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오락 예능 프로그램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2007년 의미와 2008년 오락예능프로의 과제

등록 2007.12.30 14:48수정 2007.12.3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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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출연하고 있는 한 문화 프로그램에서 ‘무한도전 신드롬’을 다루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때 담당 피디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토를 달았다. "도대체 ‘무한도전’이 왜 인기 있는지 모르겠다." 뒤이어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방송에서 뭐 하는 짓인지...' 라며 혀를 찼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왜 그런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셈이다.

 

남편을 먼저 보내야 했던 어느 여성은 일곱 살 난 딸아이와 함께 집에서 그나마 재밌게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라고 말했다. <무한도전>이 왜 재미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이들에게도 수수께끼였다. 한 해 동안, 한편에서는 <무한도전>을 못마땅해 하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무한도전>에 열광했다.

 

2007년 오락 예능 프로그램의 최대 화두이며, 가장 큰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는 <무한도전>의 인기 비결이었다. <무한도전>은 요즘 오락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이 10%만 넘어도 방송 프로그램이 대박이라는데, 근래 보기 드물게 20%대의 시청률을 유지했다. 본 방송뿐만 아니라 각종 케이블을 통해 일주일 동안 100시간, 90회 정도 방송된다는 통계도 있었다. <무한도전>은 시청률의 판도뿐 아니라 사회적 트렌드도 좌우하는 모양새였다. 또한 많은 오락 예능 프로그램의 변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무한도전>의 인기원인과 기존 오락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에 대해서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흔히 <무한도전>을 ‘리얼 버라이어티쇼’라고 말한다. 이 말을 ‘사실감이 있는 다채로운 보여주기’로 풀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의 궁금증이 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전의 오락 예능 프로그램도 사실감 있게 다양한 내용들을 보여주지 않았나?

 

모든 프로그램에는 대본이 있다. 그래서 흔히 방송은 대본 플레이라고 한다. 대본 플레이는 이미 짜놓고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생방송이 아닌 경우에는 짜놓고 연출하는 기법이 더욱 강해진다. 오락프로도 마찬가지다. 이때 몇 가지 문제점이 나올 수 있다. 우선, 제한된 내용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생생함이 덜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출연자들의 다양한 끼를 보여줄 수가 없다. 네 번째, 기계적인 재미만을 주기 때문에 곧 식상하며,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된다. 변화무쌍한 상황 속에서 예측하지 못한 웃음을 주지 못한다.

 

개그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보자. 80년대 개그 프로그램들은 대본에 의존했다. 여기에 약간의 개그맨의 끼가 덧붙여지는 형식이었다. 대본은 작가와 피디, 여기에 개그맨 개인의 아이디어에 의존했다. 아이디어는 곧 고갈될 뿐만 아니라 제한된 재미만을 제공하게 된다. <개그콘서트>가 초기에 엄청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대본 플레이보다는 출연자들의 재능과 끼를 즉흥적으로 상황에 따라서 발산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에는 오락 예능 프로그램의 진화 궤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일정한 상황이 주어지는 것은 코미디극의 얼개다. 등장인물들의 말재간은 토크쇼의 흔적이다. 도전 과제는 계속 선호되는 오락프로의 소재다. 국민MC 유재석, 2인자 박명수, 괴물 정준하, 어색뚱보 정형돈, 꼬마 하하, 돌아이 노홍철 등 다양한 캐릭터는 다양해진 대중적 기호의 반영이다. 여기에 무형식 무대본의 방식은 자연스러움과 진실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트렌드를 엿보게 한다.

 

사실 처음부터 짜인 내용의 구성은 최고의 재능아들에게는 불필요한 일이었다. <무한도전>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은 한국 오락 예능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들이다. 이들이 대본에 자신을 맞춘다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만다.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일정한 상황만 주어지면, 그 다음은 6명의 캐릭터가 알아서 한다. 방송은 결국 혼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무한도전>은 여실히 증명했다. 예능 오락은 단지 수다만 떤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시켰다. <무한도전>의 특징을 몸 개그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몸 개그만 해서도 2% 부족하기만 하다. 몸개그와 수다 개그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낸 것이 <무한도전>이기도 하다. <무한도전>의 성공으로 수평적 오락 프로가 확립되었다. 나이와 유명/무명을 떠나 하나의 과제만을 수행해 내는 탈권위, 비경직성을 보여주었다.

 

요컨대, <무한도전>은 대본 플레이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관계성 속에서 등장한 군집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능력을 상황에 맞게 만들어 갔고, 축구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면 이제 오락프로는 ‘각본 없는 버라이어티’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아울러 고유한 캐릭터와 바뀌는 미션은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주었다.

