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느 사형수

등록 2007.12.31 14:27수정 2007.12.3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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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처형대 앞에 놓인 '사형제' 서울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처형대 앞에 놓인 '사형제' 서울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의 사형소식을 들은 것은
저녁을 먹고 정좌하고 있던 초저녁 무렵이었다
라디오 뉴스로 흘러나온 사형소식은
교도소 벽을 타고
교도소 전체를 한 순간에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긴장은 순간의 정적으로 바뀌었다
3사 하 내가 있는 독방 건너 건너에
그의 동료 하나도 그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생선을 요리하는 칼을 들고 몰려가
끔찍한 칼부림으로 사람을 해친 이들이었다
긴장과 정적 그 차가운 고요의 끝에
다음 날 오전 독방의 문 하나가 열리고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내 방 앞에 와 멈추더니
거대한 몸집의 그의 동료가 나를 찾았다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그는
선생님 하고 낮은 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편지를 써 달라고 했다
죽은 친구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어머니란 이름 앞에 쪼그려 앉은 그의 얼굴에
잔혹한 살인자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커다란 덩치를 주체하기 힘들어 하는
쑥스러운 회오와
여기까지 와 버린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이 한 청년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더듬거리며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무침들을
봉함엽서에 옮겨 적어주며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끔찍함을 처리하는
우리의 방식 역시 끔찍한 오랏줄밖에 없다면
우리 역시 끔찍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용서할 수 있는 걸 용서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
용서하는 어려운 용서까지 갈 수는 없을까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 보아야 한다
죽을 만큼 큰 죄를 지은 이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러나 그들을 죄를 다루는 방법이
오직 생명을 거두는 것밖에 없는 건 아니지 않는가
제도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우리가
생명을 빼앗을 권한까지 부여받은 건 아니다
부족하고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우리가
사람의 목숨을 우리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오만해서는 안 된다
성급함과 잔인함과 어리석음의 흐린 물결이
가라앉고 난 뒤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도
그들을 살려낼 방법이 없는
제도적 살인은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목숨은 누구에게나
모든 인간의 목숨을 합친 것만큼 무겁고 소중하다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사랑할 수 없는 것까지 사랑하는 이를
하느님은 오른편에 앉게 하시지 않는가
사람을 우리 손으로 무자비하게 해치는 제도는
폐지, 폐지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시를 쓴 도종환 시인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고 투옥됐으며, 1998년 덕산중학교에 복직했다. 지금은 몸이 아파 학교를 그만 두고 충북 보은군 내북면에서 쉬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시를 쓴 도종환 시인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고 투옥됐으며, 1998년 덕산중학교에 복직했다. 지금은 몸이 아파 학교를 그만 두고 충북 보은군 내북면에서 쉬고 있다.
#사형제 #목숨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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