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우리 동네 집배원 아저씨 (2)

2007 고객만족도 1위를 차지한 우체국의 뒷모습

등록 2007.12.28 20:45수정 2007.12.2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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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동작 우체국에서 전화가 왔다. "우체국입니다. 아까 전화 드린댔죠?" 기다리던 전화다.

 

"저희 직원하고 얘기를 해봤는데요, 고객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카드키가 없으면 불편하다고 하네요. 카드키를 주면 어떨까요?"

 

오전에 통화했던 실장이다. 순간 시쳇말로 '벙쪘다'. 아니 카드키를 주면 끝나는 것을 누가 몰라서 얼굴 붉혀가며 전화까지 했겠는가. 사실 불친절한 직원의 행동에 열받아서 전화한 탓이 더 크다.

 

그런데, "카드키를 내어주라"니. 이것이 우체국 실장이라는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적어도 "저희 직원 때문에 기분 상하신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 하는 게 먼저가 아닌가.

 

그 다음 말도 가관이다. "카드키가 없으면 집배원이 배달하기에 번거롭죠." 솔직히 이 말은 "집 안이 도둑이 들었던 어쨌던 간에, 집배원이 최적의 조건에서 배달할 수 있게 협조하라"로 들렸다.

 

그래서 다시 실장에게 물었다. "실장님, 집 안에 도둑 든 적 있으세요?" 잠깐 멈칫하는 느낌이 들더니 전화기 건너편에선 "네... 예전에 한 번"이라고 했다.

 

말을 이어갔다. "집 안에 도둑이 들어봤다고 해서 말씀드리지만, 밖에 나갔다와보니 바닥에 신발 자국이 나 있고, 서랍 다 열려 있고, 가방 같은 게 없어졌다고 생각해보세요. 예전 일이지만, 얼마나 찜찜한 줄 아시죠? 2층에 있는 분들도 그렇구요. 그래서 카드키를 설치했어요. 아무리 집배원 아저씨라도 카드를 쉽게 못드리는 것도 이 때문이죠."

 

실장이 입을 열었다. "현관 안에 들어가도 안에 각자 현관문 있잖아요. 카드키 줘도 별 상관 없는 거 아닌가요?" 개념을 아주 해외여행 보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차분히 대답했다. "실장님, 그럼 카드키 설치한 이유가 뭔데요? 저희가 쓸데 없이 돈 들인 건가요? 외부인이 들어오는 거라도 좀 막으려고 한거잖아요. 도둑 들어보셨다면서요." '아니 그랬다는 사람이 말을 그따구로 해요'라는 말이 목까지 나왔지만, 꾹 참았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요?" 실장이 물었다. "전화해주시면 되잖아요. 등기 소포엔 대부분 전화번호 적혀 있잖아요." 전화달라는 말에 실장은 "아니 집배원이 보내는 소포가 하루에 몇 갠데 그걸 다 전화합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실장과의 통화는 비슷한 식이었다. 결국 "카드 줘라"였다. 몇분 뒤, 때마침 S씨가 왔는지 실장은 전화기를 넘겼다.

 

"여보세요." S씨였다. "아니 내가 이 동네에서만 몇 십년 동안 있었는데, 나를 못 믿으면 어떻게 합니까. (중략)" 결국 "카드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 아까 전화했을 때와는 달리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S씨 목소리는 사나운 늑대에서 선한 양으로 탈바꿈한 뒤였다. 그냥 기가 찼다. 들어가서 무슨 말을 어떻게 했을지 감이 왔다. 실장이 "카드 달라"고 한 게 약간은 이해가 됐다.

 

결국 같은 말만 되풀이 할 것 같기에, S씨에게 제안을 했다. 아래 층에 사람들과 상의를 해서 카드키를 주고 안 주고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네, 알았어요." 분이 안 풀려 한 마디 더 곁들었다. "카드키 문제는 나중에 연락하더라도, 아저씨 그 전화받는 태도는 용서가 안 되네요." 한 마디 찍는 소리를 한 뒤, 홧김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5분여 뒤.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S씨가 괘씸해 다시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를 받았다.

 

"실장님, 아까 전화했던 주민인데요. 카드키 문제는 S씨에게 나중에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근데요. 적어도 민원 전화를 걸 정도면 뭔가 문제가 있었겠고, 그렇다면 사과를 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직원 교육을 한다면서요. 대체 무슨 교육을 하는 건가요?"

 

이어 실장이 답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 S씨가 말을 안 한 모양이었다. "전화를 걸자마자 '내려오쇼'라고, 전화 통화를 하다가 딴청을 피운 것은 못 들으셨나요?" 그제서야 미안한 듯, 실장은 "아,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직원을 교육시키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단도리를 하자는 생각에 "혹시나 다음에 S씨 태도가 같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직원 교육을 잘 시키겠습니다." 같은 대답이다. 진정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철밥통이라고 비난받는 공무원들이 흔히 즐겨쓰는 말이다.

태도가 괘씸해,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다음엔 정식으로 민원 넣겠습니다." 그러자 전화기 반대편에선 "허허~" 너털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웃음 소리가 귓구멍을 자극하며 더 화를 돋웠다.

 

'못할 것 같은가 보지? 그래 지켜봐라.' 악에 받혀 어금니를 힘껏 물었다. 전화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6개월 만에 한 항의전화는 우선 이렇게 일단락됐다. 사과 한 마디 들을 생각은 이제 추호도 없다. 악만 남았을 뿐. S씨, 더 지켜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2.28 20:45ⓒ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우리 동네 집배원 아저씨 #동작우체국 #집배원 #우체국 #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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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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