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 3000'하려면 통일부 10개도 모자란다"

외교부로 통폐합설에 통일부 직원들 민감한 반응

등록 2007.12.28 18:22수정 2007.12.2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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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 오전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이재정 통일부장관과 권호웅 내각책임참사를 비롯한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 전체회의.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쪽에서 통일부를 폐지해 외교통상부에 '흡수통합'시키겠다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자 통일부 직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들은 "통일은 헌법적 가치인데 통일부를 없애면 새 정부는 통일에 아예 관심이 없다는 느낌을 줄 것"이라며 "이 당선자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실현하려면 통일부가 10개 있어도 모자란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당선자의 대북·통일 정책 브레인으로 알려진 남성욱 교수는 27일 한 세미나에 참석해 "통일부 조직개편 문제에 대해 여러 안이 올라오는 것 같은데 긍정적 의견이 거의 없다, 일단 외교부(로 통합하는) 안이 많이 나온다"고 밝혔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만든 정부조직 개편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통일부를 외교부와 통합하도록 되어있다.

또 뉴라이트 계열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정부개혁·행정선진화팀장을 맡고 있는 가톨릭대 김관보 교수가 지난 6일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통일부를 축소해 '남북교류협력처'로 만들게 되어있다.

물론 이 같은 시안이나 발언은 아직 시나리오 수준으로 인수위에서 결정된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이 당선자 쪽이 노 정권 실패의 대표 사례로 지목하는 게 국정홍보처와 통일부인 만큼 다른 부처와 상황이 다르다. 국정홍보처는 문화부로의 흡수되는 게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외교부와의 통합설에 대해 통일부 직원들은 다양한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통일부 폐지는 헌법 정신과 배치...독자적 대북정책 어려워"

우선 제일 먼저 드는 게 통일부 폐지는 헌법 정신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되어있다.  또 제66조 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한 통일부 간부는 "통일부를 없애면 새 정부는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는 이미지를 줄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헌법상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남북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와의 교섭이 주 임무인 외교부와 통합하는 것은 헌법 정신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에서 한국의 발언권과 교섭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통일부와 외교부가 합쳐진다면 대등한 통합이 아니라 통일부가 외교부로 흡수되는 것이다. 외교부는 원래 미국 중심으로 움직인다.

통폐합 뒤 설사 이름을 '통일외교부'라고 짓는다고 해도 철저히 미국과의 관계 중심으로 남북 관계를 사고하면서 독자적인 대북 정책은 존재하기 힘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통일부의 한 간부는 "대북 정책이 없으면 우리가 미국한테 별도로 할 얘기도 없다, 거꾸로 미국 중심으로만 하면 북한에 대해서도 별 발언권이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선순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외교부 통합론을 들고 나온다"고 비판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김영삼 정부가 당했던 수모가 되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를 어떻게 둘 것인가 하는 시각차이에서 비롯된다. 노무현 정부는 북미 관계가 막히면 남북 관계가 뚫어주고, 북미 관계가 잘 풀리면 남북 관계가 더욱 속도를 내는 이른바 선순환 모형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당선자 쪽은 6자회담이나 북한 인권 문제 등에서 외교부가 한미동맹에 기반해 일을 풀려고 해도 통일부가 계속 딴지를 거는 바람에 문제가 많았다고 보고 있다.

통일부의 또 다른 한 간부는 "이명박 당선자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되레 통일부가 10개 있더도 모자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핵·개방 3000' 구상은 북한이 핵 폐기를 전제로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에 이르도록 만들겠다는 대북 정책이다.

그는 "대단히 실용적인 이 당선자가 실제 통일부의 외교부 통폐합을 쉽게 생각할지 의문"이라며 "되레 인수위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못한 일부 사람들이 자기 생각만 가지고 언론 플레이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교부 당국자 "통상교섭본부 떼어내려는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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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 청사. ⓒ 연합뉴스

통일부의 한 간부는 "이명박 당선자 쪽이나 한나라당은 통일부를 외교부와 통폐합하는 쪽에 무게가 많이 가는 것 같다"며 "다음 주부터 인수위에서 설명을 요구할 것 같은데 우리 부서는 치밀한 논리 준비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통일부를 '흡수통일(?)'하게 될 외교통상부도 전혀 환영하는 반응이 아니다.

외교부의 한 간부는 "외교부와 통일부는 기능이 전혀 다르다. 일부 기능을 가져오는 것은 몰라도 기능이 전혀 다른 부처를 어떻게 하나로 합치냐"면서 "외교장관이 북한 상대하라는 얘기인데 별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부의 외교부 통합안은 여러 안 가운데 우선 순위가 떨어지는 안으로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되레 우리는 외교부에서 통상교섭본부를 떼어내려는 음모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정 통일부가 미워서 손을 댄다면 조직을 축소해서 '교류협력처' 식으로 만들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조직통폐합과는 다른 얘기지만 이 당선자가 자신의 대북 공약중 하나였던 나들섬 구상에 집중하기 위해 개성공단 2단계 공사를 뒤로 미룰 것이라는 일부 언론보도도 있다.

나들섬 구상은 한강 하구 퇴적지에 900만평 규모의 중소기업 공단을 만든 뒤 북한 노동자를 출퇴근 시키거나 숙소를 만들어 남북 경협을 하겠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북한 안에 있어 통행·통신·통관 등에 제한이 많지만 나들섬은 남쪽 지역에 있어 이런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을 퍼주기로 보는 이 당선자쪽이 자신만의 새로운 대북 성과를 내기위해 나들섬 구상에 집중할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통일부의 한 직원은 "지금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막 돈을 벌어가고 있는 분위기"라면서 "남북 경협은 상대방이 있는 법인데, 지금까지 해온 개성공단을 제로로 만들고 북한이 새 사업을 할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당선자 쪽이 대북 정책에서 이전 정권과 차별성을 보인다면 제도적 차원에서 나타내면 되는 것이지 개성공단 가지고 차별성을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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