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칸칸 만화로 채운 아들 달력

중학생 아들의 고민이 담긴 그림달력... 새해도 '므훗' 하자!

등록 2007.12.31 15:15수정 2007.12.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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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규의 책상위에 놓인 달력 소박한 달력에 담긴 세상. 아이는 어떤 그림으로 표현했을까? ⓒ 한미숙


중학교 배정을 받고 작은애 교복을 사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후딱 갔다. 누가 '중딩'을 지존이라 했던가. 이제 아이(상규)는 중학교 2학년이 된다. 중2는 지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짱'이다. 가장 예민해지는 청소년 시기이며 누가 저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도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울 앞에 서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는 신경을 다 쓴다.

자고 나면 쑥쑥 자라는 키, 먹고 또 먹어도 녀석은 배가 고프다. "엄마!~" 하고 불러서 저를 쳐다보면 "배고파!" 한다. 집에 같이 있는 날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듣는 말이다. 먹고 나면 졸음에 겨워 눈꺼풀은 주저앉고 잠깐씩이라도 눈을 붙인다. 꿀보다 달콤한 낮잠에 빠져나오자면 한두 시간이 휙 지나간다.

허리가 고무줄로 된 바지를 입다가 중학생이 되어 정장 교복바지에 혁대를 차니 처음엔 아빠바지를 입은 듯했다. 일년이 지나니 이젠 얼추 제 몸에 맞아 그럴싸해 보인다. 입 주위엔 거뭇거뭇 수염이 나고 이마는 온통 모래알을 뿌려놓은 것처럼 여드름이 깔렸다. 고음도 저음도 아닌 목소리는 텁텁한 막걸리 맛으로 귀에 엉긴다.

아이의 고민과 관심이 담긴 달력 그림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잘 노는 게 공부"라고 입에 달고 살았던 내가 중학생 학부모가 되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두 배로 늘어난 학과목은 초등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수시로 평가되는 학교생활은 아이의 몫이라 해도, 학원을 꼭 보내야 되는 건지 등을 고민하게 되었다.

아이는 남들 거의 다 가는 영어나 수학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친구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아주 바빠졌다. 가끔씩 친구와 놀려고 밖으로 나가던 일도 뜸해졌다. 변함없는 건 날마다 우리 동네가 잘 있는지 '동네 한바퀴'를 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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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과 2월 달력 1월5일, 자기 생일을 노란 색으로 칠해놓고 2월엔 개학. 그림 한 구석엔 작은 개 한마리가 물음표로 보고 있다. ⓒ 한미숙


녀석의 방에는 어린이 책을 주로 펴내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상달력이 있다. 책을 사고 서점에서 얻은 달력이었다.

방을 드나들면서 책상 위에 놓인 달력에 눈길이 갔다. 낙서인 듯 그날 하루가 지나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달력. 날짜마다 칸칸이 채워진 낱낱의 그림(만화) 한 칸이 달이 바뀌면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거기에는 아이의 고민과 관심거리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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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달력 빡빡하게 꽉 찬 그림들. 새로운 중학생활의 긴장감이 묻어난다. ⓒ 한미숙


개학을 하고 입학식을 치르면서 반 배정을 받는 동안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아이와 같이 나도 긴장하고 있었다. 녀석의 그림은 긴장해 있는 내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나는 날마다 녀석의 방을 드나들며 오늘은 또 무슨 그림일까 궁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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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달력 중간고사가 실시되는 4월 말에는 국어 과학 중국어 등 과목이 써 있다. 총에 관심이 많아 그림에도 총이 자주 등장한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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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달력 수련회와 놀토에 봉사, 수영장을 가고 성적표발송이 있었던 달. 체육대회와 신체검사, 하복착용 등 학교생활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5월. ⓒ 한미숙


1학기 중간고사가 있던 4월 말 5월 초에 아이는 제 누나가 쓰던 '플래너(계획표)'를 얻어 계획표대로 공부를 했는지 스스로 확인하곤 했다. 학원을 다니건 안 다니건 자기 공부를 혼자 정리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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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방학 '꺄-악' 소리지를 만큼 기다리던 방학. 별 특별한 일이 없어도 아이는 방학이 즐겁다. 방학이라 그림도 쉰다. ⓒ 한미숙


