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신부에게 다이아몬드는 안 어울려요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20] 짐바브웨 블라와요

등록 2008.01.06 16:48수정 2008.01.0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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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블라와요 시내. 그레이트 짐바브웨나 마토보 국립공원으로 연결되는데 정치·경제적 불안으로 관광객이 끊긴 지 오래인 것 같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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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도시라는 뜻의 블라와요는 여행객의 지갑에도 학살의 장소였다. 지난 달까지 20달러였다는 숙소는 외국인 가격을 적용한다며 100달러를 불렀다. ⓒ 조수영


여행 21일(1월 22일). 다시 블라와요로 돌아온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수도 하라레는 짐바브웨 내의 다수파인 쇼나족의 지역이지만, 이 근방은 소수파 은데벨레족의 지역이다.

'블라와요'라는 도시 이름은 '학살의 장소'라는 뜻인데, 은데벨레족의 왕이 이 곳을 본거지로 잡으면서 다른 종족과 대대적인 전투를 했기 때문이다.


담합해서 바가지를 씌우려 하다니...

그런데, 짐바브웨의 경제사정은 우리 같은 여행객의 지갑에도 '학살의 장소'였다. 20달러 정도로 알고 찾아간 숙소에서 하룻밤에 100달러를 부른다. "외국인 가격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단속에 걸리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는 게 핑계다.

바가지를 씌우는 것 같아 얼른 짐을 챙겨 나왔다. 주변에 다른 숙소로 가보았지만 가격을 물을 때는 20달러였다가도 계약을 하려고 하면 어디에선가 전화가 걸려오고 그 뒤로는 100달러를 불러 제친다. 담합을 하여 남겨먹을 계획이었다.

유명관광지이지만 경제불황과 복잡한 사회 분위기로 외국인의 발길이 뚝 끊겨 어쩌다 오는 여행객들에게 한몫을 잡을 심산이었다.

실제로 많은 여행자들이 하라레나 블라와요를 피해 짐바브웨를 지나갔다. 남아공에서 만난 미국인 여행자는 "기자도 피해가는 블라와요를 지나왔느냐"며 우리를 종군기자나 되는 듯이 생각했다.


주변이 어두워지니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렇다고 거리에서 노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포기하고 100달러짜리 숙소로 들어서려는데 마스빙고에서 타고 왔던 승합차 기사가 되돌아왔다. 동양인 여행자들이 방을 찾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나 해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어느새 블라와요의 뉴스거리가 되어 있었다.

친구가 일하고 있다고 소개해 준 숙소는 30달러에 따뜻한 물도 잘나오고 깨끗하고 근사한 아침식사까지 나와서 지금까지 묵은 곳 중에 최고였다. 다만 담합에 동참하지 않은 기사와 그의 친구가 우리가 떠난 후에 동네에서 쫓겨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식당 앞에는 총을 든 경비원이 서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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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와요 시내. 어두워지자 한순간 거리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가게는 문을 닫았다. 가게의 문은 이처럼 쇠창살로 덮여 있거나 총을 들고 있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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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의 문은 이처럼 쇠창살로 덮여 있거나 총을 들고 있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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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미술관의 쇼나조각. 짐바브웨 사람들은 부드러운 활석을 최대한 돌의 원래 모양에 따라 정이나 끌과 같은 전통도구를 이용해서 조각한다. ⓒ 조수영

서너 시간 숙소를 찾아 헤맸더니 배가 고프다. 식당을 찾아 숙소를 나서는데 총을 든 경비원이 "꼭 여럿이 함께 움직여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상점들은 철망으로 둘러쳐 있고 이른 시간인데도 거의 문을 닫았다.

식당 앞에도 총을 든 두 명의 경비원이 출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시내는 블록모양으로 구획정리가 잘 되어있었지만 켜진 가로등이 몇 개 없어 겨우 도로를 분간할 정도다. 깜깜한 골목에선 노숙자인 듯한 사람들이 불쑥 나타나서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도시락을 들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시각이 늦은 저녁이기 때문에 낮에는 블라와요 국립미술관과 자연사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미술관 관람에 별 흥미는 없지만 남아도는 시간에 달리 갈 곳도 없었다.

