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불의 심판 - 66회

조국의 부름 - 1

등록 2007.12.29 14:33수정 2007.12.2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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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조국의 부름

 

버뮤다 외인부대에 입대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갔다.

 

그 동안 둘은 시원스레 뻗은 교목(喬木)들이 울창한 험프리스의 숲길을 오르내리며 산악구보를 한 덕분에 강인한 체력을 가지게 되었고, 집중적인 사격훈련으로 말미암아 콜트와 M16이 마치 몸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물론 보리에스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솜씨였지만 그래도 서서히 버뮤다 외인부대원의 기틀이 잡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클 장의 자대 복귀가 있었고, 둘의 신원조회가 한국에서 회신되어 왔다. 

 

“강철민이 죽었다는군. 이젠 확실한 버뮤다 대원이 되는 수밖에 없어. 가 봐야 사형 내지는 무기징역이야.”

 

보리에스가 박수원과 똑같은 말을 하며 은근히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자마자 스탤론과 격투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그는 내심 둘의 탈영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모양이었다.

 

“오늘부턴 2단계 훈련에 돌입한다. 이미 중대장에게 들은 바와 같이 훈련기간 중 제일 험난한 코스다. 하지만 참고 이겨내길 바란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군기를 어기거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해서 여기 버뮤다엔 구타나 기합 따위는 없다. 강제 송환이라는 처벌만이 있다. 그렇다고 노심초사하지는 마라. 버뮤다 대원에겐 누구나 그런 핸디캡이 있다. 그래서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전우애가 남다르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나고 보면 알 것이다. 나 역시 볼리비아로 송환되면 사형에 처해질 목숨이다.”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보리에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쉽게 믿기지 않아 둘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럴까 의아했지만 막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 보리에스의 선도에 따라 둘은 부대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유격장까지 구보로 달려갔다.

 

유격장은 난이도를 달리하는 각각의 코스를 갖추고 있었다. PT훈련을 위한 소규모 연병장, 기초 장애물 코스, 레펠 코스, 줄타기 코스, 도하 코스, 막타워, 그리고 암벽 코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2단계 훈련은 유격이다. 유격은 체력과 정신력을 극대화하고 전투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주는 개인전술로서 적진에 침투할 때, 혹은 낙오되었을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사느냐 죽느냐는 얼마나 충실히 유격훈련을 했느냐에 달려 있다. 군인의 기본이 제식이라면 유격의 기본은 PT다.”

 

PT훈련장에서 보리에스가 둘을 세워 놓고 말했다. 그의 시범에 따라 둘은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PT를 익혔다. 점심식사는 부대에서 가져 온 시레이션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휴식 삼아 몇 개비의 담배를 피우고, 다시 PT 훈련에 들어갔다. 기온이 뚝 떨어져 버려 휴식시간을 다 찾다간 몸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PT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한 달이 넘게 단련된 몸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훈련이었다. 둘은 그 후로도 사흘이나 더 PT훈련을 받고 나서 코스를 타게 되었다.

 

기초 장애물 코스를 수월하게 통과한 둘은 가벼운 마음으로 레펠 코스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숫제 장난이 아니었다. PT로 몸을 풀고서 가뿐하게 11미터 높이의 구조물 위에 오르긴 했는데 난데없이 정신이 아뜩해지는 것이었다. 보리에스가 시범을 보인다고 레펠로 구조물에서 하강할 때는 무척 쉽게 보였는데 막상 자신들이 로프를 잡고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만 오금이 저려오는 것이었다.

 

“무섭나? 고소공포증이 있나? 그렇다면 버뮤다 대원이 될 수 없다. 고소공포증일랑 저 멀리 던져버리고 로프를 타고 하강하라. 떨어져도 죽기 밖에 더 하겠느냐!”

 

보리에스가 밑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둘은 저도 모르게 떨고 있는 자신들의 하체를 보자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사나이 체면에 이렇게 간이 작아서야, 둘은 애써 담담해 보이려고 오금에 힘을 불끈 넣었다. 그랬더니 아예 탄력을 받아 더더욱 후들거리는 것이었다.

 

“그것밖에 안 되나? 이런 겁쟁이들. 그럼 다시 뒤쪽으로 내려와!”

 

구조물의 뒤쪽은 오르기 쉽도록 경사가 져 있었다. 레펠로 하강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올라간 데로 다시 내려오라면서 보리에스가 빈정거렸다. 하지만 둘은 도저히 두 발을 수직으로 된 강하 절벽에 갖다놓을 수가 없어 창피함을 무릅쓰고 뒤쪽 경사면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유격 훈련은 시작되었다. 난생 처음 느껴본, 높이에 대한 공포는 결코 이성(理性)으로 제어하고 통제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듯이 남에게 떠밀리거나 강제에 의해서만이 극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보리에스는 윽박지르지 않았다. 

 

“우리 버뮤다는 여느 부대와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정규군과 달리 버뮤다는 게릴라 부대다. 즉 게릴라전을 위해 존재하는 부대란 말이다. 정규전은 대규모의 병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일사불란한 통제가 필요하지만 게릴라전은 통제나 명령이 아닌 대원 개개인의 판단에 의해서 전투가 수행되어진다. 다시 말해 정규전이 매스게임에 비견된다면 게릴라전은 스포츠 게임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버뮤다는 절대 강압적이거나 타율에 의한 훈련 따위는 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보리에스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인 버뮤다 대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그는 둘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시일이 흐르면서 둘은 높이에 대한 공포를 벗어 던지게 되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구조물 레펠은 물론 암벽 레펠마저 마스터할 수 있었다. 한 손만으로 로프를 잡고 마치 평지에서처럼 암벽을 달려서 하강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보리에스는 코스를 타면서 사격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자세에서도 사격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둘은 외줄에 매달려서도, 레펠이나 막타워로 하강하면서도 권총과 자동소총을 자유자재로 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코스를 오르내렸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3단계에 들어서서 공수훈련을 실시한 지도 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소형 수송기를 타고 공수훈련장이 있는 모하비 사막으로 이동하면서 원용철이 최대한 목청을 높여 보리에스에게 말했다. 기체 안은 귀가 다 먹먹할 정도로 엔진소리가 요란했다.

 

“뭔데?”

 

보리에스가 고개를 돌렸다.

 

“볼리비아에 돌아가면 사형이라니요?”

 

“내려가서 말해 주지.”

 

2007.12.29 14:33 ⓒ 2007 OhmyNews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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