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서울 상공의 자유로운 비행
.. 스물세 살의 아름다운 청년, 안창남의 이 글은 서울 상공의 자유로운 비행이 금지되어 있는 요즈음에는 볼 수 없는 기행문이다 .. <잃어버린 풍경>(이지누,호미,2005) 15쪽
요즘 들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스물세 살의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말투입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쓰는 터라 이러쿵저러쿵 따져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스물세 살 아름다운 젊은이”나 “스물세 살 먹은 아름다운 젊은이”라든지 “스물세 살짜리 아름다운 젊은이”라고 해야 올바릅니다. “(나이가) 열 살인 어린이”이지 “(나이가) 열 살의 어린이”가 아니거든요. “안창남의 이 글”은 “안창남이 쓴 글은”이나 “안창남이 쓴 이 글은”처럼 다듬어 봅니다.
┌ 서울 상공의 자유로운 비행이 금지되어 있는
│
│→ 서울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없는
│→ 서울 하늘을 자유로이 날지 못하게 하는
└ …
“높은 하늘”을 뜻한다는 ‘상공(上空)’입니다. 그냥 “높은 하늘”이라고 써 주면 되겠지요. 보기글에서는 ‘하늘’이라고만 해도 넉넉합니다. “못하게 하는 일”을 가리켜 ‘금지(禁止)’라 하지만, 이 또한 “못하게 한다”나 “막는다”로 다듬으면 좋아요.
자, 이렇게 다듬고 보면 사이에 끼어든 토씨 ‘-의’는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끼어들 자리가 없어요.
ㄴ. 일 분쯤의 시간
..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암오리의 등을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일 분쯤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존 버거,열화당(2004) 14쪽
처음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는 못 느끼는 군더더기가 있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한두 번쯤 다시 읽으면 괜히 넣었구나 싶은 곳, 군더더기를 찾을 수 있는데, 때때로 이런 군더더기를 못 느끼고 지나치기도 합니다. 거의 버릇처럼 굳은 글투나 말투라면 못 느끼고 지나칩니다.
┌ 일 분쯤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
│→ 일 분쯤(이) 흘러야 했다
│→ 일 분쯤 있으면 되었다
│→ 일 분쯤 걸렸다
└ …
“일 분쯤의 시간이 걸렸다”처럼 말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있기나 할까요? 글이니까 이런 말이 튀어나오지 싶은데.
“오는 데 얼마 걸렸니?” “한 시간쯤 걸렸어.”, “일을 마치려면 얼마쯤 있어야 할까?” “글쎄, 십 분쯤은 있어야겠지?” 우리들은 으레 이렇게 주고받습니다. “한 시간쯤의 시간이 걸렸어”나 “십 분쯤의 시간이 걸려야겠지?”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글쓰는 분들은 꼭 ‘-의 시간’이라고 해서 토씨 ‘-의’를 집어넣고 싶어합니다.
ㄷ. 한국의 경주를 여행할 때
.. 한국의 경주를 여행할 때였습니다 .. <우리와 안녕하려면>(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양철북,2007) 5쪽
‘여행(旅行)할’은 ‘돌아다닐’이나 ‘둘러볼’이나 ‘나들이할’로 다듬어 줍니다. 그대로 써도 괜찮고요.
┌ 한국의 경주를
│
│→ 한국 경주를
│→ 한국에 와서 경주를
│→ 한국에서 경주를
│→ 경주를
└ …
한국에 와서 서울을 돌아다닌다고 한다면, “한국에 와서 서울을 다닐 때였습니다”라고 적거나 “서울을 다닐 때였습니다”처럼 적으면 되겠지요. 다니기는 했지만 어딘가 낯설다든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을 말한다면 “한국에 있는 (어디)를 돌아다닐 때였습니다”처럼 적고요. “한국에서 (어디)를 나들이할 때였습니다”처럼 적어도 괜찮고 “한국 경주를 둘러볼 때였습니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참으로 많은 분들이 토씨 ‘-의’를 붙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7.12.31 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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