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담긴 다이어리야, 내년에도 부탁해!

다이어리 달력과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등록 2007.12.30 15:07수정 2007.12.3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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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레면 새해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다이어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I 회사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다이어리’가 수차례 인기 키워드 1위를 차지한다. 연말을 맞이한 상점에서는 상품과 함께 다이어리를 부록으로 끼워준다. 각종 서점과 팬시점은 다이어리를 사러 온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거린다. 최근에는 이런 상황을 반영해서 실용성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뛰어난 다이어리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나도 다가오는 2008년을 준비하면서 새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이제 나와 함께 1년을 보낸 2007년도 다이어리는 옛날 다이어리들과 함께 조용히 책꽂이에 꽂히는 신세가 됐다. 2007년도 다이어리를 꽂기 전, 정든 친구를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찬찬히 살펴봤다. 너무 자주 펼친 탓에 책등이 찢어져 테이프로 봉한 자국이 더욱 정이 가는 다이어리였다. 다이어리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는 어느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기억 속을 더듬어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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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쌓여가는 다이어리들 다이어리는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 이지수

▲ 해마다 쌓여가는 다이어리들 다이어리는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 이지수

 

나와 함께하는 ‘친구’같은 달력
 
나는 다이어리를 무척 좋아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에 하루에 최소 5번은 다이어리를 펼쳐 본다.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친구와 만나기 전 카페에서 혼자 있을 때면 다이어리 달력에 메모를 한다. 달력에 무언가를 적고 있자면 혼자여도 심심하지 않다. 약속이나 할 일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별로 없다.

 

내게 다이어리 달력은 다른 일반 달력보다 소중하고 특별하다. 나는 집에서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대학생이다. 집에 있는 달력보다는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니는 다이어리 달력을 훨씬 자주 본다. 그래서 방문에 걸려 있는 달력은 그야말로 아무도 봐주지 않는 찬밥 신세다. 하지만 다이어리는 어딜 가든지 나와 함께하는 ‘친구’같은 달력이다.  

 

유치했지만 순수했던 1997년으로 돌아가다

 

사실 다이어리는 그 자체만으로 특별하진 않다. 다이어리 달력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새 다이어리는 시중에서 파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달력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다이어리는 어떤 사람에게 아주 의미 있는 물건이 된다.  
 
다이어리 달력에 적어놓은 메모를 보면, 그날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떠오르곤 한다. 특정한 해에 썼던 다이어리 달력을 펼쳐 읽다 보면, 잊혀졌던 추억들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내가 썼던 가장 오래된 다이어리로 10년 전 다이어리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따라 미국으로 가면서 쓴 것이다. 만화책을 사면서 부록으로 받은 1997년도 다이어리 표지에는 친구가 선물한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다. 5월의 달력에도 스티커와 그림이 가득하다. 달력에는 서커스를 보러간 날, 가족끼리 소풍간 날 등의 일과와 느낀 점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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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도 다이어리의 5월 달력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에서의 생활과 느낀 점이 적혀 있다. ⓒ 이지수

▲ 1997년도 다이어리의 5월 달력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에서의 생활과 느낀 점이 적혀 있다. ⓒ 이지수

 

메모와 그림을 보면서,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달력 아래에 그려진 그림은 5월 8일 날 미국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철봉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재주를 부리고 싶어 연습을 하다가 실수로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옆에서 놀던 친구들이 엎드려 있는 나를 보고 달려왔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괜찮은지 물었지만 나는 문제없다고 했다. 뒤늦게 나를 발견한 다른 친구들도 내 얼굴을 보면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교실 앞 창문으로 갔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내가 봐도 무서운 모습이었다. 
 
다이어리를 읽어보니 유치한 문구에 부끄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10년 전의 나는 어른이 된 지금의 나와 너무도 다르구나 싶다. 시간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아쉬움과 씁쓸함을 뒤로 하고 1997년도 다이어리를 덮었다.

 

가장 바빴던, 가장 열정적이었던 2006년의 기억 

 

떠나보낸 해 중에서 내가 가장 바빴던 때를 꼽자면 2006년, 대학교 1학년이었을 때다. 힘겨운 3년을 마치고,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생활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2006년도 다이어리는 학교에서 나눠주었던 다이어리다. 5월의 달력에는 동아리 활동하랴, 학교 행사에 참여하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 흔적이 남아 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의미 있는 날들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일들을 생각하면 뿌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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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다이어리의 5월 달력 동아리 활동하랴, 학교 행사에 참여하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 흔적이 남아있다. ⓒ 이지수

▲ 2006년도 다이어리의 5월 달력 동아리 활동하랴, 학교 행사에 참여하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 흔적이 남아있다. ⓒ 이지수


사랑을 지켜주는 다이어리, 그리고 사연

 

2006년도 다이어리의 7월 달력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는 부분이 있다. 대학교에서의 낭만이 시작된 것은 1학년 7월 때였다. 같은 과에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26일에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나는 이날 그 친구에게 고백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동아리 모임에서, 그 친구도 그날 고백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다른 친구에게서 전해 듣게 되었다. 나는 다이어리에 D-Day를 적어놓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우습지만 서로 마음을 알면서 모르는 척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그 날, 남자친구의 고백으로 사랑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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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다이어리의 7월 달력 대학교에서의 낭만이 시작된 7월의 달력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진다. ⓒ 이지수

▲ 2006년도 다이어리의 7월 달력 대학교에서의 낭만이 시작된 7월의 달력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진다. ⓒ 이지수

 

다이어리 달력은 그 와중에 사랑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역할을 했다. 2달 뒤 남자친구의 생일을 맞이하여 나는 남자친구에게 감동적인 선물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유리병 편지를 쓰기로 했다. 유리병 안에 들어가는 자그마한 50개의 두루마리에는 5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적기로 했다.

 

시작은 좋았지만, 50일 동안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부 적는 것은 꽤 어려웠다. 하지만 다이어리 달력에 적힌 메모 덕분에 하루하루를 기억해 냈고, 결국 유리병에 50일의 기록이 담긴 두루마리를 무사히 채울 수 있었다. 다이어리 달력이 아니었다면, 나는 남자친구에게 이런 감동적인 선물을 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친구와의 500일이 지났다. 예전에는 둘만의 기념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둘 다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이어리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기념일 날 무엇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예전에 둘 다 400일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기억해내려 애썼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다이어리 달력을 펼쳐 보았고, 남자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 줄 수 있었다.

 

2006년도 다이어리 달력에는 평생 간직하고 싶은 열정이 담겨 있다. 달력을 보면 예쁘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한 해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작년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며,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풋풋함을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2007년도 다이어리야, 그동안 고마웠어

 

2008년도 다이어리를 구매하기 위해 어느 팬시점에 들렀다. 디자인이 예쁜 다이어리는 대체로 만원에서 2만원 사이로 꽤 비싼 편이지만, 다이어리의 소중함을 알기에 큰 맘 먹고 구입했다. 2008년도 다이어리 달력에는 어떤 메모가 쓰여질까, 벌써부터 잔뜩 기대가 된다.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이제는 하루 전의 일도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이어리 달력은,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2007년도 다이어리를 책꽂이에 꽂으면서, 1년간 함께해 온 고마운 다이어리를 꼭 품에 안아본다.

덧붙이는 글 | <2008년 달력이야기>응모글

2007.12.30 15:0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2008년 달력이야기>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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