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행복한 법이다!"

[요즘 읽은 책] <기자로 산다는 것>

등록 2007.12.29 15:26수정 2007.12.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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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산다는 것 . ⓒ 호미

▲ 기자로 산다는 것 . ⓒ 호미

올해 초였나요? 여론면 '취재노트' 마감하고 앉아 있었는데, 김주완 부장이 "병욱아!"하고 부릅디다. 책을 선물로 주더군요. 책표지가 온통 '빨간색'이었습니다.

 

혹시 '불온서적?' 심상치 않음은 책 들머리에 남긴 메모도 한 몫합니다.

 

"민병욱 후배님께…. 나는 왜 기자가 되었나? 나는 어떤 기자가 될 것인가? 생각하는 기자가 되길…. 김주완…."

 

이날 저녁, 시민사회부 회의 겸 회식 자리가 있었는데, 부원들에게도 같은 책(아마도 같은 메모가 있지 않았을까?)을 선물로 돌리더군요.

 

이 책의 효용성.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지난해 6월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 전횡 의혹을 다룬 경제면(3쪽) 기사를 금창태 사장이 인쇄 직전 단계에서 삭제. 2007년 1월 11일 시사저널 노조, 무기한 전면 파업돌입. 1월 22일 금창태 사장, 직장 폐쇄)를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덤으로 시사저널이 어떻게 굴러왔고, 어떤 사람이 거쳐 갔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현재 글을 쓴 사람들(진짜배기 <시사저널> 기자들)은 전부 <시사IN> 멤버로 거듭났지요. <시사IN>, 참 작고, 알차고, 예쁜 주간집니다).

 

<시사저널>에 몸담았거나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시사저널>이 걸어온 길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또 기자의 됨됨이도 짚고 있습니다. 그러니 김주완 부장이 책 앞쪽에서 '주문'한 것도 손쉽게 해결됩니다.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자꾸 책의 두께를 재게 되는…" 책이랄까요.

 

이 밖에 책 끄트머리에는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시사모)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고종석(소설가·칼럼니스트)씨가 쓴 글은 '시사저널 사태'를 차분하면서(아니 차분하기 때문에!)도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쟁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적한 편집권의 귀속문제는 편집권이 다른 신문보다 월등히 독립돼 있다는 <경남도민일보>에서도 곱씹어 볼만하지 싶습니다.

 

잠깐! 여기서 '기자의 기본자세'와 관련한 '책에서 뽑은 글'.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행복한 법이다. 기자가 설렁설렁 취재하고 기사 써 봐라. 그걸 읽는 독자는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낭패감만 들거야. 당신이 그렇게 고생해서 취재하고 쓴 기사라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거야."(125쪽)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한 필수조건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자기 자신이 철저하게 이해하는 일, 자신부터 납득하는 일이다. 독자에게 자기가 쓴 글의 뜻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는 작가들에 대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어려운 내용은 쉽게, 쉬운 내용은 재미있게, 재미있는 내용은 깊게.'(149쪽)

 

"기자는 질문할 자유만 있지 어떤 특권도 없다고 강조했다. 노숙자든 대통령이든 누구에게든 질문할 자유가 기자들의 특권의 전부이지, 다른 특권은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질문도 어깨에 힘 빼고 겸손하게 하라고 했다. 다른 언론사에 입사한 친구들은 선배들에게 경찰들과 한번씩 대거리한 것을 무용담처럼 들었다는데, 시사저널에서는 버려야 할 못된 습관으로 가르쳤다."(198쪽)

 

"취재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조건 첫 문장을 생각하라고 했다. 첫 문장이 완성되면 기사의 절반은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200쪽)

 

이런, 좀 늘어졌지요?

 

그나저나 <경남도민일보>도 곧 있으면 창간 10돌이 될 터인데, 이처럼 재미있게 엮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아, 제가 너무 앞서갔습니다. 그때는 그때 가서 고민할 일입니다.

