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가는 대통령, 박수치며 보내 주자

대통령 당선자와 국민들에 바란다

등록 2007.12.28 18:10수정 2007.12.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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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자의 요즘 움직임

우리나라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5년 만에 한 번은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 벌써,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하여 들어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움직임이 좀 과장해 표현하면 “서슬 퍼렇다”고 할 만하다.

현 정부, 즉 물러갈 정부가 고위직 인사를 할 때는 당선자측과 협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각 정부 부처의 업무 보고도 신정부의 정책이나 방침에 거슬리지 않도록 입맛에 맞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2003년 2월 제정된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 당선자에게 주어진, “대통령에 준하는 지위”로서 보장받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당연한 권리이니 전혀 문제 삼을 것은 아니다.

대통령 당선자의 지위와 권한

인수법에 따르면 당선자는 대통령직 인수위를 구성해 국정 현안을 파악하고, 차기 정부의 5년간의 국정운영 방향을 검토하기 위해 당선자의 참모뿐만 아니라 필요할 경우 정부 공무원들도 제공 받을 수 있다. 또한, 국무위원들로부터 보고를 받을 수 있고 대통령과 회동 등을 통해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해 상호협의하고 조율도 할 수 있다.

당선자는 또 지난 2005년 개정된 대통령직 인수법에 따라 취임 이전에라도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고, 국회의장에게 인사청문회 실시를 요청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당선자의 지위와 권한은, 국정의 공백을 막고 원활한 정권 인계인수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권의 교체시기에 법에 정한 행위를 수행하면서 나타나는 '정치적 정서' 혹은 '정치적 윤리'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인수 작업과 정치적 정서

요즘 정계 소식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선자측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골든타임의 메인 뉴스에는 현직 대통령보다는 당선자 소식이 먼저이고 그 동정의 보도가 전부이다. 이제, 현직 대통령의 동정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이 언론보도는 대체로는 국민들의 관심과 정서를 대변한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 정서는 꽤나 비정하다. 혹은 언론들이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현재의 국민 정서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 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히 언론의 권력에 대한 아부요, 파렴치한 일면이다.

물론 언론보다 먼저 당사자인 정권 인수측의 윤리를 언급해야 마땅하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정권 인수측은 전쟁에서의 '점령군'이 아니다. 당선자측은 엄격히 법에 따라 활동을 하더라도 최대한 정치적 예양(禮讓)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의 승리를 독점적 정권 획득으로 인식하고 마치 전쟁에서의 승자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선거에서의 48% 승리에는, 소수이지만 분명히 반대자가 있었으니 독점이 될 수 없으며, 비록 다수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분점(分店)인 것이다.

정권 교체기의 정치 윤리

과거의 정권 교체기를 한 번 돌아보자.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를 통해 교체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점령군의 행태를 보였다. 또 박정희 정권 이후 5, 6공 정권으로의 교체는 엄격하게 보면 본질적인 교체가 아니었으니 더 논할 가치가 없다.

그 후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권과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으로의 교체는 그 강도가 좀 다르기는 하나 교체다운 교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정식으로 교체되기 이전에 '점령군'에 가까운 동태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물러가는 정부는 다음 정권에게 인계해야 할 공문서를 의도적으로 파기하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파렴치함을 자행했다.

노무현 정권은 사실상 김대중 정권의 후계자격이다. 2002년 당시 현직이던 김진표 국무조정실장이 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 부위원장을 맡는 등 순조롭게 정권을 인수했다. 그런 그가 다음 정권을 위해 인수법을 만든 것이다. 

현재 이명박 당선자측의 정권 인수 작업에서 누리는 지위와 권한은 사실상 노무현 정권에서 제정된 법에 따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평가 받을 만하다. 정치적 생리로 본다면, 자기 살을 깎아먹는 합리성을 보여준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공(功)과 과(過) 

대통령 당선자측은 아직은 대통령이 아니다. 정권 인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법적 활동만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물러가는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개개의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현 정부가 레임덕(lame duck)에 빠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어느 정권이든 완벽할 수는 없으므로 공(功)과 과(過)는 공존한다. 필자는 심판자가 아니므로 어느 것이 공이고 어느 것이 과인지를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지켜본 일개 국민으로서 어렴풋이나마 그 공과 과를 느낄 수는 있고 또 그것을 말할 자격도 있다.

건설업을 하는 필자의 친구가 '노통'이 경제를 망쳐놓았다면서 맹비난 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또 주변에서 이렇게 무능한 대통령은 처음이라는 혹평도 들은 바 있다. 필자 역시 그 점을 긍정하면서도 또한 견해를 좀 달리 하는 부분도 있다. 

필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공로라고 꼽고 싶은 것은 권위주의 정치 행태를 거의 보여주지 않은 점이다. 과거의 대통령들이 대개 카리스마와 파벌로 정권을 획득하고 정치를 펴온데 비하면 '노통'은 자신의 권위를 포기해가면서까지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 점이다. 마치 동네 이장처럼, 무슨 문제든 '맞짱 토론'을 불사하던 모습은 체통은 없을지 몰라도 권위주의는 불식했던 것이다. 

2004년 5월에 있었던 대통령 탄핵심판을 기억할 것이다. 그 때 노무현 대통령의 혐의는 "불법선거운동에 의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위반, 본인과 측근들의 극심한 권력형 부정부패" 등이었다. 법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성이 짙은 혐의였다. 그 때 그는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사상 초유의 수모(?)를 겪으면서도 어떤 야비한 정치권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또 참여정부는 치솟기만 하던 아파트 가격을 어쨌든 잠재웠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침체되고 국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특히 부유층이나 투기 세력, 건설업자들은 더 심한 비난을 퍼부었다. 필자는 한 쪽을 얻으려면 다른 쪽을 잃어야 하는, 둘 다 얻기는 매우 어려운 이 문제를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은 분명히 양면이 있는 것이지 오직 단죄(斷罪)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형 노건평씨가 구설수에 오르긴 했지만 친인척의 비리도 비교적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친인척 비리는 대통령이 권위적일 수록 심해진다. 어쨌든 노 대통령의 과실이 있더라도 또한 몇 가지 공도 있다고 본다면 그 점을 배려하는 정치적 미덕은 보여야 한다. 

박수치며 보내자

정권의 교체는 필연적인 정치의 과정이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혁명이 아닌 한, 전(前) 정권을 신(新) 정권이 부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완전히 부정하고 모조리 개혁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얼마나 타당하고 이로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정치 미덕도 아니며 아름다운 정서도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언젠가 또 다음 정권에 물려주어야 한다. 이전 정권에 대한 가혹한 부정을 다음에 스스로 겪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동창회장은 그 동창들을 잘 이끌어 보자는 것이 목표이다. 신임 회장이 전임 회장과는 다른 지도력과 다른 방법을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전임 회장도 역시 동창생이다.

오늘, 파키스탄의 부토가 암살되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정치의 모습이다. 집권자인 무사라프가 직접 개입되었든 아니든, 이는 그 국민들과 정치가 화합과 양보를 모르는 극단의 대립을 벌인 결과이다. 그러한 극단의 대립이 바로 정치가와 국민들의 정치 윤리와 정서에서 비롯된 것임은 분명하다.

물러나는 대통령을 박수치며 보내자. 그런 전통을 만들자. 물러나는 대통령이 얼마간의 잘못이 있더라도 아주 천인공노할 대죄가 아닌 한 “수고하셨다”면서 덕담이라도 해 주자. 특히 정권의 교체기에 정치인과 국민들이 아름다운 정치 정서와 미덕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노무현 #정권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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