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서 사육당하다 죽을 순 없어요"

한 뇌성마비 장애인의 눈물겨운 '거주권' 투쟁기

등록 2007.12.30 12:25수정 2007.12.3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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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 한규선씨. 그는 1월 초부터 이동권 확보를 위해 서울 양천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 장윤선


"저는 김포 석암 베데스타 요양원에 살고 있는 장애인입니다. (요양원이) 시설 이전을 추진하고 있어요. 새로 갈 곳은 우리가 쉽게 이동할 수 없는 곳입니다. 시설에 사람 맡겨놓고 1년에 두세번 찾아오는 가족은 거리가 멀어지면 더 안 올 거예요. 차 있는 보호자는 그나마 낫겠지만, 차 없는 보호자는 버스 타고 또 택시까지 타야하는 그 곳에 아예 안 올지 몰라요. 사람구경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우리가 유배생활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뇌성마비 1급 중증장애인 한규선(48)씨. 컴퓨터 마우스를 한번 찍을 때마다 그의 몸 전체가 여러 번 요동쳤다. 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터라 핸드폰 전화 한 통 받기도 쉽지 않은 한씨. 한 가지 동작을 하기 위해서도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지난 11월 18일 그는 보건복지부 국민자유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20년째 살고 있는 석암 베데스타 요양원(김포 양촌면 소재)이 이전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인데 정부가 이걸 좀 막아달라는 간청이다.

"요양원은 생활인과 시설종사자들에게 특별한 설명 없이 시설 이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전할 곳은 민가도 없고 이동권 확보도 되지 않는 곳입니다.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생활인 대부분이 이전반대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요양원 측이 서명받은 서류를 압수하고 무위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불편한 몸으로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지만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한 생활인은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고 시력도 점점 잃어가고 있으니 이 곳에서 외출이라도 자유롭게 하고 싶다고 말해 여러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습니다."

한씨는 요양원에서 벌어진 사건을 생생한 글로 전달했다. 117명의 생활인 대다수가 인지능력이 없는 상태라 그나마 의사표현이 가능한 15명에게 직접 '이전반대' 서명을 받았으나, 요양원측이 이를 압수했다고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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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선씨가 외출부에 서명을 하고 있다. ⓒ 장윤선


생활인들의 요양원 시설 이전반대... 양천구청은 논의 중?


지난 27일 오후 석암 베데스타 요양원 인근에서 한규선씨와 만났다. 그의 휠체어를 밀던 사회복지사는 "규선씨가 목을 빼고 기다렸다"며 "오늘도 오후가 되니까 약속이 미뤄진 모양이라고 실망하는 눈치였는데 잘 됐다"고 취재진을 반겼다.

한규선씨도 사회복지사 사무실에서 생활인 외출부에 서명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외부 인적이 드문 장애인시설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는 그로서는 누군가와 더불어 외출한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제가 여기서 20년을 살았어요. 20년간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불과 5개월 전까지만 해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생활인 외출이 금지됐었어요. 사실상의 감금상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학수고대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요. 아무도 우리를 위해 노력해주지 않으니 이제는 우리 스스로 권리를 쟁취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규선씨는 '요양원 이전반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와 국무총리 비서실,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국가인권위원회, 서울시와 양천구청에 제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만 '조사해보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을 뿐, 모조리 '양천구청'으로 위임했다. 양천구청은 '논의 중'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요양원은 우리에게 이전해야하는 분명한 사유를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리 가라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야 할 장애인들이 '왜?'라며 반발하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에요. 장애인도 사람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터전을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먹고 자고 입는 것만 해결된다고 해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그의 눈에 핏발이 솟구치며 이슬이 맺혔다. 가슴에 맺힌 억울한 사연은 더 많지만 말로 다 할 수 없음에 분통해 하는 것 같았다.

'묻지 마 이전' 추진하더니, 반대 서명도 폐기

말 속에 비탄을 섞어 분루를 삼키던 그가 '요양원 이전' 소식을 접한 건 매우 우연한 기회였다.

"지난 10월 경 병원에 다녀오다 같은 재단에 속해 있는 노인요양시설에 들를 기회가 있었어요. 그 안쪽에 공사하는 데가 있어 여기에 뭐가 들어서는 것이냐고 물으니 우리 요양원이 이전할 부지라는 거예요."

한씨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하겠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는데 생활인들에게 아무런 의사도 묻지 않고 멋대로 추진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결정하면 무조건 따라야 했던 '5공화국' 시절인가 자문하기도 했다.

