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의 철새들은 인류에게 평화를 가르치려 왔다

노자의 '무위자연'의 거울로 우리를 돌아보자

등록 2007.12.30 15:45수정 2007.12.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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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바다처럼 넓은 철원의 평야에,두루미(학), 기러기, 독수리 등 겨울 철새 떼들이 수 천, 수 만 마리가 날아 온다.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기계로 수확하여 떨어진 벼의 낙곡들을 먹으려고 온다. 독수리에게는 죽은 소와 돼지의 시체를 먹이로 준다. 나는 20여 차례 새벽 집을 떠나 해가 뜰 무렵에 철원군 동송읍 들판과 민통선 안 철새 도래지를 들어가는 기회를 얻어 주로 두루미와 기러기의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동송읍 들판은 수리시설이 완비되고, 포장까지 잘 된 차도의 농로가 사방으로 직선 2~3km 씩 뻗어 있다. 946.9m 높이 솟은 동송읍 뒤의 웅장한 금학산 줄기를 멀리 바라보며, 동서남북 마음내키는 방향으로 산책을 하면, 가슴이 후련하고 내 생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다. 기러기 떼들이 철원의 하늘이 좁다하고 수 백, 수 천 마리씩 아침 햇살에 날개를 퍼득이며 자유로이 날아 다니는 것을 보면, 살아있는 생명의 희열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기러기 떼들은  하늘 여기 저기에 수 십 마리, 수 백 마리, 때로는 수 천 마리가 떼를 짓고, 줄을 지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자유롭게 난다. 아무리 자세하게 관찰하여도 통제하는 자가 없다. 일정한 길잡이도 없다. 맨 앞장 선 놈이 중간으로 쳐지기도 하고, 맨 뒤에 있던 놈이 맨 앞 길잡이가 되기고 한다.

 

어느 놈은 혼자서 무리를 떠나 한참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다가, 외롭고 불안한지 무리 쪽으로 열심히 날아와 합류한다. 통제가 없는 자율이랄까, 질서가 없는 듯하면서도 집단적인 질서가 있다. 까치나 까마귀는 집단으로 이동할 때 결코 줄을 서는 일이 없다. 기러기 안, 줄 행, 두 자를 연결하여 안행이란 단어가 생겨 났다. 의가 좋은 형제나 친구나 부부 간에 쓰는 말이다. 그러나 통제가 아닌 자율에 의미가 있다.  

 

동송읍 양지리에서 삽슬봉(아이스크림고지-219m), 하갈저수지, 샘통을 지나 철원읍 노동당사 사이에는 두루미, 재두루미가 제일 많이 오는 곳이다. 생통은 겨울에도 C14.5의 더운 물이 솟아 철새들이 마실 수 있다. 두루미는 대개 3, 4 마리씩 어미와 새끼가 핵가족으로 논에 내려와 천천히 여유있게 먹이를 먹는다.

 

한 곳에서 몇 시간씩 지내며 바쁘거나 서두르는 기색은 전혀 없다. 때로는 10여 마리, 때로는 30~40 마리가 떼지어 먹이를 먹다가 날아 가기도 한다. 두루미는 키가 140cm 정도여서 두 날개를 힘차게 펴고 날아 오를 때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듯 크게 보인다. 사람들은 학이 좋아서 가까이 다가가나, 100여m만 되는 거리에서도 사람을 피하여 달아난다. 저보다 강한 자와는 싸우지 않고 자리를 비켜 주어 위험을 모면하는 듯하다.

 

이 철원 평야는 철의 삼가지라 불리는 곡창지대다. 동족상쟁의 전쟁이 있기 전에는 들판 여기 저기에 야트막한 동산 기슭에 수 백 개의 마을에서 농민들은 평화롭게 살았다. 그 마을들이 전쟁의 포화로 잿더미가 되고, 지금은 농사철에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려 드나들고 겨울에는 완전한 무인지대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이 싸움박질로 비어있는 땅에 두루미 떼들이 찾아와 먹이를 먹다 봄이 되면 먼 시베리아로 날아 가는 것이다.

 

새와 인간-철새들은 생명의 살아가는 원리 대로 산다. 서로 함께 먹이를 먹고, 줄지어 날아 가고,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느리게 아주 느긋하게 하루 해를 보낸다. 당장의 먹을 것만 있으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새들은 단 한 평의 땅도 소유할 줄 모른다. 먹이를 얻다가, 제 새끼를 지키려고, 제 짝울 차지하려고 토닥거리다 그만 둔다. 욕심 많은 사람이 다가가면 피한다.

 

인간은 너무 욕심이 많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다. 원시 시대에는 인간도 새처럼 욕심이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문명화되면서 점점 욕심이 많아지고,  마음씨는 동물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이고 악랄하게 변질된 것이 아닐까?

 

전쟁을 일으켜 수 백 만 명을 죽이고, 지구의 한 곳에서는 수 백 만 명이 굶어 죽는 데도 세계적인 부자는 제 가족만 호의호식하며 제가 가장 문명인인 줄 착각하고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들, 자신이 가장 진화한 문명인인 줄 착각하는 자들이야 말로 새보다 못난 야만인이 아닐까?

 

고대 중국의 현인, 노자는 '무위자연의 도'를 말했다. 현대인들은 새들이 '무위자연의 도'를 생활하며 생명의 희열을 보여주는 이 철원의 들판에서, 현대 문명의 방향을 새로이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하고,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많은 정보와 지식이 있으면 있을수록, 행복지수는 떨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철원의 하늘에는 오늘도 느리게 느리게 바쁠 것도 없이 철새들이 날아다니며, 인류에게 교훈을 주는 듯하다. 북진 통일이나 적화 통일이나 다 어리석은 불장난이었다. 반 세기가 넘게 미련하게 지내온 역사를 청산하고, 남북이 평화 선언을 하여, 이산가족이 함께 살고, 3 천리 강산의 전쟁의 상처인 철조망, 지뢰밭을 걷어내고 한 가족이 되어 평화롭게 살아라.

2007.12.30 15:45 ⓒ 2007 OhmyNews
#철원의 철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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