그런데 미술관 입구에 도착했더니 오늘은 휴관이란다. 못 들어간다니까 갑자기 그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직원에게 들여보내달라고 졸랐다. 우리는 "멀리서 이 미술관을 보려고 찾아 왔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다, 맘에 들면 그림을 왕창 사겠다"는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직원을 졸랐다.

결국 미술관 입성에 성공. 휴관이라고 들어갈 수 있는 게 블라와요 국립미술관이다. 쇼나조각과 화려한 색감의 그림을 기대했지만 대부분 팔리고, 내 수준에선 주제를 알 수 없는 그림들만 몇 점 남아있다. 이제야 직원이 왜 들여보내줬는지 알 것 같다.

보석이 가득한 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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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와요 자연사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은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광물·암석·화석과 동물과 식물 등을 채집·연구·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 조수영


미술관을 나와서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힌다는 국립 자연사 박물관으로 갔다. 시내는 동서로 가로지르는 레오폴드 거리 덕분에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연사 박물관은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광물·암석·화석과 동물과 식물 등을 채집·연구·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동물관이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의 박제를 전시하고 있다. 사파리를 하면서 직접 본 동물들이지만 여기서는 가까이 다가가서 털끝 하나 하나까지 볼 수 있으니 새로운 느낌이다. 지금까지 본 동물 박제 중에 최고인 것 같다.

올두바이 계곡에서 보았던 인류의 조상님들과 친척뻘 되시는 원인들의 유골과 구석기 토기, 가옥의 모형, 수렵과 전쟁을 위한 도구들, 직물 등이 잘 전시되어 있다. 그 설명도 세계 제일이라는 독일의 자연사 박물관 못지 않다. 낙후하다고만 생각했던 아프리카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세계의 풍경'에 드러누운 침략자, 세실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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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심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다. 다 알다시피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같은 물질,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하나는 연필심으로, 다른 하나는 보석의 왕으로 대접받는 것은 결정구조 때문이다. 흑연은 정육각형의 꼭지점에 탄소 원자가 위치해 타일을 채운 2차원 구조다. 벌집 모양의 정육각형으로 이뤄진 타일이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에 옆으로 미끄러지기가 쉽다. 그래서 흑연은 무르고 잘 묻어 연필심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정사면체의 중심과 꼭지점에 위치한 탄소 원자가 연속적으로 공유결합하고 있어 매우 단단하고 변형이 거의 없는 3차원 구조이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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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로즈의 마스크. 다이아몬드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한 세실로즈의 야심은 남아프리카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북진하여 정복지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디지아라고 불렀다. 지금의 짐바브웨와 잠비아에 해당한다. 광맥이 있는 땅과 드넓은 식민지를 세상 물정 모르는 원주민에게 헐값에 사들였다. ⓒ 조수영

역사관에는 세실로즈(Cecil Rhodes. 1853~1902)의 편지와 일기 등의 기록이 있다. 욕심과 심술이 뚝뚝 떨어지게 생긴 세실로즈의 얼굴을 석고로 뜬 마스크는 섬뜩하다.

1870년대 남아프리카는 많은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로 부자가 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들 중 진짜 큰 을 번 사람은 세실로즈였다.

오늘날까지 세계최고의 다이아몬드 유통회사인 드비어스는 남아프리카 촌구석에서 농사를 짓던 형제 농부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느 날 드비어스 형제의 농장에 우연히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고,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모르는 형제는 세실로즈에게 속아 농장을 헐값에 넘겨버렸다.

로즈는 드비어스라는 이름의 광산회사를 설립하고, 다른 광산 소유자들에게도 조직적인 채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살 수 있는 광산이라는 광산은 모두 사들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정계에 진출하여 각종 정책과 법을 영국인과 드비어스사에 유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몇 년만에 세실로즈는 세계 다이아몬드 물량의 90%를 공급할 정도로 벼락부자가 되었다.

