해자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석면 피해자 현황 양식'을 작성하고 있다. ⓒ 윤성효


김아무개씨는 현재 진폐증을 앓고 있다고, 다른 한 사람은 현재 부산 백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는데 1차로 석면에 의한 판정이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한 아주머니는 “오른쪽 폐에 인공막을 넣는 수술을 했다”면서 “지금도 그렇지만 그동안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중년은 “부인이 결혼하기 전 ㅈ화학에 다녔는데 2005년 설에 아프다고 해서 울산대병원에 갔다가 암 진단을 받았다. 그해 12월에 사망했는데, 1년만에 인생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ㅈ화학에 다녔던 어머니가 1989년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석면에 의한 것인줄 몰랐다고 한 참석자도 있었으며, 노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건강진단서가 필요해 보건소에 갔다가 진폐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얼마전 부산 백병원에 7명이 같이 가서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2명은 아직 괜찮은데, 나머지는 폐가 엉망이라고 한다. 그동안 폐가 아픈다도 석면에 의한 것인줄 모르고 지냈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옛날 ㅈ화학에 다닐 때 찍었던 사진을 갖고 오기도 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흑백 사진을 봉투에 넣고 가져와 펼쳐 보이기도 했다. 당시 작업 환경을 설명한 한 참석자는 “초창기에는 마스크며 장갑도 없었다. 직원들이 갖고 있던 손수건을 사용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전국 석면 관련 피해자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ㅈ화학에 다녔을 때 찍은 사진을 가져와 펼쳐보이기도 했다. ⓒ 윤성효



'전국 석면 관련 피해자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옛날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서토덕 연구원 "앞으로 국가 책임도 물어야"

서토덕 연구원은 석면 관련 피해에 관심을 갖게 된 경과를 설명했다. 그는 “2~3년 전 서울지하철 석면사건과 반포주공아파트 석면철거문제 등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면서 “대구의 안병규씨는 2005년 12월부터 부인의 사망과 관련해 소송을 진행해 왔는데, 처음에는 회사에서 모르는 일이라고 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설명.

그는 “최근까지 환경연합에 설치한 신고센터에는 66건이 접수되었다. 민주노총과 건강연대 등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ㅈ화학 근로자뿐만 아니라 주변 주민들에 대한 역학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

그는 “정부와 자치단체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석면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허용해 준 정부의 책임이다. 위험성을 알고 있는 정부와 관리하지 않은 회사에 책임이 있다”며 “정부는 내년에 ㅈ화학 주변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이고 ‘석면질환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소개.

그는 “얼마전 양산에 있는 한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공장에서는 현재 직원 중에 석면에 의한 질병이 발병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인근 주민 2명이 발견되었다. 직원 중에는 모를 수도 있는데 곧 밝혀질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얼마 전 일본의 석면 전문가들이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석면 공장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다가 지금은 인도네시아로 갔다. 인도네시아 공장에 가보니 마스크도 없이 작업하더라. 그 곳에서도 몇 십 년 뒤에 질병이 발생할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4일 대구지법에서는 안병규씨 부인 사건에 대해 회사의 책임을 90%로 물어 1억 7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면서 “앞으로 자료를 모아 국가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호철 변호사 "회사에서 항소하지 않아 확정"

석면 피해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로 이끈 이호철 변호사가 설명하고 있다. 그 옆에 이 변호사한테 소송을 맡겼던 안병규씨가 앉아 있다. ⓒ 윤성효


안병규씨 부인의 소송 사건을 맡았던 이호철 변호사가 소송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 이 변호사는 “2005년 안씨가 찾아 와서 맡아달라고 해서 주위 변호사들한테 물어봐도 ‘되겠나’ 하는 반응이었다. 안씨의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자료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질병은 십수년 뒤에 발병한다. 회사에 다녔다고 했지만 회사에서는 자료가 없다고 했다. 회사에 다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작업을 했다는 입증을 해야 하는데, 자료가 없으면 그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 다닐 때 찍어 놓은 사진이 중요한 증거자료라고 제시. 그는 “사진이 있어야 한다. 안씨 부인의 경우 사진 한 장이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가능했다”면서 “하지만 작업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작업 환경이 어려웠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당시 작업환경을 찍은 사진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자료가 모아지면 석면 피해 소송을 회사뿐만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손해배상청구소송에는 시효가 있는데, 손해를 봤다는 사실을 안 지 3년 안에 해야 한다. 그 뒤에 하면 배상받지 못한다.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소개.

이 변호사는 “안병규씨 부인 사건에 대해 회사는 항소를 하지 않았기에 확정되었다”면서 “주위에 보면 석면에 의해 병이 걸렸음에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상 받을 권리, 치료를 받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동묵 교수 “작업복 집에 가져갔다면 가족도 피해”

강동묵 부산대 산업의학교실 교수. ⓒ 윤성효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산업의학교실 강동묵 교수가 석면에 의한 질병에 대해 설명했다. 최근 일본을 다녀왔다고 한 강 교수는 “일본은 석면을 연구하는데 의사도 있지만 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이 많았다”고 소개.

강 교수는 “처음 석면 연구를 하면서 피해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노동부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없다고 했다. 실제로 없을 수가 있다. 근무자들이 알음으로 해서 모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당시 일하면서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집에 간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참석자들은 웅성거리면서 “작업복을 입고 집에 가기가 일수였죠”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여러분들의 자제분들도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석면이 옷에 묻은 채 집에 가서 세탁을 했을 경우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면서 “석면은 머리카락의 1/100 크기로 아무 미세하다. 너무 작기에 잘 퍼진다.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석면 관련 질환은 많다고 소개. 늑막질환은 ‘늑막삼출액’ ‘늑막비후’ ‘늑막반’ 등이 있고, 암은 ‘악성중피종’과 ‘폐암’이 있고, 합병증도 있다는 것. 그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더라도 ‘석면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아야 한다. ‘석면폐증의심’ 등으로 애매한 진단은 소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 참석자 30여명 가운데, 폐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22명에 이르렀다. 이 중에 폐질환이라는 확진을 받은 사람만해도 7명이나 되었고, 산재신청 내지 산재승인이 내려진 사람도 있었다.
#석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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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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