당대의 문장가인 소설가 김훈도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시사저널> 식구들은 김훈을 여전히 '김국'이라 부른답니다. 김국, 참 정겹습니다.

 

헌데, 김훈과 관련해서는 충격적인 사실이 나옵니다.

 

'김국'이 1995년 "5·18 당시 언론이 얼마나 웃기는 보도 행태를 보였는지 되짚을 때가 됐다. 관련 내용을 취재하라"고 지시를 내리는데, 기사가 나간 뒤 폭탄선언을 합니다. <한국일보>의 신군부 찬양 기사를 자신이 썼다는 것! <한국일보> 기사의 바이라인(기사에 필자 이름을 넣는 일)은 '특별취재'으로 되어 있었답니다. 그래도 "김국은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고백한 몇 안 되는 언론인 중 한 사람"이라고 당시 김국의 취재 지시를 받았던 김은남 기자는 술회합니다.

 

책을 읽고 나니 저도 모르게 '시사저널 파업' 지지 세력이 돼 있더군요. "의식화 교재!" 맞습니다! 전염성, 엄청 강합니다. 잘 보고 있던 <한겨레21>을 끊고 지난 9월부터 <시사IN>을 정기구독하고 있습니다.


[덧붙임] 이문재씨도 시사저널 기자 출신인데, 그가 남긴 '기사 문장론'을 올려봅니다. 이 책 179쪽에 나와 있습니다.

 

오래 묵혔다가 하는 잔소리. 아래 기준은 전적으로 이문재의 주관에 따른 것이므로 국어학이나 저널리즘의 일반적 척도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함.

 

1) 질문형 문장을 자주 쓰지 말자: 질문은 글 쓰는 사람 스스로 해야 한다. 어떤 기사는 문단이 바뀔 때마다 질문형으로 시작하는데, 고급스럽지 못하다. 질문형 문장을 절제하라.

 

2) 가능하면 접속사를 쓰지 말자: 대표적인 것이 '따라서.' '따라서'도 '이와 관련'과 같은 맥락.

 

3) 은/는, 이/가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구해 보자: 지면이 허락되지 않아 설명을 미루지만, 은/는과 이/가는 세계관적 차이가 있는 조사다. 보라. 나는 학교에 간다와 내가 학교에 간다는 얼마나 다른가.

 

4) '그런데'와 '그러나'를 구분할 수 있다면: '그런데'와 '그러나'는 경계가 애매하다. 섬세하게 구사해야한다.

 

5) '...는 얘기다'라는 종결형: 구어체와 유행어, 신조어를 적극 수용하라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 그러나 상습적으로 쓰면 기사가 가벼워 보인다.

 

6) '...라는 것이 A의 주장(얘기)이다': 이럴 때 나는 'A는 ...라고 주장했다'라고 쓴다.

 

7) '...에 대한'이라는 것 역시: 의식하지 않고 자주 구사하는데, 이 표현도 줄여보자.

 

8) '실제로', '현재', '당시' 따위의 부사: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안 쓰거나 노출 빈도를 줄일 수 있다.

 

9) 간접화법: '...에 따르면'이라고 전제했는데도 그 문장의 종결어미가 '...라고 한다'거나 '...는 것이다'인 경우가 있다. 이문재에 따르면, 이 문재는 바보라고 한다→이문재에 따르면, 이문재는 바보다.


10) 라고 '말했다': 말했다. 덧붙였다. 힘주어 말했다. 강조했다.... 참 난감한 표현인데 나는 어느 날부터 '말했다'로 통일했다.


11) ...적인: '...적인'도 없을수록 좋다. 전문적인 연구 기관→전문 연구 기관.

 

12) ...하다: 이 불균형한 조동사 역시 자주 노출하지 말자. 밥을 했다→밥을 지었다. 기도를 했다→기도를 올렸다.

 

13) 아, 빼먹을 뻔한 '것': 이 '것'을 요리할 수 있다면, 대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것과 씨름해야, 것을 거의 박멸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남도민일보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2.29 15:2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경남도민일보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호미, 2014


#민병욱 #기자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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