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새해 KTX 여승무원들은 웃을 수 있을까?

2007년 세밑, 깨진 합의와 법원의 전향적인 판결로 천막 농성장엔 희망과 불안이 교차해

등록 2007.12.29 11:31수정 2007.12.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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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여승무원들이 28일 서울역 앞에서 철도공사를 비판하는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KTX 여승무원들이 28일 서울역 앞에서 철도공사를 비판하는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서울역 광장에 다시 천막이 차려졌다. '합의문 서명 앞두고 돌연 태도 바꾼 철도공사는 각성하라'는 플래카드가 들렸고,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KTX 여승무원의 사용자'라는 27일 법원 판결 소식이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농성 이틀째를 맞은 28일 오후 2시 KTX 여승무원들의 천막농성장 바깥의 모습이다. 천막 안에는 물이 흥건했다. 갑자기 비가 천막을 세차게 때렸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KTX 여승무원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의 모습이 비쳤다.

 

누군가는 조용히 신문을 지켜봤고, 또 누군가는 이철 사장을 성토했다. 세밑에 차려진 한겨울의 천막 안에는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고 있었다. 희망은 여승무원에게 내려진 전향적인 법원 판결에 비롯됐고, 불안은 얼마 전 깨진 합의서에서 시작됐다.

 

KTX 여승무원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심정으로 천막을 세웠단다. 28일 철도노조에는 새로운 집행부가 꾸려졌고, 코레일은 노사 공동으로 법적 판단을 구해보자고 제안했다. 세밑과 새해 KTX 여승무원의 앞날은 다시 한 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합의 직전, 태도 바꾼 코레일... 노조 "최소한의 신의조차 저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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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았던 눈물 지난 2006년 9월 29일 서울지방노동청이 KTX여승무원 불법파견 여부를 재조사한 결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자,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대기하던 KTX 여승무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마르지 않았던 눈물 지난 2006년 9월 29일 서울지방노동청이 KTX여승무원 불법파견 여부를 재조사한 결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자,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대기하던 KTX 여승무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KTX 여승무원들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지난 11월 16일부터 KTX 여승무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사간의 집중적인 교섭이 있었다. 여승무원들은 코레일의 요청에 따라 교섭 기간 내에 어떠한 단체 행동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또한 정규직이 아닌, 역무계약직으로 고용하겠다는 코레일의 제안을 수용했다. 이는 내부의 반발과 외부의 비난을 불렀다. 오미선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 교선부장은 "우리보다 더 오래 투쟁하는 곳도 있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노사는 합의를 이끌어냈고, 12월 14일엔 KTX, 새마을호 여승무원 80명을 채용하겠다는 내용의 합의서 조율도 끝냈다. 교섭장에 나온 코레일 쪽 관계자는 "건교부의 승인을 받았고, 사장에게 보고했다"고 했다. KTX 여승무원들은 내년부터 일을 하게 되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초 14일로 예정된 합의서 서명 날짜가 회사 쪽의 요구로 대선 이후인 21일로 미뤄졌고, 코레일은 24일 자회사인 KTX 관광레저(현 코레일 투어서비스)로 간 승무원과의 형평성을 내세우며 갑작스레 합의를 취소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내부에서 공론화 과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사 교섭 실무자들이 앞서 나간 것"이라고 발뺌했다.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자회사 정규직이 코레일 비정규직보다 낫다"며 승무원들을 설득한 코레일의 자기부정이다. 또한 역무계약직으로 고용하겠다고 먼저 제의한 건 코레일이었다. 안팎에서 "구차한 변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노조 쪽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형균 철도노조 교선실장은 "구체적으로 논의를 해왔던 것을 코레일이 일방적으로 깬 것으로 너무 무책임한 일"이라며 "문제 해결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의 신의조차 저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코레일의 입장 변화에 대해서 김 교선실장은 "대선 이후 이명박 당선자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KTX 여승무원인 문은효(26)씨는 "또 당한 것"이라고 말했고, 권수진(27)씨는 "말도 안 된다"고 따졌다. 28일 오후 천막에선 이들보다 이들의 어머니들이 합의가 깨진 것에 대해 더욱 화를 냈다.

 

한 KTX 여승무원의 어머니인 홍승희(58)씨는 "대선 때 애들을 조용히 시키려고 협상하는 척 한 것"이라며 "우리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우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60 평생 애를 키우면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하나부터 끝까지 다 거짓말"이라고 덧붙였다.

 

법원 "코레일이 KTX 여승무원의 사용자"... 여승무원 "힘을 실어준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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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KTX 여승무원의 천막농성장 안. 여승무원들과 이들의 어머니들이 모여 앉아 이철 사장을 성토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28일 오후 KTX 여승무원의 천막농성장 안. 여승무원들과 이들의 어머니들이 모여 앉아 이철 사장을 성토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그럼에도 KTX 여승무원들의 얼굴은 어둡지만은 않았다. 코레일이 민세원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을 상대로 불법 파업 등의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한 27일 판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은 민 지부장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하면서도, "코레일이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관계에서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앞서 노동부는 코레일과 KTX 여승무원의 관계에 대해 두 차례 조사를 벌여 모두 '적법 도급'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또한 지난달 16일엔 같은 법원에서 코레일이 간부급 KTX 여승무원 8명을 상대로 낸 같은 내용의 소송에서 "코레일이 여승무원에 대해 사용자성이 없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이번 27일 판결은 노동부의 조사와 지난달 16일 판결을 뒤집은 데 의미가 있다. 법원은 "KTX 여승무원과 한국철도유통의 근로계약은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어 "철도유통은 철도공사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이고, 코레일이 여승무원들의 업무수행 방법 등을 자세히 정했고, 채용 때도 코레일과 긴밀히 협의했다"고 지적했다.

 

KTX 여승무원들은 이에 대해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오미선 교선부장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정말 많은 기자들이 왔고, 많은 분들이 지지한다고 밝혀왔다, 힘이 난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도 우리의 편인 것 같다"며 "다른 판결도 유리하게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철도공사에서는 부담감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형균 철도노조 교선실장은 "법적 판단을 너무 기대하진 않는다"면서도 "투쟁의 정당성이 확인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코레일 쪽이 교섭을 일방적으로 깼지만, 승무원들의 승무원 복귀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새롭게 선출된 철도노조 집행부 역시 KTX 여승무원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08년 새해 KTX 여승무원들은 웃을 수 있을까?

 

하지만 코레일은 27일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사 공동으로 법적 판단을 구하는 중재를 신청하자"고 제안했다. 김형균 교선실장은 "법적 판단을 구하기 이전에 노사간에 합의하면 끝나는 상황"이라며 "이미 교섭이 상당히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선실장의 말대로 합의서까지 만들어진 상태다. KTX 여승무원은 많은 내부 반발과 외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코레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또한 코레일은 28일 올해 대규모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2007년 세밑, KTX 여승무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의 모든 조건이 준비됐다. 이철 코레일 사장의 사인만 남았다. 2008년 새해 여승무원들은 웃을 수 있을까? 이들이 웃지 못하면, 이철 사장도 기쁜 새해를 맞지는 못할 것이다.

2007.12.29 11:31 ⓒ 2007 OhmyNews
#KTX 여승무원 #KTX #코레일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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