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들에게 배우는 진짜 독서법

[책으로 읽는 세상 50]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에서 배우다

등록 2007.12.29 16:17수정 2007.12.2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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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학교 1학년 때, 교과서와 참고서, 그리고 온갖 문제집을 다 동원해서 공부를 했어도 국어 성적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아서 국어 선생님께 직접 여쭤본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거두절미하고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비결로 꼽으셨다. 국어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또 많이 생각해야 되는 것이지 참고서를 달달 외우고 문제집을 많이 푼다고 해서 되는 일이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삼다(三多)는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 평소 꾸준히 행해야 하는 세 가지 실천사항으로 옛 사람들이 손꼽았던 것이다. 그러니 다가오는 기말고사 국어 시험에서 재빨리 효과를 볼 수 있는 뭔가 특별한 비결을 기대했던 내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아직 어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책읽기에 취미를 붙이게 된 것이 그 무렵부터였으니 당시 국어 선생님의 말씀은 알게 모르게 내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나는 다작과 다상량은 어림도 없고 그저 다독만을 실천했던 것인데, 정말 그것만으로도 국어 성적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국어 과목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자신 있는 과목이 되었다.


하지만 독서가 어디 국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일이겠는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책읽기는 한 사람의 됨됨이를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삶까지도 좌우한다. 오늘날 누구나 공감할 이러한 독서의 중요성은 책 말고는 다른 배움의 수단이 거의 없었던 옛날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절실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옛 선비들의 저술이나 문집에서 책읽기에 대한 사유와 체험 등을 담은 글들만 가려 뽑아서 우리말로 깔끔하게 번역해 놓은 책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를 읽어보니 과연 그렇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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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 ⓒ 포럼

▲ 책표지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 ⓒ 포럼

이 책에 볼 것 같으면, 율곡 이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결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최한기는 "독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평생 해야 할 일이다"면서 "스스로 깨달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비록 보잘것없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근거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또한 허균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인 학자 안지추의 말을 빌어서 "독서는 비록 크게 성취한 것이 없다고 해도, 도리어 한 가지 기술이나 재주는 될 수 있으므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준다"라고 쓰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약용은 "독서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근본이다"라는 주자의 말을 두 아들에게 써 보내고 있다.


즉, 독서는 결국은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의 수단이 되기에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각인 것이다. 이처럼 이 책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간과하기 쉬운 질문인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러고 나면 '어떻게 독서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많은 궁리를 하지 않고도 아주 자연스럽게 얻어지게 된다. 단순히 지식을 넓히거나 소일거리 삼아 책을 읽는 것이 아니기에, 조선시대 옛 선비들이 말하고 있는 독서의 방법론 역시 진지하고 체계적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간추려서 그 방법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가) 우선 뜻을 세워라


독서를 하는 이치는 활을 쏘는 이치와 같다. 활을 쏘는 사람은 마음을 과녁에 집중해야 한다. 마음을 과녁에 집중시킨다면 비록 정확하게 맞추지 못한다 하더라도 화살이 그다지 멀리 날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서를 할 때 뜻을 세우는 일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고, 자신이 지향하는 것을 밝히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원전 : 이수광, <지봉유설> '학문(學問)'] (27쪽)


즉, 독서는 자신의 지향점을 세우는 일로써 그 출발을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할진대, 독서라고 다를 바가 있겠는가! 따라서 독서 또한 자기가 겨냥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데에는 많은 설명이 필요 없다.


(나)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대하라


이렇게 뜻을 세우고 난 뒤에는 닥치는 대로 마구 읽지 않고, 자신의 뜻에 맞는 책들을 잘 골라서 정성을 다해서 여러 번 거듭 읽는다. 이는 실제로 책을 손에 들고 읽어 나가는 단계인데, 이 책에는 이 단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글들이 가장 많이 실려 있다.


그런데 때로는 책을 대하는 옛 선비들의 마음과 정성이 너무 지나쳐서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여겨지는 것들도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보는 바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독서광이었던 이덕무가 남긴 다음 글이다.


