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라인, 배용준 현상과 황금 나침반 레전드

2007년 방송시상식의 명암

등록 2007.12.31 11:35수정 2007.12.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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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금나침반>에서 황금나침반은 진실의 창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앞날까지 내다본다. 황금나침반은 기게스의 반지와 같이 일정한 물신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한다.

 

이러한 물건이 있다면, 반드시 다툼의 대상이 된다. 영화 <황금나침반>에서는 이렇게 황금나침반을 둘러싼 절대 권력의 쟁투가 펼쳐진다. 영화의 핵심 얼개 중의 하나는 또 다른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성체위원회다.

 

‘더스트’가 전해지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종교적 권력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오직 세상의 중심은 자기들이 영도하고 있는 공간일 뿐이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방송은 트루먼에게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야 계속될 수 있다. 영화 <다크시티>에서도 튜닝족은 납치된 인간들에게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알리지 말아야 자신들의 생존을 모색할 수 있다.

 

방송은 황금나침반이나 기게스의 반지처럼 다툼의 대상이 된다. 방송을 통해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물론 방송은 진실을 전달하는 창이어야 한다.

 

하지만 방송은 진실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시청률을 잡으면 용서된다. 진실인 것으로 위장하고, 막말과 거친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켜도 당사자는 높은 시청률을 유지한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이유로 상도 받는다. 그것은 최종 방송사 시상식으로 공증된다.

 

방송사 시상식을 보면, 다른 세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통합시상식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위주로 시상식을 치러낸다. 함량 미달의 수상 작품이나 수상자가 양산되고, 스스로 상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퇴색시키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것은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공동 수상자의 양산 논란이나 공정성 문제에 잡음이 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방송계에서 황금나침반은 여전히 또 다른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또 다른 성체위원회가 장악하고 있는 모양새다. 방송사들은 서로 자기들이 유일한 세상의 중심이라고 강변한다.

여기에서 다른 세계는 다른 지상파 방송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케이블에서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을 즐겨본 시청자도 존재 의미가 없다. 대중적 쏠림 현상이 대중문화의 치명적 약점이자, 한계라는 사실을 방송이 공개적으로 여전히 확증했다.

 

승자 독식, 소수의 독점 문제가 여전히 시상식을 통해 확증되었다.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이 여전히 해석되고 통찰되어 소개되지 못했으며, 소수의 MC들은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독식했을 뿐만 아니라 시상식도 독점했다.

 

무난한 방송 만들기의 표본적 행태였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개별 유사 복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MC문제를 좀 더 보면 1년간 다시금 새로운 MC들의 역량을 지닌 MC들의 면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방송사들은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라인 문화를 키워주고 기획사에 방송사의 종속성은 더욱 심해졌다. 라인 MC들은 몇 년 동안 내내 전파를 장악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미 인재의 발탁과 다양성은 구축(驅逐)될 운명이었다.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이 낮아질수록 지명도 높은 MC집단에 종속되는 정도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독점이나 독식으로 몰아붙일 수 없다. 그 현상의 이면에는 위험을 기피하는 방송사의 생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속에 손을 넣어 얻은 도토리를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원숭이와 같은 방송사의 심리다. 물론 원숭이는 그 도토리 때문에 사냥꾼에게 잡혀 목숨을 잃고 만다.

 

인터넷에 포위되어 있는 면도 크다.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인터넷의 반응이 전시청자의 의견이 아님에도 인터넷 플레이에 크게 종속된 탓이다. 인터넷에서 회자된다고 대중적 호감이 강한 것은 아니다. 상을 받고 받지 않음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듯한 보도 또한 본질에는 전혀 이르지 못한 행태 중에 하나다.

 

드라마 분야에서도 외주제작사의 덩치는 더욱 커진 2007년이었고, 시상식은 이를 그대로 반영했다. 성공한 드라마, 많은 드라마를 제작한 제작사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는 없다. 1년 내내 <태왕사신기>에 흔들렸던 MBC인데 MBC 연기대상은 김종학 프로덕션과 배용준에 좌우되는 인상을 끝까지 남겼다. 대자본과 해외의 영향력에 꼼짝 못하는 한국의 특성이 그대로 배인 행태였다.

 

MBC만이 아니라 여전히 나누어먹고 돌려먹는 일들은 분야와 장르를 불문했다. 공동체 정신으로 식구 챙기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공신력과 공신력 있는 시상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탓이다.

 

프로그램과 작품에 대한 평가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객관적인 평가가 중요하다. 잘된 점, 잘못된 점, 그리고 공헌한 점, 아쉬운 점들을 골고루 품평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시청률은 나오지 않았지만 기획력이나 창작력 등이 우수했던 작품들에 대한 주목도 있어야 한다. 아무리 연기가 뛰어나도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평가를 받지 못하고, 부족한데 시청률이 높거나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고 상을 주는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은 면역체를 가진 자신의 피를 이용해 백신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외부 세계에 소녀를 통해 전달하고는 자신은 변형인간과 맞서 싸우다 죽는다.

 

그는 자기세계에 갇힌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인식하고, 전체를 살리려했으며 종국적으로는 인류의 번영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그래서 그는 전설(legend)이 되었다. 지금 방송가에는 진실의 창인 황금나침반도 전설이 될 주체도 없다. 끝까지 방송의 공영성보다는 그것을 통해 제각각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태는 2007년에도 시상식으로 계속 확대 재생산되었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2007.12.31 11:35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연말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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