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11) 입장

[우리 말에 마음쓰기 178] ‘아이 입장에서는’ 다듬기

등록 2007.12.31 11:04수정 2007.12.31 11:04
0
원고료로 응원

 

.. 좀 억울한 마음이 없지는 않으나 아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이경수-가슴으로 크는 아이들>(푸르메,2006) 19쪽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를 써도 나쁘지 않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라고만 쓰면 더 좋고, “그럴 수 있겠습니다”로 써도 좋습니다.

 

 ┌ 아이 입장에서는
 │
 │→ 아이가 보기에는
 │→ 아이가 생각하기에는
 │→ 아이가 느끼기에는
 │→ 아이 생각에는
 │→ 아이 눈길에는
 │→ 아이로서는
 │→ 아이는
 └ …

 

한자말이라고 해서 딱히 싫어하지 않습니다. 한자말을 굳이 안 쓰려고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써야 할 말은 씁니다. 쓸 까닭이 없으면 안 씁니다. 그리고 제 느낌과 생각을 제 나름대로 담아내지 못하게 하는 말도 안 씁니다. 저마다 다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텐데, 적잖은 한자말은 우리들 다 다른 생각과 느낌을 판에 박은 듯이 두루뭉술하게 흐트려 놓기도 해서 안 씁니다.

 

보기글에는 ‘입장’이라는 말이 보입니다. 이 ‘입장’은 ‘순화대상 낱말’이 된 지 오래라,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이 말을 안 쓰려고 애쓰는 분도 많은데, 이런 움직임을 못 느끼거나 모르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말을 바르게 쓰자는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말로 읊는 분들은 “‘입장’이라는 말 좀 쓰지 맙시다” 하고 늘 되풀이합니다.

 

뭐, 이 ‘입장’은 일본 한자말이고 여러모로 얄궂다고 하는데, 그 얄궂음을 넘어서 제가 이 말을 안 쓰는 까닭이 있습니다. 바로 ‘저마다 다 다르게 자기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지 못하도록 가로막’거든요.

 

저는 일곱 가지로 풀어 보았습니다. 더 풀어 볼 수 있어요. 열 가지든, 스무 가지로든 얼마든지 다르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다르거든요.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요. “아이가 보기에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해도 좋고 “아이가 느끼기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아이로서는”이나 “아이는”만 써도 괜찮아요. “아이 생각에는”이나 “아이 눈길로는”이나 “아이 눈높이로는”이나 “아이 마음으로는”을 써도 좋습니다.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을 써도 어울리고, “내가 아이였다고 해도”라 해도 잘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입장’이라는 말을 쓰면 죄 막히고 맙니다. 저마다 다 다르게, 그러니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말이 막히고 말아요. 이러니까 ‘입장’이라는 한자말을 안 씁니다. 이 ‘입장’처럼 우리 말문을 막고 자유롭게 풀려나가는 말길을 뚝 끊어 버리는 한자말을 싫어합니다. 거스르려 합니다. 몰아내려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7.12.31 11:04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입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김건희 비선' 의혹, 왜 자꾸 나오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