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도 반소매·반바지 입는 사나이

[인터뷰] 자전거 타는 기인 이창남씨 '나이는 진짜 숫자일 뿐'

등록 2007.12.29 16:32수정 2008.01.3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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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창남씨 ⓒ 이민선


한해가 저물어 가는 12월 28일 오후 2시, 경기도 안양천변 비산대교 밑에서 이창남(69)씨를 만났다. 만나자 마자 “춥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반바지에 반소매 차림이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여름에 주로 착용하는 복장이다.


“춥지 않아요. 영하 15도는 돼야 살갗이 좀 따갑다는 느낌이 들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창남씨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맨살을 만져봤다. 겨울바람 탓에 차가웠지만 떨리는 느낌은 없었다. 정말로 춥지 않은 듯했다. "선거운동 할 때는 솔직히 좀 춥지 않으셨어요"라고 다시 한번 물었다. 그는 지금과 같은 복장으로 대선과 함께 치러진 안양시장 재선거 당시 선거 운동원으로 활동했다.

“선거운동 할 때는 여름 날씨였어요. 하나도 춥지 않았어요. 피부가 태양열에 단련돼서 단단해 졌어요. 그래서 춥지 않아요. 선거 때 아마 사람들이 그저 추위를 참는 줄 알았을 거예요.”

한겨울, 다른 선거운동원들이 털옷에 목도리를 두르고 선거운동 할 때 이창남씨는 반바지에 반소매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로 춥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한겨울에 반소매 반바지 “진짜 춥지 않다”

“자전거는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타셨어요?”라고 물었다. 이것도 역시 궁금했던 터다. 그는 누가 봐도 자전거 마니아 모습이다.

“8년 정도 됐어요. 자전거 덕분에 새 생명을 얻었어요. 한 8년 전인가, 배가 아파서 병원 갔더니 위암이래요. 수술 받으라고 하더군요. 제 손으로 호스 빼고 중환자실에서 나왔어요. 허무하게 죽기는 싫더라구요. 저 세상 가도 깨끗하게 가자는 심정으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어요. 자전거 타고 산에 오르기 시작한 거죠.”

이씨는 이렇게 말하며 지금은 소주를 다섯 병 마셔도 끄떡없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등산을 하며 암도 이겨내고,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도 얻게 됐다는 것. 이씨가 한창 열심히 운동할 때는 자전거에 자동차 타이어 두 개씩 매달고 끌고 다녔다. 체력단련을 위해서다.

이씨의 근육은 단단했다. 주사바늘이 휘어진 적도 있다고 한다. 다리 근육을 손으로 눌러보니 차돌 같다. 체력도 대단하다. 45kg 물통을 등에 지고 마라톤 코스 10km를 뛰어서 완주 한 적도 있다. 체중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자전거 타기 전 이 씨 몸무게는 90kg이었지만 지금은 70kg이다. 69세라는 나이는 이씨에게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했다.

“건강해지려면 사실 산에서 자전거 타야 돼요. 도시는 이미 땅과 공기, 물이 다 죽었기 때문에 기를 받을 수 없어요. 그래서 30~40대들이 암으로 쓰러지는 것입니다. 산은 공기와 땅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기를 받을 수 있어요. 당뇨 같은 질병이 있는 사람, 저하고 두 달만 다니면  병 똑 떨어트릴 수 있어요.”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위암'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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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남(69세)씨 ⓒ 이민선

이씨는 이렇게 말하며 자전거를 활성화시켜서 자동차를 덜 타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전거도로 등 기반시설을 확충해서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자전거 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자전거를 타면서 가장 힘든 점은 도로문제라고 말했다.

“차들이 자전거를 인정 안 해요. 차로 자전거를 밀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요즘 야광 띠를 착용하고 호루라기 불면서 일부러 도로만 다녀요. 자전거를 보호해 달라고 일종의 항의를 하는 거죠.”

자전거 전용도로가 필요하다는 것은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것이다. 이씨도 그 문제에 공감을 표시했다. 아울러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안전교육을 실시해야 하며 안전 복장 갖추고 자전거 타는 것을 제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자동차만 타고 다니는 것은 문제입니다.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고 건강에 좋은 자전거를 많이 타야 합니다. 자전거를 타면 나처럼 암도 이겨 낼 수 있어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자전거도로 만들어야 하고 자동차 안전교육 하듯 자전거 안적 교육도 해야 합니다.”

야광 띠 매고 호루라기 불며 도로 주행

약 8km 정도 거리를 함께 자전거를 타며 대화를 나눴다. 내가 탄 자전거는 흔히 볼 수 있는 산악용 자전거(MTB)고 그가 탄 자전거는 선수들이 타는 사이클이다. 안장이 없는 것이 특이했다. 이씨는 이 자전거를 타고 부산까지 약 550km 거리를 20시간만에 주파했다고 한다.

특이한 모양에 이끌려 호기심에 한번 올라탔지만 좀처럼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바퀴 폭이 좁은 데다가 안장이 없으니 도무지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그는 자전거를 여러 대 소유하고 있고, 그 중에는 3인용 자전거도 있다고 한다. 그 자전거는 부인과 손자, 이씨가 함께 자전거를 탈 때 이용된다. 노 부부와 어린 손자가 함께 자전거 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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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남씨 건강음료 '포도주' 자전거에 늘 싣고 다닌다. ⓒ 이민선


이씨가 자전거를 탈 때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포도주다. 지치지 않고 운동하기 위해 그는 포도주를 즐겨 마신다. 이씨에게 포도주는 건강 음료인 셈이다. 태극기도 필수품이다. 자전거에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외국 이민 생활을 할 때부터 몸에 항상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15년간 남미 브라질 등에서 이민 생활을 하다가 10년 전에 귀국했다.

그는 지금도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생활인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농수산물시장에서 오전 시간에 열심히 일한다. 그는 농수산물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나를 때 쓰는 이륜거를 제작해서 판매하고 있다. 토요일, 일요일은 천금을 줘도 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건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창남씨와 만남은 ‘설렘’ 그 자체였다. 한겨울에 반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볼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그의 인생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만나고 난 이후도 두근거린다. 기회가 되면 자전거를 함께 타기로 약속했다. 그에 비하면 허약하기만 한 체력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릴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고수의 넒은 마음으로 배려해 주리라 생각된다.

그를 ‘자전거 타는 기인’이라 비망록에 기록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이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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