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해리포터>를 찾는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

[TV야 뭐하니?] KBS 1TV <이야기발전소>의 의미

등록 2007.12.29 13:28수정 2007.12.2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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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발전소 KBS1TV <이야기발전소> 홈페이지. ⓒ KBS

▲ 이야기발전소 KBS1TV <이야기발전소> 홈페이지. ⓒ KBS

 

어느 여름날 밤 기차역 대합실. 폭우로 발이 묶인 승객들 사이, 한 청년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오싹한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엔 선글라스를 낀 사나이가 나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더니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느덧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은 이어지는 ‘기묘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

 

영화 <기묘한 이야기>의 얼개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처럼 폭우라는 상황과 기차역 대합실이라는 장소를 설정해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그중 몇몇을 스토리텔러로 세워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1990년 일본 후지TV에서 시작해 10년 간 인기리에 방영한 TV프로그램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의 극장판이다.

 

철 지난 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한 TV프로그램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현재 KBS 1TV에서 방영중인 <이야기발전소>는 마치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 같다. 차이가 있다면, 스토리텔러를 비롯해 일차적 청중이 스튜디오에 있고, 아마추어 스토리텔러가 직접 창작한 이야기라는 점 정도다.

 

그럼에도 <이야기발전소>는 분명히 <기묘한 이야기>의 분위기를 풍긴다. 먼저 스토리텔러의 이야기와 재연 화면이 어우러지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그렇다. 물론 이야기 중간에 내레이션이 스토리텔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그 비중과 타이밍은 몰입을 헤치지 않는다.

 

또 역설적으로 <기묘한 이야기>와는 달리 아마추어 스토리텔러가 창작한 이야기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기묘한 이야기들은 한 편의 영화나 소설에 비해 거창하지 않다. 짜임새는 부족하되, 설정이 참신할 뿐. 그러니 ‘기묘’한 것이다. <이야기발전소>의 이야기가 이런 기묘함 닮은 이유는 이야기꾼들의 아마추어리즘 덕분이라는 말이다.

 

제2의 <해리포터>를 발굴하는 '스토리텔링 클럽'

 

그렇다고 <이야기발전소>가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에 그치는 건 아니다. 외려 그보다 야심 찬 포부를 지니고 있다. ‘스토리텔링 클럽’으로서 가능성 있는 이야기를 발굴해 <해리포터> 시리즈같이 세계를 매혹시킬 만한 문화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야기발전소>는 프로그램이 내건 기치처럼 문화산업 시대를 맞아 스토리텔링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많은 스토리텔링 관련 공모전이 있지만, 아마추어 스토리텔러에겐 여전히 문턱이 높기만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PC통신에서 탄생한 소설·영화 <엽기적인 그녀>나 인터넷에서 뜬 인기 작가 ‘귀여니(이윤세)’의 사례도 일반인에겐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결국 완성도가 부족하거나 재수가 좋지 않다면, 보통 사람들의 좋은 아이디어는 사장될 수밖에 없을 터. 그 중에는 다듬고 보탠다면 '제2의 <해리포터>'가 될 보물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은 매주 3팀의 스토리텔러들이 출연해 자신이 써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문 심사위원들과 방청객의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중 1위를 한 스토리텔러에겐 3연승까지 매번 소정의 창작 지원금이 주어진다.

 

가까이 영화 <장화, 홍련>과 <디워>, 멀리 소설·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그랬듯, 이야기는 사전에 제시되는 전설을 모티브로 한다. 이를테면 ‘문바위 전설’은 ‘인형의 집’이라는 으스스한 이야기로, ‘청의동자 전설’은 ‘과부들’이라는 엽기적인 이야기로 변모한다.

 

참신한 이야기가 주는 매력, 검증 시스템은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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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발전소 KBS1TV <이야기발전소> 홈페이지의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글. ⓒ KBS

▲ 이야기발전소 KBS1TV <이야기발전소> 홈페이지의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글. ⓒ KBS

 

물론 원대한 목표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전제로 할 때 성립한다. 더불어 그래야만 TV프로그램으로서의 당위성 또한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지대>의 한 코너에서 독립해 지난 28일 방송으로 7회를 넘긴 <이야기발전소>는 비교적 순항을 하고 있다.

 

이유는 단연 특유의 '참신함' 덕분이다. 물론 일부는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식상하기도 하지만, 이따금 돋보이는 아이디어의 이야기가 색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뻔한 드라마·영화에 신물이 난 사람들에게 10분에서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맛볼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다.     

 

이를테면, 지난 28일 방송 중 ‘자린고비 전설’을 이야기 주제로 삼은 ‘밧줄, 소금, 매달린 사람’만 해도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다. 이야기는 한 사이코 개그맨이 웃음에 인색한 관객을 상대로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는 않는 자린고비에 대한 굴비의 복수”라는 관점과 그럴 듯한 반전은 부족한 짜임새를 채우고도 남았다.

 

반면, <이야기발전소>에 제기된 문제도 있다.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의 질적인 부분이야 보다 많은 스토리텔러의 참여를 이끌어내면 나아질 일. 문제는 기본적으로 담보돼야 할 '독창성'부터 흔들렸다는 점이다.

 

<이야기발전소>는 11월 8일 첫 방송에서부터,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이날 방송한 이야기 중 ‘우렁각시 전설’을 이야기 주제로 한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2005 봄 특별편'인 ‘미녀캔’과 너무 흡사하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진 것이다.

 

이에 제작진은 “출연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의견 청취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조만간 “진위 여부 확인과 함께 제작진의 의견을 게시”할 예정이다.

 

<이야기발전소>에 주목하는 이유

 

<이야기발전소>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처럼 대단한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독창성이란 내피를 입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명작’ 역시 이런 어설픈 이야기에서 시작됐을 터이다.

 

언젠가 <이야기발전소>에서 많은 스토리텔러의 이야기가 완성도란 외피를 덧입고 세계로 나아가는 문화콘텐츠가 되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덕원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2007.12.29 13:2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덕원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이야기발전소 #스토리텔링 #기묘한 이야기 #표절 의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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