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불의 심판 - 68회

조국의 부름 - 3

등록 2007.12.31 10:59수정 2007.12.3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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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에스가 직접 운전대를 잡은 벤은 험프리스 산 초입의 마을로 향했다. 제설작업을 했음에도 군데군데 눈이 얼어붙어 있어 벤은 기다시피 하며 산길을 내려갔다. 

 

“지금 가는 곳은 우리 부대가 창설되면서 형성된 마을인데 한마디로 텍사스촌이야. 처음엔 자그마한 술집 몇과 늙수그레한 작부들만 있었지. 그야말로 볼품없었어. 그런데 우리 대원들 씀씀이가 크다는 소문이 퍼졌던 모양이야. 하나 둘 술집들이 새로 문을 열더니 지금은 제법 마을이 커. 댄스홀을 갖춘 술집도 있고, 물론 밴드와 무희들도 당연히 있지. 그리고 화장을 짙게 한 작부들이 있는 업소엔 여지없이 숙박도 가능하고.”

 

보리에스가 둘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윽고 벤이 마을에 들어섰다. 그런데 보리에스의 말에서 풍겨지던 뉘앙스와는 다르게 거리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영화 촬영장의 세트를 보는 기분이었다. 보리에스가 둘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고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여긴 주말에만 시끌벅적해. 우리 부대원 말고는 아예 손님이 없거든. 그래서 오늘 같은 평일엔 어디 갈 데 없는 늙은 작부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지.”

 

보리에스가 외진 곳에 자리한 어느 허름한 선술집 앞에 벤을 세웠다.

 

“마을이 생길 때부터 줄곧 있던 술집이야. 내 단골이지.”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왈칵 열었다. 어둠침침한 실내가 잔뜩 냉기를 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인기척에 주인 여자가 얼굴을 빠끔 내밀었다. 이마에 주름이 무성한 히스패닉계 여인이었다.

 

“오, 보리에스!”

 

그녀가 방에서 맨발로 달려 나오더니 보리에스를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

 

“에바, 이쪽은 신병들이야. 미스터 원, 미스터 차.”

 

에바라 불리는 여인이 둘에게도 입맞춤을 해 주었다. 그녀의 몸에서 조금은 느끼한, 아주 독특한 냄새가 났다.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알전구를 켜고 난로에 불을 지피자 석유냄새가 역하게 코를 찔렀다. 그녀가 술과 안주를 차리러 간 사이 보리에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불쌍한 여인이야. 멕시코에서 밀입국해 왔는데 정처 없이 흘러서 여기까지 온 거야. 처음엔 이 집의 작부로 있다가 주인이 죽는 바람에 대신 주인 노릇을 하는 거지.”

 

에바가 위스키와 안주를 내어왔다. 웃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선 신산한 삶의 찌끼가 얼룩져 있었다. 셋은 에바가 따라주는 대로 독한 위스키를 입 속에 털어 넣었다. 난로처럼 활활 불이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아유, 귀여워. 술이 한 잔 되니깐 더 예뻐 보이네?”

 

위스키를 세 병째 따면서 에바가 둘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래도 둘은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수더분한 에바에게서 인간적인 체취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총각인가?”

 

에바의 물음에 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총각 딱지를 못 뗐어? 그럼 천하의 버뮤다 대원이 아니지. 오늘밤 어때?”

 

“왜, 에바가 직접 보듬어 줄려고?”

 

끈적거리는 에바의 말투에 둘이 어색해 하자 보리에스가 냉큼 끼어들었다.

 

“이것 봐, 나도 양심이 있다구. 자기도 피하는데 총각이 날 거들떠나 보겠어?”

 

에바가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는 냉큼 위스키를 들이켰다.

 

“그런데 무슨 수로 이 친구들 딱지를 떼 준다는 거야? 평일에도 아가씨 있나?”

 

보리에스의 말에 에바가 천천히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은근한 시선을 둘에게 쏘아 보냈다. ‘뗄 것이냐, 그대로 붙여둘 것이냐’를 빨리 결정지으라는 재촉이었다. 둘은 술기운에 호기심이 일기도 했지만 외국여성과 관계를 가진다는 게 부담스러워 고개를 저었다.

 

“이런 숙맥들 같으니라구. 그래가지고 언제 딱지를 떼니? ……그나저나 자긴 어때? 할 거야, 말 거야?”

 

에바가 사뭇 도전적으로 보리에스에게 물었다.

 

“이 친구들 훈련시킨다고 넉 달을 참았더니 아랫도리가 뻑적지근한 게 하긴 해야겠는데…….”

 

“하면 하는 거고, 안하면 않는 거지. 그래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이 친구들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까, 그럼 어서 아가씨 한 명 불러봐.”

 

“아가씬 여기 벌써 와 있잖아.”

 

에바가 느닷없이 턱을 괴고는 비음 섞인 목소리로 애교를 부렸다. 늙어가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일 없네.”

 

보리에스가 냉담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보리에스의 손을 당겨와 자신의 사타구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성기를 주무르게 했다.

 

“이래도 안할 거야? 보리에스, 나도 많이 굶었어.”  

 

“이런다고 내께 일어설 줄 알아? 백날 주물러봐라, 꿈쩍이나 하는가?”

 

보리에스가 여유 있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위스키를 홀짝거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히고 미세한 경련이 일어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넉 달이란 세월이 얘를 이렇게 만드는 구나. 이런 지조도 없는 놈!”

 

보리에스는 주먹을 쥐고 자신의 사타구니를 툭툭 쳤다. 그러자 에바가 질겁하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보물은 함부로 다루면 안 돼!”

 

에바가 회심의 미소를 띠며 보리에스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씨팔, 우리도 해버릴까?”

 

차운형이 위스키 병을 힘주어 잡고 원용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한국에서도 몇 번 못해봤는데, 막상 양년이랑 하려니까 괜히 살 떨리고 그러네? 그냥 손장난이나 하지, 뭐.”

 

원용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문득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몰려다니며 선술집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위스키 한 병을 새로 비우고 나서야 보리에스와 에바가 방에서 나왔다. 아주 흡족한 얼굴들이었다. 넷은 다시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에바가 빠른 템포의 멕시코 노래를 불렀다. 좌중이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 춤까지 곁들였다. 행복에 겨운 얼굴로 추어대는 열정적인 춤사위에 실내가 후끈 달아올랐다.

 

2007.12.31 10:59 ⓒ 2007 OhmyNews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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