실컷 놀 수 없는 방학이라도 어쨌든 방학은 즐거운가 보다. 7월을 일주일 정도 남겨놓고 칸이 비었다. "꺅~" 소리를 지르며 눈알이 돌아갈 만큼 신나는 여름방학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널널한(?) 여름방학이 지나고 다시 2학기가 시작되면서 ‘놀토’에는 봉사점수를 채워나갔다.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거나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하는 단순한 봉사활동은 계속 이어지지 않는 단순한 일로 끝나거나, 점수를 받는 것에만 급급해서 내키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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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부고 '이제 공부하기로 한다' ⓒ 한미숙


곰부고... 이제 공부하기로 한다?

'곰부고'…. 공부해라 말을 안 해도 아이들은 누구도 '공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곰부고’가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 말이 "이제 공부를 하기로 한다"는 뜻이란 걸 녀석의 2학기 중간고사 때쯤 해서 눈치를 챘다.

"다음부터는 시험공부를 좀 더 일찍 시작해야겠어!"

기말고사를 앞두고 아이는 매번 하던 말을 했다.

"그래, 일주일만 일찍 시작해도 다르지. 그리고 컴퓨터는 웬만하면 좀 멀리하는 게 어떨까?"

안 해도 되는 말을 했나 싶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했다. 난 엄마니까. 하루에 한 시간은 컴퓨터 하는 시간을 허용하고 아이도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다. 조금 욕심을 부리자면 시험범위가 정해진 날부터 컴퓨터는 정말 안 했으면 하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아이의 성적이 나오고 점수가 오른 경우에 내가 즐겨 '써먹는' 말이 있다.

"그렇게 노력하더니 점수가 올라갔구나. 그래,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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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점검표 과목별로 공부할 내용을 적어놓은 계획표. 계획대로 잘 했으면 동그라미, 중간은 세모, 안했으면 가위표. ⓒ 한미숙


아이의 궁둥이를 격려하듯 툭툭 두드리면 아이는 '초딩'처럼 헤~ 하고 웃는다. 점수가 떨어지는 과목도 있지만, 그건 살짝 모른 체 한다. 중요한 건 노력해서 그 만큼 성과가 있음을 격려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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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뭇한 공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드러나는 신나는 세상이 되면 정말 좋겠다. ⓒ 한미숙


2008년 새해에도 므흣하자!

12월 어느 날, 아이의 책상 플레너에는 '므훗 하구나' 라는 글이 써 있었다. 읽을수록 빙그레 웃음이 난다. 자신한테 저 말을 쓸 정도면 엄마인 나도 흐뭇한 일이다. 게다가 그 옆엔 또 '흐뭇히 공부하심'이라니…. 

방학을 하면서 성적표를 건네는 아이 표정이 왠지 짓궂었다. 다시 '헤~' 웃는 얼굴에 장난기가 어렸다.

"엄마, 나 2학년 수학 문제집을 좀 사야겠어. 방학 동안에 예습해야 하거든."

단골로 가는 서점에서 문제집을 샀다. 문을 나서면서 깜빡 잊은 게 있어 다시 들어갔다.

"아저씨, 책상달력 있으면 하나 얻을 수 있어요?"

아저씨는 그렇잖아도 주려고 했는데 깜빡했단다. 아이의 방에는 다시 2008년 책상달력이 놓여졌다. 꼭 하루 남은 새해, 아이의 새 달력 한 칸에는 손을 번쩍 들고 외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보던 낯익은 그림이다.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것 같다. 있는 힘을 다해 절절하게 부르짖는 안타까운 절규 대신, 상규의 그림은 자신감으로 희망을 외치는 힘찬 새해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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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외침! 새해 새달력 1월 5일 날짜에 그린 그림. 이 날은 녀석의 생일이기도 하다. 자기에게 밝은 기운과 긍정을 불러들이는 그림을 그려넣었다. ⓒ 한미숙


지난 한 해를 즐겁고 건강하게 '잘!' 보낸 아이에게 나도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손을 번쩍 들고 외쳐본다.

"새해도 므훗 하자!"

덧붙이는 글 | 달력 응모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달력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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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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