책을 읽을 때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지 말라. 손톱으로 줄을 긋지도 말고, 책장을 접어 자신이 읽던 곳을 표시하지 말라. 책머리를 돌돌 말아서도 안 되고, 책 표면을 문지르거나 땀이 찬 손으로 책을 들고 읽지도 말라. 책을 베지도 말고 팔꿈치로 괴지도 말라. 술 항아리를 책으로 덮어서도 안 되고, 먼지를 털어 청소하는 곳에서는 책을 펴보지도 말라. 책을 보다가 졸아서 어깨 밑이나 다리 사이에 떨어져 접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책을 던지지 말고, 심지를 돋우거나 머리를 긁은 손가락으로는 책장을 넘길 생각도 하지 말라. 책장을 힘차게 넘기지 말고, 창문이나 벽에 책을 휘둘러 먼지를 떨지 말라. [원전 : 이덕무, <사소절> '교습(敎習)'] (52-53쪽)


연암 박지원 역시 책에 침이 튀는 것을 염려하여 “책 앞에서는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거나 침을 뱉지 말라. 만약 재채기가 나오면 고개를 돌려 책을 피한 다음 재채기를 하라”고 충고하고 있으니, 책을 사랑하다 못해 보물처럼 모시고 있는 듯한 옛 선비들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오늘날과는 달리 책이 몹시 귀하고 상하기 쉬운 값비싼 물품이었던 당시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이는 쉽게 이해가 된다. 이러한 태도에서 느껴지는 옛 선비들의 진지함은 쏟아지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아무렇게나, 함부로, 그리고 험하게 책을 다루곤 하는 우리의 모습을 오히려 돌아보게 만든다.


(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라


이런 정성스런 마음과 더불어 자주 나오고 있는 또 다른 조언은 같은 책을 최소한 수백 번은 읽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책이 품고 있는 참뜻을 마음 속 깊이 새길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옛 선비들은 수백 수천 번은 기본이고 수만 번이나 반복해서 같은 책을 읽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참으로 부지런한 독서가였던 김득신은 <사기>에 나오는 '백이전'을 무려 1억 1만3천 번이나 읽었다고 하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러한 반복 독서 역시 당시 읽을 책이 그리 많지 않았던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겠으나, 한번 읽은 책은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는 오늘날 우리의 독서 습관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릇 좋은 책이란 곁에 두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법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책을 놓아버리고 만다. 그래서 몇 달 아니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읽은 책의 내용을 벌써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책을 거듭 읽고 또 읽어서 그 참뜻을 마음 속 깊이 새겼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이 거기에 보태어지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온전한 것이 될 수 없다. 수 없이 읽은 책이라 입으로 줄줄 외운다고 해도, 그것은 보고들은 것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천박한 수준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록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기록하라


산 속의 좁은 길은 얼마간이라도 사용하면 길을 이루다가도, 또한 얼마간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며 잡초로 가득 차 버린다. 어찌 산 속의 좁은 길만 그렇겠는가? 학문을 하는 사람은 독서할 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을 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각이 있다면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을 하면 남고,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기록하고 다시 생각하고 해석하면, ‘앎과 깨달음’이 더욱 자라나서 말과 행동이 두루 통하게 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앎과 깨달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과 행동은 꽉 막히게 되어, 얻었다 해도 반드시 다시 잃게 마련이다. [원전 : 윤휴, <백호전서> '독서기에 붙여(讀書記序)'] (31쪽)


따라서 제대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고, 떠오른 생각들을 나중까지 자신의 것으로 간직하기 위하여 기록을 해두는 것이 좋다. 가장 좋기로는 그런 생각들을 모아 잘 정리하여 서평을 쓰는 것이겠지만 짤막하게나마 독후감을 적어 두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것도 어렵다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에 다가왔던 몇 구절만이라도 공책에 옮겨 적어놓는 것도 아쉬운 대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덕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대체로 글이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한 번 써보는 것이 백배 낫”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적어놓은 서평과 독후감 그리고 옮겨 적은 구절들은 나중에 언젠가 급하게 그 책을 참고해야 될 경우에 매우 유용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에 이르러서, 우리는 제대로 독서를 한다면 다독(多讀)이 결국은 다작(多作)과 다상량(多商量)으로 이어져서 하나로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 책에서 얻은 ‘앎’을 ‘실천’하라