한규선씨가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인지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의견까지도 무시했다는 점이다. 문제의식을 느낀 한씨가 직접 나서 서명을 받았지만 요양원 측은 이를 묵살했다고 전했다.   

"부원장 A씨는 '이전찬성' 서명을 받으러 다니면서 '이전반대' 입장을 밝힌 생활인들의 손을 억지로 끌어다 지장을 찍게 했어요. 또 실행하지도 않을 여러 정책을 내놓으며 서명을 종용했습니다. 그 때 억지로 도로 '이전찬성'에 서명한 사람은 7~8명입니다. 제가 받은 반대서명 서류는 요양원 측이 임의 폐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요?"

이전반대 서명용지는 요양원 측에 의해 임의 폐기된 반면, 요양원 측이 억지로 받아낸 '이전 찬성' 서명은 정부기관에 '참고자료'로 제출됐을 게 뻔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그는 강제 손도장이 찍힌 '이전 찬성' 서류를 '진정한 의견'으로 볼 수 없는데도 이걸 정부당국이 조사하지 않는다는 점에 분노했다. 

"20년째 바깥세상 변한 것 모르고 사는 장애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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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앞 도로. 매우 비좁다. 대중교통은 다니지 않는 지역이다. ⓒ 장윤선

실제 한규선씨와 동행해본 새 이전부지는 대중교통이 없는 시골마을이었다. 차가 없으면 도시와 단절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인근 공장들 때문에 화물용 트럭이 쉼 없이 운행 중이었으며 도로는 차도와 인도 구분이 없는 작은 소로였다.

'목장 길'로 이름 붙은 이 곳은 한씨의 말대로 소나 돼지를 기르는 축사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길 건너편에는 공장들이 줄지어 있었고 뙈기밭에서는 서리 맞은 빨간 고추들이 비틀린 채로 말라 죽어 있었다.     

"7년 전에 와보고 그 때 병원 갔다오다 들러본 이 곳은 그 때와 전혀 다를 바 없었어요. 소똥 냄새가 진동하는 목장과 공장들만 있고, 대중교통이 전혀 닿지 않아요. 여기서 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사회격리예요. 사람은 사육 당하는 동물이 아니잖아요."

한동안 힘겹게 말하던 그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장애복지의 궁극적인 목적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입니다. 자기들 멋대로 관리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무덤으로 몰아넣고 있는 거지요. 20년간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한 채 이 안에서만 살고 있는 생활인들은 아직도 80년대 초반 무시무시한 세상으로 알고 있어요.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깡촌에 갇혀 그렇게 사육 당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규선씨의 소망은 간절했다.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직접 거리로 나가 무엇이 문제인지 차근차근 다 말하겠다고 목줄기를 힘껏 세웠다.

"저 혼자라도 투쟁하겠습니다. 끝까지 투쟁할 거예요. 일단 신년 초에는 양천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일 거예요. 계속 문제제기 할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때까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알 때까지 노력해야지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면 그 시설 안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한 요양원 종사자는 "5개의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이 재단은 김포 양촌면 양곡리가 신도시로 지정되면서 땅값이 오르자 이곳을 팔고 차익을 챙긴 뒤 땅값이 더 싼 지역에 시설을 이전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정부기관은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양원 원장 "주변이 신도시로 수용돼 이전하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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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요양원이 이전할 부지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 장윤선


이에 대해 제복만 베데스타 요양원 원장은 "서울시와 국가 모두가 인정해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 시설을 제외한 주변 시설이 모두 신도시로 수용돼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지면 살 수가 없어 이전하려는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제 원장은 "서울시 복지재단의 현장조사를 토대로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기능보강 신청(이전)을 받아들여 추진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면서 "신도시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동안 주변이 먼지구덩이가 될텐데 이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공사기간 동안에만 피해있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며 "전임 원장 때 이미 다 설명해주고 이전을 해야 한다고 피력해왔는데 생활인들이 그런 소리를 못 들었다고 주장하길래 다시 설명을 해주었고 전체 중 일부인 7명만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의견에 따라 이전을 준비 중이다"고 주장했다.

제 원장은 특히 "시설 이전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룹홈을 원한다고 하는데 그들은 시설 내부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소수의 인권만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86년 1월 설립된 석암재단 베데스타 요양원은 중증장애인들에게 개별 특수서비스와 집단활동 프로그램 등 종합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자립능력을 키워 사회적응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장애인 재활자립과 복지증진 역할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장애인 이동권 #사회복지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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