다이아몬드의 단단한 구조는 탄소덩어리가 지하 깊은 곳에서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다. 영화 <수퍼맨>에서 수퍼맨이 석탄 같은 것을 손에 꾹 쥐어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내는 일도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실제로도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인조다이아몬드를 만든다.

그러나 수퍼맨이 아무리 탄소덩어리를 꽉 쥐어서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영화에서처럼 다이아몬드가 처음부터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제대로 빛을 내려면 세공사의 손을 거쳐야 한다. 세공사는 다이아몬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다듬는다.

다이아몬드가 다른 광물과 비교해서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은 다이아몬드로 들어간 빛이 밖으로 바로 나오지 않고 내부에서 여러 번 반사되어 되돌아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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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가 강하다는 말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경도가 높다는 뜻이다. 경도가 높은 물질은 낮은 물질에 흠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 커터는 유리뿐만 아니라 쇠에도 금을 그을 수 있다. 그러나 경도가 높다는 말이 충격에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망치로 내리치면 깨지게 되어 있다. 경도는 결정의 방향에 따라 다르다. 경도가 낮은 방향으로는 작은 힘에도 마치 나무 장작이 쪼개지듯 쪼개진다. 또한 뜨겁게 달구면 표면이 흐려지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기기 않고 타버린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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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로즈의 장례식 사진. 로즈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옥스퍼드 대학에 ‘로즈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과 블레어 영국총리를 비롯한 많은 영재들이 이 장학금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로 그의 식민정책이 국제적인 육영사업으로 가려지는 듯하지만 아프리카인들에게 세실로즈는 전형적인 식민지 제국주의자이고, 불평등계약과 허위계약으로 모든 것을 앗아간 사기꾼이다. 게다가 죽어서도 고향으로 가지 않고 전망 좋은 마토보 언덕에 떡하니 자리 잡고 누워있다. ⓒ 조수영


수퍼맨,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만들어줘요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유통회사인 드비어스사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카피를 통해 다이아몬드가 아주 희귀한 보석이고,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영원한 사랑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게 했다.

그러나 희귀성은 그들이 창고에 숨겨두고 독점 거래를 한 결과이고, 결국 다이아몬드는 탄소 덩어리에 불과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사랑을 보장해 준다고 떠들던 다이아몬드는 지난 백년간 그 생산국에게 부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서로 죽이기 위한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이 된 시에라리온, 100일동안 80만명이 학살된 르완다, 반군과 정부군이 다이아몬드를 팔아 얻은 자금으로 유혈분쟁을 벌이는 앙골라와 콩고에서 어린 소년들이 마약에 취해 민간인에게 총을 쏴대고 있는 것도 다이아몬드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다이아몬드의 유일한 선천적 가치인 단단함을 인조 다이아몬드가 대신 할 수 있고, 훨씬 값이 싼 큐빅 지르코니아를 가공하면 다이아몬드 못지 않게 아름다워 질 수 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일부 유통회사의 독점전략에서 정해졌고, 많은 양이 지옥 같은 살육의 땅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피의 다이아몬드를 사랑의 증표로 신부에게 건네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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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안쪽이 천으로 싸여있어 '차 거름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정답은 남성용 속옷. 사이즈도 다양하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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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림바는 나무로 만든 실로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크기가 다른 나무 조각의 밑에 나무통을 붙여 공명통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마림바는 음비라와 함께 짐바브웨를 대표하는 민속악기이다. 사진은 빅폴에서의 마림바 공연.크기가 다른 4대의 마림바가 각기 다른 음역의 소리를 내며 화음을 만들며 연주한다. 노래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비슷한 리듬과 가락이 반복하는 것 같다. ⓒ 조수영

덧붙이는 글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상영되었을 때 드비어스사는 영화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남아공과 보츠와나, 나미미아, 러시아의 광산에서 채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 설립과정에서의 악명 때문에 아직까지도 국제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상영되었을 때 드비어스사는 영화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남아공과 보츠와나, 나미미아, 러시아의 광산에서 채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 설립과정에서의 악명 때문에 아직까지도 국제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이아몬드 #아프리카 #세실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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