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마지막 산행, 화왕산의 두 얼굴

관룡산에서 화왕산까지

등록 2007.12.31 14:31수정 2007.12.3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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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의 두 얼굴 완만한 억새평원 끝으로 낭떠러지 같은 바위 산이 숨어 있다... ⓒ 이명화


저물어 가는 2007년도 마지막 산행을 화왕산으로 정했다. 지난 이틀 동안 비가 온 후에 갑작스런 추위로 만물이 더 꽁꽁 얼어붙은 듯 추웠지만 예정대로 산행준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날은 계속 흐렸다. 북부산 IC를 지나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영산IC를 지났다. 창녕에 들어섰을 때 잔뜩 흐렸던 하늘 한쪽 문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구름 뒤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반가웠다. 열려진 하늘 사이로 반가운 아침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옥천마을에 들어서는 지방도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길 또한 호젓해서 좋았다. 이곳은 버스가 하루 네 번 에 오지 않는 마을 끝 동네다. 옥천마을에 깊숙이 접어들자 넓은 옥천저수지가 보였다. 화왕산 군립공원에 도착, 옥천매표소에서 주차료와 입장료 4000원을 지불하고(입장료는 1인당 1000원) 관룡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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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산... 암능바위능선을 따라 걷다... ⓒ 이명화


화왕산군립공원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 송련리, 옥천리 일원에 펼쳐져 있는 군립공원으로 1983년 창녕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창녕군과 창녕읍과 고암면 경계에 있는 화왕산(757m)은 삼국시대부터 있던 성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의 분전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화왕산성 동문에서 남문으로 내려가는 길 사이엔 분화구이자 창녕 조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삼지(三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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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암에서... 올려다 본 병풍바위 ⓒ 이명화


화왕산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옥천매표소에서 관룡사-청룡암-관룡산-화왕산 구간으로 이 길은 급경사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룡사 앞에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청룡암 앞에서부터는 기암괴석으로 된 바위들로 절벽을 타고 올라간다. 암능으로 된 능선 또한 위험하여 노약자나 어린이, 또는 초보 산행자들이 가기엔 무리가 따른다. 두 번째는 옥천에서 신선골계곡-옥천삼거리-화왕산 정상으로 가는 이 구간은 완만하고 비교적 편안한 길이다.

신설골계곡을 따라 걷노라면 끊임없이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발걸음 즐겁고 계속 이어지는 임도로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길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계곡의 흐르는 물과 넓은 계곡의 바위들, 길을 걷다가 앉아 쉴 수 있는 넓은 바위들이 있어 좋다. 이 길은 등산길이라기보다는 산책로처럼 되어 있어 누구라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길을 내어 주고 있다. 또 하나, 가장 빠른 길은 창녕여자중학교 옆길로 해서 환장고개를 넘어 정상에 이르는 길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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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암 에서 바라 본 관룡산 암능...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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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산 암능에서 내려다 본 창녕...그리고 멀리 옥천저수지가 보인다. ⓒ 이명화


우리는 첫 번째 방법을 택했다. 옥천매표소를 지나 관룡사 앞에 차를 세우고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숲 속에는 새들이 나무와 나무 사이로 날아다니며 노닐다가 우리가 가까이 다가서자 깊이 숨어 호흡을 멈추었다. 화왕산 역시 초행이라 이 길이 어떤 표정인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계속 이어지는 길이 낯설고 또한 기대가 되었다. 갈수록 경사가 높은 길로 이어지더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는 청룡암에서부터는 계속 바위산으로 되어 있어 안전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했다.

청룡암 앞에 있는 약수터에서 한 모금의 물을 마시고 청룡암 좁은 마당에 잠시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 뒤에 따라오던 일행이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며 한동안 떠들썩하더니 앞서 산을 올라갔다. 청룡암 옆에는 암벽으로 둘러싼 폭포가 있지만 물은 말라 있다. 청룡암을 벗어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여기서부터 관룡산(753m) 정상까지는 암능 구간으로 자칫 발을 헛딛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절벽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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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산... 암능바위능선을 따라... ⓒ 이명화


우리 앞서 갔던 분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이었다. 아마도 이곳 산행은 처음인 듯 모르고 올라갔다가 도무지 자신이 없어 다시 내려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안전로프를 잡고 발을 짚을 만한 곳을 찾으며 올라가자 칼바람이 몰아쳤다. 관룡산 정상까지 가는 길은 암능바위 능선으로 길게 뻗어 있지만 막상 관룡산 정상에 이르렀을 땐 맥 빠지는 기분이었다. 산 정상은 밋밋한 평지에 정상표시석 대신 나뭇가지에 팻말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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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 앞 '번지없는 주막''' ⓒ 이명화


