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 타면 찾던 '메리야스집'

[30년 부평지킴이 3] 속옷가게 ‘BYC고려마트'

등록 2007.12.29 20:19수정 2007.12.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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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제법 추워졌다. 날이 추워지면 어머니는 장롱 속 깊이 모셔둔 내복을 찾아 입혀 주곤 했다. 한때는 내복이 입기 싫어 도망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추운 겨울 생각나는 게 바로 내복이 아닐까 싶다. 명절 때 꼭 사 가지고 내려가야 했던 '에어 메리야스'는 지금도 겨울 인기 품목이다.


이제 ‘메리야스’라고 하는 사람보다 속옷, 언더웨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메리야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국어사전에는 ‘[명사]<수공>면사나 모사로 신축성이 있고 촘촘하게 짠 천. 속옷, 장갑 따위를 만드는 데에 쓴다’라고 돼 있다. 백과사전에는 ‘메리야스라는 말의 어원은 에스파냐어 메디아스(medias) 또는 포르투갈어인 메이아스(meias)에서 유래 됐는데, 이는 영어에서 양말이라는 뜻의 호스(hose) 또는 호저리(hosiery)에 해당된다.

한때 메리야스를 막대소(莫大小)라고도 불렀던 이유는 메리야스가 신축성이 커서 착용 상 크고 작은 치수에 구애되지 않는 옷이라는 뜻에서였다. 한국에는 20세기 초에 전래됐다고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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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C고려마트 이동기 사장 이동기 사장은 아버지로 부터 속옷 가게일을 물려 받아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 가게를 비우는 날이면 아버지께 한 소릴 들어야 한다고 한다. ⓒ 김갑봉


부평사람들이 첫 월급을 타면 누구나 한 번쯤 들렀을 가게. 부모님께 혹은 친척들에게 굳이 빨간 내복은 아니더라도 메리야스 몇 벌쯤은 장만해 갔던 곳. 부평 문화의거리라는 말이 있기도 훨씬 전 ‘부평 메리야스집’으로 통했던 곳이 바로 문화의거리에 있는 비와이씨(BYC)고려마트(사장 이동기·37)다.

고려마트가 문을 연 것은 60년대 초. 이동기 사장의 아버지인 이형묵(80) 선생이 ‘고려상회’라는 이름의 속옷가게를 지금 자리에 문을 열었다. 함경북도 단천이 고향인 이형묵 선생은 인천 부평에 정착해 이 일을 시작했고, 1994년 이 사장이 이 일을 물려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60년대 초 이 선생이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부평시장이 워낙 커 부평뿐 아니라 부천·계양·강화 일대의 사람들이 장을 보기 위해 부평시장을 찾아 고려상회는 장날만 되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당시 이 선생과 같이 고려상회를 이끌었던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는데 그는 이 사장의 외삼촌인 나명균(66)씨로 지금 인접한 깡시장에서 ‘단골상회’라는 이름으로 속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태어난 곳이 현 가게이기도 한 이 사장은 94년, 대를 이어 이 일을 시작하기 전 아버지의 권유로 1년 동안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출퇴근하며 장사를 배웠다. 이만저만 깐깐하지 않은 성품을 지닌 아버지는 자식이 이 일을 하려면 강단이 있어야 한다며 미래의 이 사장을 새벽시장으로 몰았다. 직장 생활을 하던 자식이 장사를 한다고 하자 고된 훈련부터 시켰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가게에 들르는 이형묵 선생은 이 사장에게 “장사꾼이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한눈팔지 마라”며 “다른 것은 몰라도 절대 장사꾼이 가게를 비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인이 몇 십 년 동안 지켜온 원칙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94년부터 이 사장이 도맡아 해왔으니, 무려 14년째. 이동기 사장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셈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문만 남기면 되는 게 장사꾼이지만 이 사장은 고집을 피운다. 소비자에게 거짓을 팔 수는 없다고 말하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게 있는데, 속옷을 사면 보통 중국산은 천원 내외다. 헌데 가격은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적혀 있다. 누가 봐도 엄청나게 할인해주는 것이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입이 절로 벌어지게 돼 있는 셈인데, 이거야 말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꼴이다.”

이 사장은 “판매가격을 정상가보다 일부러 높게 책정해 놓고 마치 대폭 할인해주는 양 소비자를 속이는 것”이라며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 가게에도 그런 제품들이 있긴 있지만 나는 그렇게 팔지 못한다"면서 "우리 매장에 비와이씨 본사 직원이 함께 일을 하는데 나는 비와이씨 본사에 제발 그런 일은 하지 말자고 누누이 얘기한다"고 덧붙였다.

정상가를 주고 산 제품은 그만큼의 가치를 발휘한다고 말하는 이 사장. 그는 국내 속옷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품질의 제품이 나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개성공단이 커져야 한다고 말한다. 봉제공장이 많이 사라져 대부분 중국산이 이를 대체하고 있는데 가격 경쟁력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소매상인 자기가 봐도 지났다고 말한다.

장사꾼 이 사장에게도 바람은 있다. 부평하면 문화의거리, 문화의거리하면 비와이씨가 생각나도록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한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문화의거리를 지켜가는 파수꾼이 되겠다고 말하는 이 사장. 언젠가는 이곳 터줏대감이 되고자 하는 그의 정직함이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려상회 #30년 부평지킴이 #이동기 사장 #부평 문화의거리 #BYC고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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