그럼, 책을 읽는 과정 중에 하나로 만나게 되는 이 삼다(三多)를 통하여 우리가 새로운 앎과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걸로 독서는 끝인가? 조선시대 옛 선비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익은 “독서란 ‘앎’과 ‘실천’을 겸해서 한 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안정복 역시 “‘앎’과 ‘실천’의 두 가지는 학문과 독서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할 내용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먼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에 비유하자면, 독서는 여행할 길의 지도와 안내를 담은 노정기이고, 실천은 말을 먹이고 수레바퀴에 기름칠을 하고 또 노정기를 살펴 여행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은 달리지도 못하게 잡아 매놓고 수레는 손질만 해놓았을 뿐 몰지 않은 채 오로지 여행할 길의 지도와 안내를 담고 있는 노정기만 읽거나 토론하고 있다. 먼길을 가려고 하는 계획을 아무리 잘 세워도 끝내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전 : 홍대용, <담헌서> '철교에게 준 편지(與鐵橋書)'] (196쪽)


독서를 길의 지도와 안내를 담고 있는 노정기를 살펴보는 일에 비유하고 있는 것은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잘 알려진 노랫말만큼이나 진부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실은 대개는 진부한 것에 있는 깃들여있는 법. 책을 읽고 새로 배우게 된 ‘앎’이 ‘실천’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무익한 책읽기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책읽기는 무익하다 못해 해롭기까지도 할 터인데, 왜냐하면 아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악덕 중의 악덕이기 때문이다.


3.


이렇게 이 책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을 읽으면서 조선시대 옛 선비들의 독서법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다 보니 예나 지금이나 ‘독서에는 왕도가 없다’는 아주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짧은 시간을 투자해 재빨리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요령 좋고 손쉬운 독서법만 찾는 것 같다. 특히 대학 입시에 각 대학별 논술 시험이 새로 도입되면서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그런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조선시대에도 그런 경향이 적지 않게 있었던 모양이다. 출세하려면 과거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던 관리 등용 제도가 낳은 이 폐단에 대해서 유성룡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요즘 서울의 젊은이들은 마치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과 같아서, 오로지 빨리 성공에 접근하고, 속성으로 성공을 구하는 기술만 찾는다. 반면 옛 성현의 글이 담긴 책들은 높디높은 다락에 묶어 처박아 두고, 매일같이 영악하게 남의 비위나 맞추는 글을 찾는다. 그리고 그 말을 도둑질해 시험 감독관의 눈에 띄도록 글을 지어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원전 : 유성룡, <서애선생문집> '여러 아이들에게 보냄(寄諸兒)'] (211쪽)


내게는 이 말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벌어지는 요즘 세태를 꼬집는 말로 들려서 안타까웠다. 아니, 다른 사람들을 볼 것도 없이 당장 나 자신부터 그렇지 않은가! 이렇듯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는 어줍잖은 책읽기로 독서가를 자처하는 나를 찬찬히 돌아보게 만들었다. 책읽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

ㅇ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한정주∙엄윤숙 쓰고 엮음
ㅇ 포럼 펴냄
ㅇ 2007년 3월 21일 1판 1쇄
ㅇ 값 9800원

2007.12.29 16:1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

ㅇ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한정주∙엄윤숙 쓰고 엮음
ㅇ 포럼 펴냄
ㅇ 2007년 3월 21일 1판 1쇄
ㅇ 값 9800원

[POD]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 - 개정판

고전연구회 사암.한정주.엄윤숙 지음,
포럼, 2015


#조선 지식의 독서 노트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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