 

<무한도전>의 이러한 특성은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선, 무개념, 무정형, 무대본의 경향이 농후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과제에 따른 상황과 우연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중요해졌다. 수다만 떨지 않고 무엇인가 도전하고 몸으로 실행하며, 수평적인 어울림의 관계에서 미션에 따른 캐릭터들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는 <무한도전>이 다수의 2인자 체제 였던 점에 착안해 메인 MC자리를 도전과제-미션으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메인과 보조 MC가 구분되어 있지 않다. 메인 진행자가 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려는 가운데 출연자를 데려다 놓았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일까지 벌어진다. '도전암기송'이나 '불후의 명곡'은 음악을 도전과제로 삼으면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유발하려 노력한다.

 

<무한도전>이후에 중요해진 점은 초대 손님이 사라지는 경향이다. KBS <해피선데이> ‘1박2일’은 여행과 그에 따른 상황이 미션-과제다. 여행지만 정해져 있지 만나는 사람이나 상황은 계획이나 예측이 되지 않는다. SBS <라인업>에서는 출연자들에게 일정한 상황과 편만 갈라주고 웃기기 위해서라면 별 짓을 다해야 한다는 도전과제를 준다. MBC 에브리원은 아예 <무한도전>의 여성 버전인 <무한걸스>를 제작 방송하고 있다.

 

<무한도전>의 여파로 오락 예능 프로는 각 캐릭터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각 출연진의 호흡과 궁합을 중시하게 되었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모든 사안을 웃음유발로 이끌어낼 수 있는 출연진의 역할이다. 이 때문에 라인문화가 부각되기도 했다. 이경규 라인, 유재석 라인은 자기에게 맞는 캐릭터들끼리 호흡을 중요하게 생긴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소화할만한 역량을 가진 예능인들이 많지 않다는 측면에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는 것은 언제든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라인 문화가 또 하나의 진입 장벽일 때에는 더욱 그러한 정도가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무한도전>을 다른 오락 예능 프로그램이 겉으로만 흉내내는 일도 빈번해졌다. 직설적인 화법이 많아지고, 자극적이고 독한 캐릭터들이 리얼리티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넘쳐 났다. 또한 자연스러운 상황극을 내세우지만, 즉흥적으로 짜놓은 인위적인 상황극을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비속어 남발과 막말들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요컨대, <무한도전> 이후에 일종의 개구쟁이들이 오락프로그램에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서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것은 개구쟁이 짓(?)의 의미를 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개구쟁이들은 꽃미남이나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오락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개구쟁이처럼 미워할 수 없는 이들이라 생각해 버리면 다소의 일탈이 있어도, 아무리 막말을 토해내도 용서해버리고 싶어진다.

 

못 말리는 개구쟁이, 천방지축 개구쟁이들인데도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 개구쟁이는 자유분방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걸 좋아한다. 끼리끼리 어울려 놀려주고 웃겨 주며, 뒤집어지고 엎어지면서 함께 뒹구는 개구쟁이들은 때에 따라서는 황당하고 어이없고 의미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편안한 함을 준다. 개구쟁이는 천진난만하고, 밝기 때문이다.

 

개구쟁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들이 주제와 역할을 정해서 도전한다. 어른에게 도전 대상은 거창하지만, 그들에게 도전 대상은 거창하지 않다. 일상 자체의 모든 것이 다 놀이의 대상이고, 도전의 대상이 된다. 나무 올라가기, 계단에서 뛰어내리기, 영화와 만화 주인공 흉내내기도 모두 진지한 도전의 대상이 된다. 그 별거 아닌 도전에서 이긴다면 위대한 이가 된다. 진지하지 못한 것을 진지하게, 거창하지 않은 것을 거창하게 삼을 때 보는 이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무한도전>의 도전 미션도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은 지금 대중적인 기호가 ‘개구쟁이들의 정신’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개구쟁이들은 엄청난 부의 추구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겠다는 야망보다는 자신의 상황에 충실하다. 아이들이 성공하겠다는 욕망으로 개구쟁이 짓을 한다면 그들을 좋아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날 때 말과 행동은 자연스러워진다. ‘현실감 있는 다채로운 보여주기’(리얼 버라이어티)는 시청률을 잡겠다는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날 때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은행 사보에 보낸 글입니다.

2007.12.30 14:4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우리은행 사보에 보낸 글입니다.
#무한도전 #오락예능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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