이정표 앞에서 화왕산 가는 능선길로 들어섰다. 어제 비온 뒤 아직 마르지 않은 흙길은 미끄러운 데다가 갑작스런 추위에 길은 꽁꽁 얼어 있었다. 이 능선길에서 지쳐 있던 남편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감사하다. 우리는 암능바위 능선에서 넘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하며 다시 걸었다. 봄이 오면 진달래 필 때면 참 아름다울 호젓한 능선길을 지나자 임도가 나타났다. ‘번지없는 주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넓고 호젓한 길을 따라 걷노라니 때 이른 개나리꽃들이 피어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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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 호젓한 길이 우리를 안내하고... 철잃은 개나리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 이명화


봄이 오면 개나리꽃길로 걷는 즐거움이 더할 듯하다. 얼마쯤 갔을까. MBC드라마 <허준> 세트장이 나왔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길도 산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산 품새는 넉넉하고 편안하고 모가 없다. 날은 흐렸다 갰다 하기를 반복했다. 화왕산 남문에 이르렀다. 이따금 등산객들이 보인다. 남문에 들어서서 산성길을 따라 걷노라니 넓게 펼쳐진 화왕산 평원은 아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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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드라마 '허준'세트장... ... ⓒ 이명화


지금은 화왕산 억새가 출렁이는 가을도 아니고, 봄꽃 만발하여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으는 이른 봄철도 아니다. 그야말로 가장 조용할 때 우리는 화왕산을 찾은 것이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정상 일대의 억새평원에서는 달맞이와 억새 태우기 행사가 열릴 것이다. 화왕산 정상 표시석 옆에는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다. 봄이면 그 벼랑 끝에는 진달래가 꽃불을 놓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화왕산은 억새풀 가득한 넓은 평원 그 이면에는 화왕산의 또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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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화왕산성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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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억새평원... 을 가로지르는 등산로... ⓒ 이명화


산성 안 5만 6천 평이나 되는 드넓은 억새평원은 그야말로 평화롭고 넉넉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편안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끝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얼굴은 날카롭고 가파르고 위험하다. 가차 없는 냉정하고 단호한 표정을 하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이 길게 내리뻗어 있어 억새평원하고는 사뭇 다르다. 참으로 다른  두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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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산성길을 따라 걷다가... ⓒ 이명화


억새풀로 드넓게 펼쳐진 평원은 누워서 맘껏 뒹굴어도 좋을 만큼 넉넉하고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또 다른 얼굴, 억새평원 그 뒷면에는 깎아지른 듯한 암벽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니, 야누스의 두 얼굴이었다. 우리 인간과 삶에도 늘 서로 다른 양면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칼바람이 거칠게 불고 넓은 억새평원 위에 까만 점처럼 몇몇 사람들 보이는가 싶더니 그들마저 보이지 않는다. 적요감이 감도는 화왕산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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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날은 흐리고...겨울해와 숨바꼭질하며...넓은 억새평원을 바라보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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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억새평원... 저 아래 가운데쯤엔 창년조씨 득성지 화왕산 연못이 보인다. ⓒ 이명화


오래 머물러 있기엔 날씨가 너무나 추웠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다시 남문을 해서 길에 서니 오후 2시 40분, 인적 없는 호젓한 길을 따라 걸었다. 참 아름답고 부드럽고 넉넉한 산과 길이다. ‘번지없는 주막’ 앞에서 이젠 왔던 길을 버리고 물소리 환한 신설골계곡으로 해서 걸었다.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는 매표소 앞에 이를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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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그 두 얼굴...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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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정상이 저기 보인다. 정상표시석이 뒤엔 깎아지른 벼랑이다. ⓒ 이명화


신설골 계곡은 어디에 그렇게 많은 물을 감추어놓고 있는 것일까. 끝없이 물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으면 그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디카 배터리가 다 되어서 계곡의 물을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여름 계곡을 찾으면 참 좋을 듯하다.

일야봉산장에 이르니 3시 20분, 조금 있으면 해가 곧 질텐데 젊은 남녀 둘이서 사진기를 들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물소리는 길을 따라 계속 흘렀다. 관룡사 옆으로 난 계곡은 물이 거의 말라 있어 낙엽들로 뒤덮여 지저분해 보이는 것과는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매표소에 도착, 오후 4시 10분이었다. 아차, 차를 관룡사에 세워놓았지…. 지친 다리를 쉴 사이 없이 또 걸어야 했다. 이미 다리는 지쳐 있었지만 어찌하랴. 매표소 앞에서 관룡사 앞 주차장까지 다시 걷는 걸음은 무겁고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걸으면 도착한다. 관룡사 앞에서 4시 40분에 출발, 우리는 2007년 우리의 마지막 산행지인 화왕산을 뒤로 하고 왔던 길을 돌아간다. 옥천마을은 고요하게 어둠 속에 잠기기 시작했다. 저무는 붉은 해는 차창 너머로 한동안 따라 오다가 사라졌다.

2007년 7월부터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참 많은 산과 만났던 것 같다. 천태산에서 시작해서 화왕산까지 19개의 산에 올랐다. 초보 산행인인 내가 산이 거기 있기에 산을 찾아 산을 만나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화왕산은 2007년 19번째 마지막 산행지로 나의 ‘갈멜 산행기’에 기록되었다.
#화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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